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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냑이 Jul 08. 2024

모두가 진정한 행복을 느끼길 원하면서

1장 내 어린시절 이야기

나는 우울한 인생을 살았었다. 남이 보기엔 부끄러울만한 인생을 살았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 않았었다. 물론 행복이란 감정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말고의 정도는 사람들마다 다를것이지만 내 감정은 행복이랑은 정말 거리가 멀었었다. 나는 매일이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처럼 살아왔었다. 매일 자해를 했었고 매일 나에게 해가되는 말들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했었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친구들이 나를 왕따시키기도 했었지만 일단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것으로부터 이겨낼 생각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열심히 살지도 않았다. 지금이라도 깨달은것은 무언가에 당할때 그것으로부터 이겨낼 의지와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 이겨낼 수 없다는것이다. 사실 이것을 어렸을때 즉 내가 왕따를 당했을때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미래는 변해도 과거는 변하지 않기에 나는 조금의 아쉬움은 종이비행기처럼 접어서 날리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어떻게 보면 불우한 초등학교 생활을 해왔다. 지금와서 보면 그렇게 힘들진 않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때의 입장에서 보면 많이 힘들었다는것이 정말이지 사실이다. 하지만 마냥 당하고 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 성격상 당하고만 있진 않기 때문이다. 어느날은 친구가 우리반이 축구에서 졌다는 이유로 실내화를 던졌었다. 그것때문에 아이들이 무서워하니깐 왠지모르겠는 어떠한 마음으로 나도 그 상황에서 아이들을 무서움에서 멀어지게 하고 싶은 마음에 나도 똑같이 던지면서 “야 나도 실내화가방 던지는거 못할것같냐?!” 라고 말했었다. 나의 그러한 성격때문에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그런 초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나는 국제학교에 들어갔다. 국제학교에 들어간것도 나의 고집때문이었다. 우리 가정은 잘 사는 집이 아니었다. 평균보다 못 버는 가정이기도 했고, 한 번도 풍요롭게 살아보진 못했지만 나의 정말이지 엄청난 고집때문에 국제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국제학교생활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 힘들었다. 원래 조금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기억은 점점 잊혀지지만 그 기억만큼은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적응하지 못했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산다는 14살 내 인생이 너무나 슬퍼졌었다. 그때 많이 좋지 않은 행동들을 했었다. 내 몸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고, 매일매일 울고 매일매일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항상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야, 나는 행복할 수 없어, 나는 절망적이야, 그냥 죽어야지...이런 생각들을 매일을 일삼았고 매일매일을 상처와 함께 살아갔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생각들이 정말 나를 해치는 행동들이고 내 내면과 외면을 정말이지 너무나 해치는 행동들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나를 내 자신이 품어주지 못하면 정말 과거의 나같이 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1년 반 동안의 국제학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기가 내가 가장 시간을 아깝게 썼던 시기인 것 같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나는 국제학교 시절을 마치고 집에 홀로 있었다. 부모님은 일을 가시고 동생은 학교를 가면 나는 홀로 남았다. 홀로 남은 시간을 잘 사용했었다면 좋았을 것이지만 그 시간에 나는 항상 유튜브만 보았다. 나중에는 스터디카페에 가서도 유튜브만 보았었다. 거의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유튜브만 보며 살았었다. 그때는 그 시간이 정말로 아까운 시간이란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내 상처들을 더욱 더 키워가는 시간이란것을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너무 아쉬운 시간들이고 너무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나를 품어주고 보듬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내가 지금와서 보니 약간은 원망아닌 원망을 하고싶다. 하지만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것을 알기에 나는 그때의 그 기억은 내가 깨달음을 알게 된 계기라는 것이라고 생각 할 것이다. 어쨌든지간에 시간들을 그렇게 보냈었고 그런 생활들이 1년 반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의 설득에 의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 우울증이 더욱 더 심해졌고 자해도 너무 심하게 해서 매일 왼쪽 팔을 붕대에 감고 살았었다. 그렇게 버티지 못 하고 3개월만에 고등학교에서 자퇴를 하였다. 자퇴를 하고 남은 9개월 동안 나는 예전의 허무맹랑했던 그 시절처럼 다시 보냈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는 재수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재수학원에 들어가서 다시 우울증이 심해진 탓에 내 인생 처음을 정신과에 들리게 되었다.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난 뒤 나는 내가 우울증이 있었고, 조울증이 있었고, ADHD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로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고 나는 무언가에 대해 잘 충격을 받지 않는 성격탓에 그런게 심한 충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를 더 알게되고 어떻게 품어줘야할까를 알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나서 나는 약을 복용했다. 사실 내가 먹은 약은 병원에 입원해야될 정도의 약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점점 약에 의존하게 되었고, 나는 점점 약에대해 너무나 신뢰하고 이겨낼 의지는 없는 상태였다. 약이 효과가 있을려면 일단 나의 이겨낼 의지도 필요한데 나의 의지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때도 지금 돌아보면 행복했던 시간들도 있었을텐데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때의 나의 기분은 전혀 행복이란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전혀 행복하려는 의지가 있지 않았었다. 지금와서 알게 된 것인데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것이다. 나의 없던 의지때문에라도 약의 효과는 그렇게 있지 않았다, 아니 아에 없었다고 볼 만큼 없었다. 하지만 나의 약 의존도는 점점 높아졌고 자기전에는 약을 먹지 않으면 전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18살에 제수학원에 있었기 때문에 행복한 감정은 거의 있지 않았다. 아니 행복하려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행복을 찾았다. 점심, 저녁시간에 잠깐 하는 산책이 나의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나는 소확행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더라고 그곳에서 행복을 찾으면 성공한 인생인 것 같다. 사실 내 상황도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자해때문에 자퇴를 했고, 자해때문에 왼쪽 팔은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고, 자살시도까지 했으니깐 말이다. 어쨌든 지금까지도 나는 약을 먹고 있다. 언제 이 약을 끊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나는 이제 변화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겨낼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에 나는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약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웠고, 아름다울 것이고, 지금까지 잘 해왔고, 잘 버텼고, 잘 이겨냈다. 이것이 나의 마인드고 이겨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이 과거의 나였고, 다음 챕터에서는 현재의 나에 대해서 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모두 행복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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