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순간
나이를 먹어가며 계속 확신이 드는 건 신이 처음 나를 만들셨을 땐 아마 이랬을 것이라는 겁니다.
1. 자상함을 조금 넣고...
2. 좋아, 의리도 5스푼!
3. 으어... 운동못스킬을 너무 넣어버렸다.
운동을, 좀 많이 못합니다...
축구는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손을 놓았고, 체육시간을 정말 싫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하지를 못하니 친구들이 잘 안껴줬던 기억도 있고, 여튼 그냥 운동에는 일찍이 소질이 없다는 걸 알고 뭐 열심히 찾아 한다던가 그러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나날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후회도 됩니다. 특기나 취미에 운동을 써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어요. 태권도 3단이라는 타이틀은 있지만 어렸을 때 그나마 어머니가 '천부적으로' 제가 성격이 모질지 못한 것을 잘 아시기에 데려다놓으신 거고, 그것이 어찌보면 스포츠와 관련된 타이틀의 전부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제작년 유럽 여행을 가서 외국인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갔습니다. 그룹 중 저 혼자 동양인이었는데, 수영을 하지 못해 혼자 바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친구들은 물에 뜨는 것에 도와주겠다며 회유를 했지만, 도저히 바다 저 깊이 발을 담그지 못하겠더라구요. 내 발은 24/7 땅에 닿아야 하는데 그 땅에 않다고 떠있는 기분 - 그런데 물이 자꾸만 입과 코에 들어와 숨을 쉴 수 없는 - 은 정말 이상하고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었습니다. '이러다 가라앉으면 어쩌지?' '물에 잠겨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래서 이윽고 한국에 돌아와, 저는 동네에 있는 수영장 새벽반을 야심차게 등록했습니다. 왕초보반. 근처에 있는 구민체육센터로.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신규 등록이 시작되는 날에는 새벽 일찍부터 가서 대기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죠. 새벽 5시반에 일어나 갔음에도 이미 대기번호가 50번 뒤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하여튼 여차저차해서 수영 강습 등록에 성공했고, 첫 수업 때는 유아용 풀장에서 발차기연습부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랄까. 사실 미리 어렸을 적에 배워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내심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숨쉬기 연습, 물에 뜨기, 한 단계씩 앞으로 전진해 나갔지요.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솔직히 모릅니다. 수영할 때 내 자세가 어떤지 보이진 않으니까요. 다만 그저 강사 선생님이 잘했다고 하니 아, 내가 무척 잘하나보다 하는 것이고, 그게 판단 기준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물에 계속 떠 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그게, 1년이 되었고, 비록 평영을 배우다가 도무지 자세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강습 대신 자유수영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1주일에 1-2회씩은 수영장에 가서 물살을 가릅니다. 영법이라고 해봤자 자유형, 배영, 평영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스스로는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영에 매료된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수영 중에는 땀이 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설사 땀이 난다 하더라도 물살을 가르며 그게 다 씻겨나가니 (심지어 수영을 마친 후엔 반드시 샤워를 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까지도)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상시에도 땀이 많은 편이라 사실은 땀을 흘리는 제 모습에 대해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진 않았거든요.
둘째로는, 가벼운 상태로 좀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등산처럼 장비를 엄청 다 준비를 하거나, 라켓을 산다든가 하는 부분이 없이, 수영복, 수영모, 수경 세 가지면 충분합니다. 뭘 무겁게 짊어지고 다닐 필요도 없구요. 이 때만이라도 옷과 가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셋째 이유가 마지막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데, 성취감입니다. 사실 웨이트를 제외하고 과연 성취감을 비교적 쉽고 반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운동엔 어떤게 있을까. 그건 수영이나 육상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축구나 농구 등은 팀 전이기 때문에, 일단 그 팀에 속하는 것이 어렵고, 설령 몇 득점을 올렸느니 라는 다른 지표를 보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운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실력이 매우 뛰어나면 슈퍼플레이어로써 엄청난 플레이를 선사하겠죠.)
운동을 하면서 성취감이라는 건, 사실 어릴 적 태권도 다닐 때 띠의 색깔이 바뀌고 하나씩 진급할 때 이외에는 크게 있었나 싶습니다. 축구를 하면서 골을 넣어본 적도 마땅히 없고. 그런 뭔가 이뤘다는 느낌이 없다보니 운동에서 좀 멀어지면서 산 건 아니었나 싶은데, 수영은 그래도 꽤나 단순합니다. 오늘 몇 바퀴 돌았느니,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얼마 걸렸느니, 하는 그런 나 혼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소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과연 세상에서 나 혼자 이룰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누군가의 도움이나 여러 가지 내가 통제하지 않은 변수들이 잘 맞물려 결과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더 많진 않았나 싶습니다. 근데 수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건 내가 시작점부터 끝날때 까지 순전히 내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내가 물에 떠서 손을 젓고 발을 차며 앞으로 조금씩 전진해나가서 이룬 그런 결과물.
물론 남들보다 속도도 떨어지고, 지구력도 시원찮을지도 모릅니다. 근데 경쟁의 굴레에 끼지 않겠다고 스스로 마음먹으면 그건 그렇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다만 어제보다 나은 내가 보이길 바라는 것 그 하나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