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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초 Jan 03. 2024

긍정적인 불안도 있나요?

#근황 #새해불안 #2024다짐 #은둔청년 

 1월 1일, 오랜만에 아버지 꿈을 꿨다. 몰래 아버지 집에 숨어있다가, 도망치려고 숨죽여 짐을 싸는데 새로 생긴 짐들이 다 눈에 밟혀서 마음이 아프지만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가방에 담는 꿈이었다.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새해 첫날부터 이렇게 불안했던 걸까.


 2023년 한 해 돌아보면 감사한 것들밖에 없다. 좋은 일들이 계속 있었다.

내년에 하고 싶던 일을 위해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올해 여름, 서울에서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정신과상담 통해 스스로 감정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과약을 끊었는데도 나아진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1월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꿈을 이루고 싶어졌다.

 

특히, 진로에 관해서 욕망이 다시 생겼다.

예전에는 막연히 내가 바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는데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자격을 따지기보다는 욕심내고 싶어졌다.


정신과를 다니기 전에는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했다. 꿈꾸는 데는 자격이 없다지만 감히 꿈꿀 수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고, 설령 뭔가 성취가 생겨도 그저 막연하게만 여겨 운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감도 없었고, 또 희망도 없었다.


항상 밝은척했지만 사실 내일을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내일을 생각하면 몹시 불안했다. 지금 느끼는 불안과는 다른 불안이었다. 새벽마다 차라리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가치도, 사회에 할 수 있는 일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매일마다 더 낮은 자리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사회적 수치로 따지면 하루 더 나이만 먹어가고, 금전적 여유로 따지면 잔고만 줄어갔다. 더 해낼 것도, 해낼자신도 없었지만 살아있는 한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자책하면서도 내일을 생각하면 숨이 막혀서 등을 돌렸다.


다가올 내일이 겁나서 새벽에 오랜 시간을 썼다. 아침이 오기 전에 나는 비교적 마음이 편했다. 낮에는 열심히 사는 척 허세를 부려야 했기에 조금만 더 오래 어제에 머무르고 싶었다. 실용적인 일들 대신에 가벼운 게임이나 웹툰, 혹은 웹소설을 읽으면서 모른척하다 정신 차리면 해가 뜨고, 그 후에 잠들면 하루의 절반 정도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정말 되는대로 살아있었다. 일단 되는 걸 따지는 게 급해서 자꾸 이상한 데로 뒷걸음치면서, 그러면서 나약해서 현실을 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최근에는 12시에 휴대폰을 끄고 잠에 들게 되었다.

매일마다 인강을 듣는다. 계획을 세우고, 일기를 쓴다.

기획노트를 만들고 하고 싶은 것들을 모조리 휘갈긴다.

이게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자격증시험 일정을 살핀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라고 이젠 생각되지 않아서 외줄 타기를 한다.


분명 훨씬 나아진 건데, 불행하다고 외면할 때보다 불안하다니 이상한 일이다.

사실 아직도 내일이 두렵다. 새벽녘에 뒤척거리면서 심장이 쿵쿵 뛴다. 하지 못한 것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능력은 둘째 치더라도 노력의 양도 남들보다 많지 않아서 자꾸 미련이 생긴다. 조금 더 어제에 머물러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진 것보다 욕망하는 깊이가 늘어서, 과정만큼이나 결과도 갖고 싶어 져서 겁난다. 그러면서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훨씬 덜한다. 몹시 두려우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게 아니라 얻지 못하면 슬플 것 같아 해내고 싶어졌다. 언제 이렇게 욕심쟁이가 돼버렸을까.


 그 욕심 때문에 새해부터 불안해졌다. 마음은 바뀌었는데 현실은 여전하다. 모르는 걸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욕심만큼 빠르게 걸어갈 순 없다. 남들과 비교하면 결국 제자리걸음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는 노력하는 방법도 잊었는지 남과 비교하면 놀랄 만큼 느리게 하고 있어서, 스스로 답답하고 그게 마음이 아팠다.


 결국은, 내게 찾아온 좋은 일들 때문에 더 좋은 일을 기대하게 되고, 그걸 위해서 노력하는 게 미흡하여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해진 것이다. 정말 행복에 겨운 일이다. 아직도 내일이 무섭고, 계속 내려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도망치고 싶어질 만큼 무서운 건 아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들으셨다면 뭐라고 하실까?


 궁금하지만 아직은 병원에 의지하고 싶진 않다. 지금 불안은 좋은 거라는 내 판단을 믿고 올해도 노력해보고 싶다.


배경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Michelle Raponi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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