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고기를 먹었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을 야무지게 먹었다. 채식 일기인데 고기 먹은 이야기를 적자니 민망함이 파도치며 몰려온다. 그래서 왜 고기를 먹었냐 물어보신다면 이웃에 사는 언니가 고기 구워 먹자고 불러서 그랬다. 볼일이 있어 언니 집에 남편과 잠시 들렀는데 가족끼리 잘 알고 지내다 보니 용용이가 "형님, 일 없으시면 술 한잔하시죠."했다가 그러면 우리 집에서 고기 구워 먹자는 초대에 내 손으로 직접 삼겹살과 목살, 항정살을 구입하여 언니네 놀러 갔더랬다. 고기만 먹은 것은 아니고 버섯과 감자, 양파도 같이 구워 먹었다. 아무튼. 지난 6월 11일 남편의 생일날 이후 오랜만의 작정하고 고기 먹은 날이었다. 나는 고기가 싫어서 안 먹는 게 아니라 신념에 의해 멈춰뒀던 상태이기에 오랜만의 고기쌈은 참... 맛났더랬다. 변명의 여지없이 맛있었다. 언니가 텃밭에서 기른 깻잎에 싸 먹으니 환상적이게 맛있었다. 짙은 향의 깻잎에 싼 맛있게 구워진 고기. 그리고 아이스박스에서 갓 꺼낸 시원한 소맥. 편하고 좋은 사람들. 바로 옆에 펼쳐져 있는 수영장.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다음날 나는 다시 채식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과 마늘이는 반찬으로 냉장고에 남아 있던 훈제오리와 탕수육을 데워서 먹었는데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기의 맛을 바로 어제 깨달은 나는 그 고기반찬이 사무치게 먹고 싶었다. 참으며 식사를 하는데 배가 부른지 금방 수저를 놓은 마늘이 덕분에(?) 내가 노려보던 고기반찬이 남게 되었다. 남으면 쓰레기로 버려야 하니까 조금의 고민 끝에 남은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 내 입으로 직행시켰다.
고기를 안 먹다 보면 먹고 싶은 마음도 점차 사라진다. 그러다 우연히 입에 들어온 고기는 잊혔던 맛을 깨닫게 만든다. 그러면 참고 묻어두었던 불씨에 불이 지펴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불길처럼 확산된다. 그 고비를 한번 넘기면 된다. 고비를 넘기지 않고 유혹에 넘어가면 그다음부터는 참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한 선택에 대한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그 선택을 몇 번이고 질책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죄책감이 되고 나를 괴롭힌다.
나는 채식 지향 생활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유연한 방법을 선택했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냥 먹고. 다음부터 다시 열심히 채식을 실천한다. 원상 복귀만 된다면 상황에 맞게 고기는 먹기로 했다. 지난 토요일이 그랬다. 고기를 먹지 않으려 내가 먹을 버섯과 두부를 챙겨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를 뺀 나머지 사람들은 나를 배려하고 신경 써주겠지. 그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맛있고 편안한 식사를 하기 바랐다. 물론 다양한 식습관을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그래야 한다면 나는 언제든 그렇게 할 것이다. ... 사실 보기 좋은 글로 나를 감싸고 있지만 내가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요일 오리고기와 탕수육을 애타게 바라보던 나에게 용용이는 "일주일에 한번은 마음 편히 먹어."라고 했다. 고기 먹는 날을 정해서 나의 기본 욕구도 챙겨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나에게 관용을 베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