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배워야 혀
직장을 다닐 때는 몰랐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은 줄. 매일 보는 얼굴들과 변하지 않는 일. 그저 같이 일하는 동료 사이로만 지냈고 나도 타인에 별 관심이 없었다. 회사 밖에 나가면 어떤 삶을 사는지 내면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학습되는 성격이 있다. 그걸 보통 사회성이라고 부르는데 난 타인에게 사회성만을 발휘할 뿐이었고 회식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의에 의해서도 알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고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개인적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수강생들과 친분을 쌓으며 알게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열심히들 산다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았고 그 후에 사람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사실 나이가 들어 그런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깨달은 것으로 하자.)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첫인상이 오래도록 남는다. 첫인상의 편견에 사로잡혀 그 사람을 그대로 낙인찍어 버린 뒤 그 상태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곤 첫인상이 잘 맞는다며 스스로를 사람 잘 본다며 인정하고 편견이 굳혀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사람을 속 깊게 알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느낀 느낌 그래도 믿고 바뀌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차갑고 말투가 딱딱해 별로였던 사람도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 시간을 들여 알아보니 속 깊고 배려가 많더라. 세상 털털하고 여유로워서 같이 있으면 편하다고 느꼈던 사람과 대화가 쌓여갈수록 나랑 다른 부분이 많아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이 궁금해지니 대화도 수월해졌다. 이 사람이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고 어떤 생각인지 너무 궁금하다. 내 생각과 어떻게 다를까? 또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가? 지금은 뭘 배우며 살고 있을까? 전에는 어떤 일을 했을까? 전에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온통 일회성 화젯거리뿐이었다. 누군가의 험담을 하거나 그때의 이슈거리, 티브이에 나오는 프로그램 이야기, 연예인 같은 오락거리들. 하지만 소득 없는 시간 때우기 대화는 나에게 헛헛함을 남기기 일쑤였고 대화가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이제는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니 사람들과 대화가 즐겁다.
더 이상 사람의 첫인상을 믿지 않고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이건 내게 굉장히 큰 움직임이다.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되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스스로를 한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다양한 관계들이 있겠지만 나를 배우게 만드는 사람들,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건강한 관계는 내 눈을 더 멀리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