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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에 Jan 08. 2024

나는 어느 날 사모님이 되었다

남편이 사장님이 된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의 결혼 스토리를 먼저 털어놓아야 할 테다.


첫 만남은 추석 연휴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운동이나 하면 좋으련만 부모님의 지인이 해주신 소개팅이라 안 나갈 수도 없고, 꾸역꾸역 대충대충 트레킹화에 청바지를 입고 가벼운 화장을 하고 나갔다. 당시 소개팅남 현 남편은 주말에도 일을 하고 바로 소개팅 장소로 나온 터라, 주름이 많이 있는 아저씨 양복바지에 노타이 와이셔츠를 입고 한껏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함께 등장했다. 


외국계 회사 인사팀에서 근무하던 나에게 소개팅은 일종의 면접과 같은 일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첫 만남에 그에게 “정년 이후의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그는 준비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본인이 하고 있는 업무는 기술이 중요한 일이라 프리랜서로도 근무가 가능하다 했다. 나는 거침없는 그의 대답에 호감도가 쑥 올라갔다. 이 정도 대답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어쩌면 이미 그때 콩깍지가 씌었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큰 기대 없는 만남은, 의외의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하는 법. 몇 번의 만남과 함께 우리는 7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때 남편나이 마흔아홉, 내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남편은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일을 했다. 그래서 출장이 잦았다. 결혼 후에도 그는 싱가포르, 홍콩, 파키스탄 등 전 세계를 돌았고, 결혼 후 3년간 둘이 함께한 시간은 아마 채 1년도 안될 것 같다. 나 역시 일을 하고 있던 터라 그의 부재는 나름의 애틋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래저래 아이 갖기는 어려웠고, 가까스로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 결혼 3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그때 남편나이 쉰 하나, 내 나이 마흔 하나였다.


아이를 낳은 몇 달 후 남편은 두바이로 발령을 받았다. 두바이에 있는 큰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3개월짜리 아들을 두고 독박육아가 시작된 그때, 세기의 역병 코로나도 함께 시작되었다. 남편이 맡게 된 두바이 프로젝트 현장도 코로나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고, 현장의 책임을 맡고 있던 남편은 제일 마지막에 현장을 수습한 후, 귀국하자마자 한 달간 코로나로 생사를 오가는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 그는 양천구 3x번째 확진자로서 양천구민들에게 전체 알림 메시지를 통해 그의 동선이 공개되었다. 과부가 될뻔한 나는 (코로나 초기라 정말 심각했다) 6개월의 육아휴직 후 복직하여 커리어를 이어갔다.


그는 다행히 퇴원 후에는 한국에서 근무를 이어갔다. 프로젝트 수주 업무에서, 견적, 기술팀까지 맡은 분야를 확장시키더니 신사업분야 쪽으로 공부를 한참 했다. 나 역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사업무까지 맡았고, 새로운 업무를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모기업에서 인수한 재생에너지 관련 회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 회사는 마산에 있었다. 겨우 좀 가족이 안정되나 했지만 이내 주말부부의 삶이 시작되었다. 지척에 살고 계시는 친정 부모님께서 많이 도와주시지만, 워킹맘의 독박육아는 쉽지 않았다. 

짜증이 하늘을 찌르고, 날 선 말들이 그의 가슴을 찌르던 어느 날, 

갑자기 그는 그 회사 대표로 임명받았다. 

다섯 살짜리 아들을 둔 나이 많은 부부, 

그의 나이 쉰다섯, 내 나이 마흔다섯에 그는 사장님이 되고 나는 사모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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