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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에 Jul 15. 2024

릴스를 끊고 독서를 시작하다

릴스를 시작한 게 언제더라...


인스타그램에 계정만 있었지, 무언가 내용을 올리지도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인들이 "xx 인스타 봤어? 아기 많이 컸더라", " xx 씨 인스타 봤어요. 거기 전시회 멋지던데요?"라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 계정도 생각나지 않는 인스타를 꾸역꾸역 접속해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일상을 보기 시작했다. 주변인들의 일상을 보는 것이 내 인생에 큰 변화를 주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큰 변화를 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추천 릴스"이다.


30초-1분 남짓의 짧은 숏폼 영상은 나의 관심사를 집요하게 추적해서 시선을 끝까지 잡았다. 어떤 때는 푸바오 영상이, 어떤 때는 개그 콘서트 영상이, 어떤 때는 감동 몰래카메라 영상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한번 터진 나의 도파민은 출퇴근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자기 전 침대에서 멈출 줄을 몰랐다. 육아와 일에 지친 나의 심신을 위로해 주는 아주 좋은 매개체가 되었다.


며칠 전 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 대충 정리하고 밀린 업무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스럽게 TV를 켰다. 위로 아래로 채널들을 돌리다 볼만한 게 없어 결국 릴스를 마주했다. 스크롤을 올리고 올리고 올리고 올리고......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은 새벽 한 시였다. 눈이 시뻘게져서 자러 들어가는데 문득 내가 한심해졌다.

피곤하다면서 졸리다면서, 릴스를 보며 한껏 뇌를 자극시키고 눈을 혹사하고 뭐 하고 있나 싶었다.




다음 날 퇴근 후 친정 엄마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유치원 하원 후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신다) 식탁 위에 책이 쌓여있었다.

"엄마, 뭔 책이래요?"

"응, 어제 이것저것 책 주문 좀 했어"

친정엄마는 활자 중독증에 가까울 만큼 책을 많이 읽으신다. 한 번에 여러 권 역사, 소설, 인문 종류도 가리지 않고 이 책 저 책 조금씩 매일 틈만 나면 읽으신다. 그런 엄마 덕분에 나도 어렸을 때에는 책도 많이 읽었다.


"엄마, 나는 요즘 책을 너무 안 읽어"

"맞아, 요즘 사람들은 책을 정말 안 읽더라. 눈이 아프다는 말도 핑계고, 시간이 없다는 말도 핑계야. 읽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다 읽을 수 있는데 말이야. 책 읽는 것도 습관이라 안 읽으면 점점 더 안 읽는다"


휴. 맞다. 내가 그렇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책을 들기  무겁다는 핑계로 책은 놓은 지 오래다. 아참. 그런 이유로 전자책을 시작해 봤지만. 보기 좋게 실패하지 않았던가!

다음날 퇴근길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그동안 인문학이나 역사 관련된 어려운 유명한 책만 읽으려고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언제 책을 집중해서 읽었더라...."소설!" 그래 나는 소설을 좋아했다.

소설을 좋아했던 생각이 떠오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길로 집 앞에 있는 중고 서점에 가서 스테디셀러 소설칸 눈길 끄는 책 두 권을 선택했다.

드디어 아이를 재우고 밤에 책장을 폈다.

아.... 재미있다!!!!!


그렇게 릴스를 끊은 지 일주일 되었다.

첫날은 의도적으로 인스타그램 어플을 클릭하는 내 손가락을 막았고, 답답했다. 보.고..어.

둘째 날은 그래 오늘까지만 보지 말자 했고, 세쨋날은 뭐 별거 있나 싶어 클릭하지 않았다.

넷째 날부터는 궁금하지 않더니, 다섯째 날에는 클릭해 들어가도 릴스가 보고 싶지 않아 졌다.

아직까지는 성공이다.




아들이 숙제를 할 때면, '아들아, 네가 숙제하는 동안 엄마는 일할께.' 하면서 핸드폰을 켰다. 워낙에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변하는 것에 익숙한 아들이기에 엄마가 핸드폰으로 일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숙제 시간이 늘어나면 아들 몰래 릴스를 보기도 했다. 아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엄청난 반응속도로 이메일 창으로 전환시켜놓기도 했었다.


지난 일주일. 릴스를 끊은 후로 아들이 숙제하는 동안 정말 이메일 확인만 하고 책을 펴서 읽었다. 왠지 이상적인 모자의 모습 같았다. 숙제하는 아들 옆의 책 읽는 엄마! 바로 이거지.

하지만 아들 눈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엄마, 엄마는 왜 내가 숙제하는 동안 엄마는 혼자 재미있는 책 읽어?? 나도 숙제 안 하고 책 읽고 싶어"

"(아차차!!!) 아... 미안. 그럼 엄마도 숙제할게"


그렇지. 책이 재미있지 숙제가 재미있나. 그런데 왜 엄마는 그 재미있는 책을 안 읽고 있었을까??

아무튼 일단은 일보후퇴. 아들이 숙제하는 동안은 나도 업무 모드이다.

<남편이 읽다가 두고 간 책. 그 자리에서 나도 소설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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