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흉내내기

Part 달리기

by Oneal Song

3.31일 1일 달릴까 말까


이제 새벽이 익숙해지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새벽에 다시 잠드는 것도, 다시 잠들려다 못 자는 것도 익숙해지고 있다. 지금은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내일은 쉬는 날이다. 주 6일 근무를 임시로 하다가 이제 주 5일 근무로 바꿨다. 쉬는 날이 이틀로 늘었는데도 쉬는 날의 마음은 더 바쁘다.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다. 물론 그러다 아무것도 못 하는 게 다반사지만, 쉬는 날은 마음이 더 바쁘다.

50분 연속 달리기 날이 다가왔다. 달리기 전 5분 워밍업 걷기, 달리기 후 5분 쿨다운 걷기를 빼고 온전히 50분을 달리기에 도전해야 한다. 몸이 긴장해서 새벽에 일어났다.

50분 달리기 결과


달리기에 관한 목표는 두 가지다. 주 3일 달리기와 50분 연속 달리기 완성. 이번 주는 월요일, 수요일을 달렸다. 금요일까지 쉬고 토요일에 3일째 달리기 일정을 잡았다. 50분을 쉬지 않고, 걷지도 않고 달릴 수 있을지 걱정이다. 비 예보도 있다.

겨울비라도 내렸으면. 이 문장을 써 놓은 다음에 주술처럼 자주 비가 내린다. 저번 비 내리는 날에는 겨울비 노래도 라디오에서 나왔다. 비가 오기 전에 달릴지, 비가 오다 잠시 멈출 때 달릴지 정하지 못했다.

비를 맞으면서 달리기에는 방수 장비가 부족하다. 경량 패딩과 바람막이를 입고 뛰니 잔비는 피할 수 있겠지만, 겨울비는 함부로 맞는 게 아니다. 비는 아침 7시부터다. 비가 내리기 전에 뛰려면 평소 출근날처럼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일주일 만에 쉬는 날인데 늦잠을 반납해야 한다. 이것저것 마음속에 핑계가 많다. 50분 멈추지 않고 달리기가 가능할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나의 달리기 루트는 집 앞에 있는 공원에서 시작한다. 공원에서 워밍업을 한다. 션과 함께 유튜브에 나온 이연진 코치의 워밍업 드릴을 사용한다. 고관절과 상·하체에 땀이 날 정도로 강도가 높다. 걸어서 동부간선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넘어간다. 여기서부터 달리기가 시작된다.

큰 도로를 건너서 시작하는 러닝

달리기 루트는 양재천과 탄천을 따라서 형성된다. 크게 세 개의 루트다. 도곡동으로 가는 길, 잠실운동장을 끼고 한강으로 가는 길, 장지동이나 복정동을 향해 성남으로 가는 길. 여기에 두 종류의 선택이 있다. 하천을 따라 뛰는 길과 제방을 타고 뛰는 길. 이렇게 두 가지를 섞으면 다섯 종류의 코스가 있다. 매일 같은 코스를 달리는 것보다 매일 코스를 다르게 두는 것은 달리기에 아주 도움이 된다. 무엇이든 쉽게 식상해하는 사람,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서 50분 연속 달리기에 좋은 코스는 어디일까?

“중간에 돌아오지 말고 쭉 달리자.”

이렇게 결정했다.

“자주 가지 못하는 코스로 가자.”

이렇게 하나를 더 얹었다.

한강으로 달려간다. 50분 정도 달리면 어느 역까지 갈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전술은 ‘천천히 달리는 것’으로 삼았다. 폼 잡을 필요도 없다. 빨리 가야 할 이유도 없다. 50분 동안 멈추거나 걷지 않는 것이 완성이므로 숨이 차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숨이 차서 턱하니 발이 멈춰 버리면 미션 실패다.

“뛰면서 심박수를 확인하지 마세요.” 권은희 코치가 조언해줬다. 몸으로 속도를 익히려고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번부터 워치를 보지 않고 속도를 조절해 본다. 느린 속도, 보통 속도, 빠른 속도. 숨이 차면 심박수가 160을 넘었다는 뜻이다. 심박수를 올리는 훈련은 다른 때 하고, 이번에는 그저 50분간 다리가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잠실 주경기장이 오른쪽에 보인다.

“저기로 가서 운동장 트랙을 달려볼까.”

샛길로 새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아는 길로 가자. 오늘은 새 길도 아니다.”

계속 무언가 속으로 묻고 답한다. ‘이런 것이 스스로 학습. 혼자서도 잘해요. 어른이 되어 가는 길.’

한강이 보인다. 앱에서 시간을 불러준다. 5분, 10분, 15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마지막 5분, 질주를 해볼까 생각한다. 멋지게 두 팔을 들어 볼까도 생각한다.

황영조처럼. 이봉주처럼. 아브디처럼. (아는 마라토너가 몇 명 없다. 정말 좋아하는 마라토너를 찾아서 따라 해야겠다. 축구의 이정효, 야구의 야신 김성근을 좋아했던 것처럼.)

성수대교를 지난다. 달리면서 찍었다.

청담대교를 지난다. 영동대교를 지난다. 성수대교를 지난다. 동호대교가 보인다. 50분이 지났다. 멋진 라스트 스퍼트는 아니지만 최대한 속도를 올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빨리 걸어서 동호대교에 올라온다. 압구정역을 향해 간다. 옥수역, 약수역 방향으로 사진을 찍는다. 50분 달리기 완성.

거의 8km. 조만간 10km로도 가능해 보였다.

12월 31일에도 우울과 상처에 대해 말해야 한다. 삶에는 늘 불꽃처럼 화려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겨울 유일한 송년회는 2년 전에 마지막으로 일했던 영화제였다.

마니또 선물로 하얀 김장 조끼를 받았다. 같이 일했던 사무국장에게 물었다.

“올해 날 쓸 유?” 민망한 것을 물을 때는 사투리다.

“쓸모가 있어야 쓰지. 어디다 써. 쓸모가 없어.” 표준어로 사무국장이 답했다. 인천에 살면서 서울말을 쓴다.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내 생각이 누군가의 말로 실증되니 상처가 되었다.

피아노 요정이 위로의 말을 해줬다. 옛날 직장 동료들이 돼지갈비를 사주었다. 내 오랜 친구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뼈다귀탕을 사줬다.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마지막 날, 이 말을 써 놓으면 액땜처럼 흘러내렸으면 좋겠다.

50분 달리기 완성 후 하향세다. 달리는 것이 너무 힘들다. 특히 초반부가 그렇다. 워밍업을 적게 해서인지, 심리적 우울 탓인지 모르겠다. 50분 달리기를 완성한 날처럼 멀리 달린 적이 없다.

그래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은 달리기로 마감하고 싶다. 이 날을 달리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1월 1일, 새해의 첫날도 달리기로 시작하고 싶다. 이 날도 못 달리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키는 말했다. 누군가에게 까이거나 누군가에게 무시받았을 때는 더 긴 거리를 달려야 한다고. 상대에게 당한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단련하는 것으로 되갚으라고. ‘더 긴 거리를 이 악물고 달려야 한다.’

12월 31일, 1월 1일 무조건 달린다. 장요근 부상이 재발했다. 인생이 그렇다. 한의원 예약을 했다.


추신:

책 『뛰는 사람』의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생물학자이면서 울트라 마라톤 선수다. 그는 말했다. ‘나의 정체성은 러너(뛰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푸른 조끼를 입은 시간제 노동자, 꾸준히 매일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흉내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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