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지기 Jan 27. 2022

숲에 그리움을 묻었다


고요한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다


계절이 바뀔 때면 비가 온다. 무거운 계절을 짊어지고 산을 넘어오던 먹구름이 여름을 비우기 시작한다. 해까운 바람이 지나가는 산길에 하얀 참취 꽃이 비를 맞으며 흔들리고 있다. 오래전 그날도 불규칙하게 들려오는 빗소리에 창문을 열었다. 그때 어둑한 곳으로 누군가가 ‘꼭’ 올 것만 같은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밤새도록 문밖에 등불 하나 걸어 두고 누군가를 기다리던 날이었다. 금방이라도 찾아올 것 같은 두려움에 나는 떨어야 했고 기다리던 사람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오래된 기억을 삭임 질 하다가 열병을 앓던 날도 가을비가 내렸다.



고요한 숲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프란츠 폰 주페 Franz Von Suppe(1819∼1895)의 ‘시인과 농부’의 서곡에서 흐르는 첼로의 깊은 울림보다 자연이 계절을 받아들이며 들려주는 울림이 더 경외롭다. 그래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고요한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다"라고 했다. 우거진 가시넝쿨도 여름을 비우기 시작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이제는 싱그러움을 버려야 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한다. 비우는 행위가 꼭 무언가를 덜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비우는 것은 내려놓는 것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비우는 것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없다. 그러기에 오늘도 나는 최소한의 삶, 단순하고 소박한 미니멀리스트 Minimalist를 꿈꾼다.


산 벚나무는 이미 잎을 떨구고 선정에 들기 위해 가지 하나하나를 추스르고 있다. 무성한 밤나무는 여름내 품었던 알밤을 미련 없이 토해냈다. 살찐 소나무 가지는 늘어져 있고, 개울가 비탈진 곳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린 나뭇잎에 피멍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다. 숨겨둔 자신의 화려한 속살을 끄집어내고 있다. 개울물 흘러가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투명한 풀벌레의 울음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빗소리와 어우러져 산을 채우고 있다. 산 가장자리로 난 산도랑은 메마른 도랑을 지켜냈다. 물 한 방울 내려오지 않아도 물을 기다리더니 오늘에서야 가을을 재촉하는 빗물을 끌고 강으로 가고, 여름도 끌고 가고, 숲은 가을로 간다.



우리 시대의 소로 ‘현대의 시튼’으로 평가받는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홀로 숲으로 가다》〈2016. 더숲〉에서 숲 속 생활에서 만난 모든 것들의 행위를 관찰하면서도 “고요히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빵 굽는 냄새를 맡을 수 있기를 바랐고, 서류작성이 아닌, 사슴을 쫓고 나방의 날갯짓 소리를 듣는 ‘쓸데없는’ 것으로 하루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뜨거운 여름 화려한 나비를 쫓고 강에서 신나게 수영할 수 있기를 바랐고, 낙엽의 다채로운 색깔을 끝없는 목록으로 하나하나 기록할 수 있기를 기도했고, 지저귐을 듣고 새의 존재를 구분할 수 있기를 바랐고, 자연 속에서 평화와 고요함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스쳐 지나가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숲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의 섬세한 움직임 하나까지 발견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숲 속 생활에서 발견한 “공존과 느린 삶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나뭇잎이 하나의 우주임을 깨닫게 하는 헝클어진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세상은 자연스럽고 안정적이고 질서가 있다. 나무는 스스로 간격을 맞추어 서 있고, 넝쿨식물은 몸을 내준 상수리나무를 타고 오르고 있다. 이렇듯 자연은 천진하다. 그래서 숲이 품고 있는 생명들은 숲이 주는 포근함을 기대고 살아간다.


물을 잔뜩 머금은 나뭇잎들이 깜짝 놀라 늘어진 잎들을 추스르며 긴장한 모습이다. 어린 뽕나무가 흔들린다. 소나무와 잡목 사이에서 잎사귀를 활짝 벌리고 있다. 어떤 이유로 그곳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왠지 이질감이 든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나 홀로 서 있는 기분이다. 어린 뽕나무 잎에는 상처투성이다. 심지어 가지 하나는 부러져 바둥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울 것 같은 숲에도 이처럼 삶은 치열하다. 그러기에 상처 없는 꽃과 나무는 없다.


상처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힘들어야 다른 사람의 힘든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구절초가 가시넝쿨 속에 갇혀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목을 길게 내밀고 꽃이 피었다. 온몸을 비틀고 나와 자신이 가을꽃임을 알리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이 비 그치면 뒷산으로 몰려드는 가을바람은 거칠어질 것이고 청청하게 푸르던 나무는 수척해질 것이다. 이처럼 계절의 변화에 적응해 가는 것이 자연의 흐름이듯, 오늘같이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자지러진 그리움을 숲에 묻고 침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잊히지 않는 나의 삶으로 기억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무처럼 살 일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