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축축하고 퀘퀘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리운 노이즈
# 03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제일 먼저 턴테이블에 LP를 올리고 음악을 들었다. 대부분 오빠에게 주도권을 뺏길때가 많았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휴대성이 없는 LP는 큰 스피커를 통해 파워풀한 음향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거실에서 다른 가족과 함께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턴테이블이 자기 방에 있던 친구집에 자주 놀러 갔고 친구의 좁은 방에서 함께 LP를 들었다. 친구의 방에는 정리되지 않은 LP가 수북하게 쌓여 있기도 하고 여기저기 굴러다니기도 했다. 케이스에 제대로 들어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거나 잡히는대로 뒤적이다 턴테이블에 올렸고 어쩌면 무심하게 그렇게 들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LP는 정전기로 달라붙은 먼지탓에 타닥 타다닥 소리와 함께 재생됐고, 간혹 튀기도 하며 LP만의 맛을 제대로 살려주었다. LP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은 누구나 겪어보았겠지만 늘 같은 위치에서 튀는 탓에 그 노래는 튀는 부분까지 원곡의 한 부분으로 기억되고 세월이 지나서 그 노래를 다시 들어도 여전히 튀는 부분까지 그대로 떠오른다. 한창 감수성 풍만했던 그 시기, 친구와 함께 들었던 음악은 지금도 LP 감성 그대로 생생하다.
하지만 LP의 운명은 CD의 등장으로 차차 밀려났다. 좀 더 좋은 음질과 휴대성까지 겸비한 CD는 빠르게 음반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CD는 휴대용 플레이어만 가지고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도 플레이가 가능했다. CD의 보급과 함께 레코드 샵에서도 인기 CD들은 구매자가 직접 들어볼 수 있도록 헤드폰과 함께 비치가 되었다. 그땐 몰랐다. LP만의 따뜻한 그 소리와 그 감성을. CD는 너무도 편리했고 음질도 좋았으니까. 언제부터인가 다시 LP를 발매하는 가수들이 있지만 플레이보다 소장에 가치를 둔 LP는 LP라는 명칭보다 바이닐이라는 요즘 명칭이 더 어울린다. 정확하게 정의된 LP와 바이닐의 개념이 있지만 개인적인 느낌은 그렇다. 마치 국민학교 세대가 갖고 있는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의 간극같은.
몇 년 전부터 LP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LP음악을 틀어주는 술집이나 카페를 전전하던 나는 남아있던 LP들을 다시 정리하고, 턴테이블도 새로 장만했다. 예전 턴테이블을 그대로 사용해 보고 싶었지만 너무 오래되어 바늘을 구할 수 없었다. 새 턴테이블에서 흐르는 음악은 조금 더 새 것 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예전 LP를 구하기 힘들고 비싸다는 점은 LP감상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당연하게 느꼈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너무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LP로 듣는 음악은 참 좋다. 같은 음악도 LP로 들으면 다르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느껴진다면 너무 큰 과장일까? 많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LP감성 운운하며 다시 LP를 찾게 되는 것도 그 온도와 습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 그 시절 많은 음악을 LP로 들었지만 다시 LP를 구매하고 듣다보니 <<친구들>> 음반이 LP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축축하고 퀘퀘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리고 적당히 따뜻한...
어두운 밤 LP로 <<친구들>>의 <오늘 밤에 그대는>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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