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무한궤도였기 때문일까? 음악이라는 무한궤도에 진입하다!
# 01
6학년이 되던 해 딸아이는 처음으로 음반을 구매했다. 강력한 구매의지를 선보였기에 그대로 두었더니 그동안 모은 용돈을 음반 구매에 탕진했다. 딸아이가 들고 온 것은 깜빡 속을 뻔했지만 모두 같은 CD였다. 똑같은 CD를 여러 장 구매한 것은 음반에 랜덤으로 들어있는 포토카드 때문이며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득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그렇게 구매한 CD는 단 한 번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래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음반은 더 이상 음악을 듣기 위한 수단이 아닌 것이다.
처음 내 손으로 직접 구매한 음반은 무한궤도 1집 이었다. 아파트 상가에 있던 레코드 가게에서였다. 무한궤도는 88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처음 만났다.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에도 나왔던 것처럼 전주만 듣고도 그 시절 누구나 무한궤도가 대상임을 직감했다.
https://youtu.be/TPoDCVSK1wA?si=r962NY0PeGu9qSXK
다음 해 1집 음반이 발매되자마자 난 레코드샵으로 향했고 내 인생의 첫 번째 음반 무한궤도 1집을 만나게 된다. 이어폰으로 혼자 듣는 음악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워크맨에 카세트 테이프를 넣고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신해철은 나의 첫 연예인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한 건.
음악을 듣기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좋은 음악을 발견하고 그 음악을 찾아 듣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동네에 있는 레코드 샵을 자주 방문했고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어린 학생의 용돈으로 매번 새 음반을 구매하긴 힘들었기에 라디오가 주 음원 공급처였다. 일명 공테이프라고 불리던 테이프를 구매하여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했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땐 영어 학습 테이프나 각 종 홍보용 테이프 등 집 안에 굴러다니던 테이프란 테이프는 모두 아래쪽 구멍에 휴지를 끼우거나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막고 음악을 녹음하는 용도로 변경하여 사용하였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극강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디제이가 음악과 겹치지 않게 곡목과 가수를 알려주길 바라며 녹음할 타이밍을 기다렸다. 녹음에 성공한 노래는 제목과 가수명을 적고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듣고 또 들었다. 진정,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았다. 힘들게 구한 음원이기에 그 음악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해졌다.
이제, 무엇이든 원하는 음악을 검색하고 찾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왔지만 좋은 음악을 찾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수없이 많은 음악을 듣고, 좋은 음악을 찾고 그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도록 시대의 흐름에 맞는 음원을 구하는 일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음악이라는 무한궤도에 진입한 이후 방식은 바뀌었지만 좋은 음악을 찾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가슴 아픈 순간들을 그리고 평범한 모든 일상들을 음악과 함께 해왔다. 음악은 듣는 순간의 공기, 공간, 냄새, 함께한 사람 등 모든 것을 저장했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음악을 재생했을 때 과거의 그 모든 것이 음악의 일부가 되어 함께 재생되었다. 음악은 이런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지금 들어도 여전히 설레는 나의 첫 음반 <<무한궤도 1집>>
모든 곡을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Side B의 첫 곡 <조금 더 가까이>를 가장 좋아했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니 Side A의 두 번째 곡 <여름이야기>가 그 시절 감성을 가장 많이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