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지 않고 찌기로 시작했다
낙지를 볶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불 세기 하나에 질겨지기 쉽고, 볶다 보면 물이 생겨 양념 맛도 흐려진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낙지볶음을 시도해보고 만족한 적은 손에 꼽힌다. 그러다 찌는 방식으로 살리는 레시피를 알게 됐고, 한 번 해보고는 ‘이거다’ 싶었다.
끓는 물에 푹 익히는 대신, 낙지를 1분 30초 정도 찌는 방식. 겉은 탱글하고 속은 촉촉하게, 수분은 안 날아가고 비린내도 훨씬 줄어든다. 미림에 살짝 버무려두면 잡내도 깔끔하게 정리된다. 그 상태로 볶아내면 질기지도 않고, 수분이 덜 나와 양념도 힘을 잃지 않는다.
여기에 의외의 조합이 하나 있다. 바로 오이. 낙지볶음에 오이라고? 싶지만, 채 썬 오이를 간장과 소금으로 살짝 절여 넣으면, 매운 양념 속에서 아삭하고 시원하게 살아난다. 마치 단무지 없이 먹는 매운 떡볶이처럼, 뭔가 하나 빠진 듯한 허전함을 이 오이가 채워준다.
양념의 핵심은 직접 만든 고추기름이다. 센 불에 기름을 달궈 고춧가루를 잠깐 우려내는 정도. 고소하고 진한 향이 나면서도, 텁텁하지 않은 상태가 중요하다.
여기에 진간장, 굴소스, 물엿, 다진 마늘과 생강까지 더하면, 짜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양념장이 완성된다. 감칠맛이 부족한 느낌이 들면, 고추기름을 한 번 더 얹는 것도 방법이다.
볶을 때는 순서가 중요하다. 당근, 양파, 오이 같은 채소는 먼저 센 불에 볶고 식혀둬야 낙지가 들어갔을 때 질감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야채 숨이 죽을 정도까지만 볶고, 불을 끈 채 식혀두는 게 포인트다. 낙지는 이 야채 위에 올려 센 불에서 1~2분만 휘리릭 볶아준다. 오래 익히면 식감이 뻣뻣해지니, 이 순간은 무조건 짧고 빠르게.
전분물은 마지막에 들어간다. 감자 전분을 찬물에 풀어 조금씩 넣으면 양념이 걸쭉하게 감기면서 윤기가 돈다. 물기 없이 매끄럽게 마무리되는 데 꼭 필요한 단계다. 마지막엔 참기름 한 방울, 후추 조금, 통깨 약간. 청양고추 송송 썰어 얹으면 맛도, 색감도 살아난다.
먹기 전부터 맵고 시원한 향이 먼저 훅 들어온다. 밥에 한 숟갈 올려 먹으면, 고소한 기름맛과 탱글한 낙지, 아삭한 오이가 입 안에서 착 감긴다.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던 조합이지만, 한 번 먹고 나면 이 조합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낙지볶음, 어쩌면 이제야 진짜 제대로 만들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