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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새싹

책상에 줄긋기

by 어느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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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모두 개인 책상을 쓰겠지만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길다란 책상 하나를 두 명이서

함께 쓰고는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둘이 사이 좋게 나누어 써도 충분할 만큼의 길다란 책상이었는데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고..

책상 가운데 줄을 긋고

넘어 오지마라는 글씨도 새겨 놓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어 놓은 선을 짝꿍이 조금만 넘어 오기라도 하면

한참을 아옹다옹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고 책상 가운데 줄을 그은 것이 아니라

그어 놓은 선을 넘어 오는 짝꿍과 아옹다옹하기 위해 줄을 그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마음에 친하게 지내자라는 한 마디 꺼내기가 몹시 쑥스러웠는지

책상에 줄 하나 그어 놓고서는

그 줄을 일부러 넘어 가서 짝꿍의 화를 돋우기도 하고

그 줄을 실수로 넘어 온 짝꿍에게 화를 내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져 간 것 같습니다


학년이 끝나갈 즈음엔 그어 놓은 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요



그런 길다란 책상 하나가 요즘의 마음에도 놓여 있는 듯 합니다

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앉아

한 가운데 줄을 그어 놓고

공평한 사랑을 해야 한다는 허울 아래

내 사랑이 더 크니.. 네 사랑이 더 작으니.. 하며

가운데 그어진 줄을 굳이 유지해가려 합니다


물론.. 가운데 그어진 줄을 유지하며 사랑한다면 다툴 일도, 손해 볼 일도 없겠지요

하지만.. 그 사랑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짝꿍과 같이 쓰던 길다란 책상처럼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 줄 하나 그어져 있다 해도

그 줄을 일부러 넘어 가서 내 마음을 격렬히 표현해 보기도 하고

그 줄을 용기 내어 넘어 온 상대의 사랑을 마음껏 받아 보기도 하면서


사랑이 무르 익을 즈음엔..

누구의 사랑이 더 크니 작니 할 필요 없이

둘이지만 하나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좋은 마음이..

더 좋은 사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가운데 그어진 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어린 시절.. 길다란 책상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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