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배척은 같은 곳에서 온다

옥시토신 이야기

by 한조각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적으로는 누가 정의하느냐에 따라 전부 다른 정의가 나오겠지만, 뇌과학적으로 보면 사랑이라는 뇌 안의 폭풍 속에서 명백한 구심점이 하나 포착된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인 신경전달물질이자 호르몬, 옥시토신이다.


옥시토신은 촉각에 강하게 반응한다. 연인 간의 스킨십에서도 반응하지만 따뜻한 온기나 부드러운 담요, 포근한 인형도 비슷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사람의 마음을 느슨하게 풀고,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며, 그것을 기분 좋은 감정으로 이어 주기 때문에 옥시토신은 흔히 “사랑의 호르몬”이라는 이명을 가지게 되었다.


옥시토신의 작용은 손에 닿는 범위 밖으로도 확장된다. 집단 안에서 누군가를 낙오시키지 않고 서로를 챙길 때, 혹은 챙김을 받거나,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우리는 비슷한 정서적 반응을 느낀다. 인류애가 느껴지는 따뜻한 소식을 접했을 때의 뭉클함 역시 옥시토신이 관여한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옥시토신은 집단 안에서 상대와 나 사이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서로를 끈끈하게 붙여주는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집단의 범위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서, 연인과 나 혹은 가족일 수도 있지만 직장이나 국가, 경우에 따라서는 인류의 경계를 넘어 반려동물이나 가상의 인물, 좋아하는 물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원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옥시토신이 집단 안에서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집단의 바깥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에게는 어떤 작용을 하게 될까? 맥락에서 예상되는 대로, 그 작용은 배척의 형태로 나타나기 쉽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뇌 속에서 서로를 강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던 메커니즘은, 종교전쟁이나 인종차별 같은 집단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쪽으로도 작동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옥시토신의 작용 방향이 사랑과 자비라고 흔히 오해하지만, 사실은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생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혼자만의 힘보다 관계와 집단의 힘이 압도적으로 큰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현대사회도 다르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힘을 주는 것이 옥시토신이다. 가족이 모욕당하면 내가 당한 것과 같이 분노하고, 가족이 사회에서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보듬고 챙기며, 가족의 성취가 내 성취인 것처럼 뿌듯하게 느끼는 이 본능적인 특성은 인류가 집단생활을 통해 지구 전역으로 확장해 나가게 만든 가장 강력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소속될 집단을 고르는 일에 유난히 신중해진다. 연인을 선택하는 일이 공구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구는 제 역할만 하면 되지만, 연인은 단순히 함께 다닐 사람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연인’이라는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에 나 자신을 소속시키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집단이 형성되는 순간 옥시토신은 접착제가 되어 그 집단과 나를 쉽게 동일시하도록 만든다.




이 지점을 이해하면, 사회 속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들이 훨씬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왜 아직도 혈연·지연·학연이 강하게 작동하는가. 왜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논리 안에서도 그렇게 강한 결속력을 유지하는가. 왜 10년간 아이폰을 써온 사람 앞에서 아이폰이 쓰레기라고 말하면 마치 개인을 모욕한 것처럼 분노가 튀어나오는가. 이 질문들은 서로 다른 현상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같은 메커니즘 위에 놓여 있다.


인간이 집단 속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이미 승리한 집단에 내가 속해 있다고 느끼면 된다. 역사가 충분히 축적된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경쟁해 이기는 것보다 이미 승리한 집단에 편입되는 쪽이 훨씬 쉬운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 성과와는 별개로, 이미 승리한 집단 속에 자신이 소속된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최신 유행을 따르거나, 셀럽들의 옷차림과 행동을 흉내 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집단을 이름 붙여 제3자로 만들고 희화화하는 행동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이런 동일시와 배척의 움직임 역시, 우리가 흔히 사랑과 자비의 상징으로만 이해해 온 옥시토신의 작용 범위 안에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오면,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품을수록 오히려 사회적으로 문제 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걸까.


사랑과 자비가 이런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취약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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