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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May 11. 2018

모든 엄마는 기업가가 될 운명이다

이건 기회이자 자신을 찾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내가 감히 위와 같은 말을 하게 된 계기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라는 선택을 하는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력, 자신만의 시간, 건강, 경제적인 것 등등. 나 이외의 또 하나의 생명을 잘 길러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도 무겁게 느껴지고, 나조차도 살기가 막막한 이 나라에 내 아이를 밀어 넣는 것 같아 나라에 대한 분노도 일게 된다.


정말 내 몸뚱아리 하나만 먹여 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아는 이는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나는 응원해주고 싶다.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고 자기 자신이 자기를 가장 잘 알 테니. 그리고 그 삶을 감당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일 테니.


하지만 내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건 이미 엄마가 된 그녀들과 엄마 되길 망설이고 있는 그녀들에게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정말 좋아하고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컸으면 하는 커다란 포부를 가진 몽상가였던 내가, 엄마 되길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감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닌 타인을 의식해서 아이를 가질지 말지 고민한다면 절대 말리고 싶다. 시부모님이 원하셔서, 주위에서 애는 왜 안 가지냐고 자꾸 물어봐서, 내 나이 또래들은 다 아이가 있는데 나만 없는 게 불안해서, 아이 하나쯤은 있어야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은 정말 미안하지만 아이를 가지면 안 되고 자격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무책임하게 낳고 기르고 있는지 알게 되면 슬픔을 넘어서 분노가 끓는다. 아이를 위한다는 말로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밀어붙이고, 자신이 힘들다고(키우다 보면 당연히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나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괜히 낳았다고 너 때문에 내 인생 망했다는 말을 아이에게 푸념 삼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를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다. 정신적으로 엄마가 건강하고 아이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벌어진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더욱 나아가서 아동학대 기사들을 보면 정말 심장이 얼어버릴 것 같다. 제발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길 간절히 부탁해본다.   


아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너무나도 마음이 뜨거워져서 서론이 약간 길어지고 말았다. 왜 엄마는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이렇게 단언하는 걸까.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진 거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 생각을 정리해보자.

1. 행복하기 위해서 내 사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이 출산 전까지 운 좋게 회사를 다녔다고 치자. 헛, 양수가 터졌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출산을 하고 적어도 3개월이든 6개월이든 운 좋게 1년이 되었든 육아휴직을 썼다고 하자.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고 해도(그 좋은 직장이라는 기준이 무엇일까? 월급을 너무나도 많이 준다? 복지가 좋다? 월급루팡이 가능한 꿀보직이다?) 우리 엄마들은 복직한 후에도 늘 불안에 시달린다. 아이가 아플까 봐 전전긍긍,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올까 전전긍긍, 괜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전전긍긍,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전전긍긍, 동료들의 눈치가 괜히 보여(일을 누구보다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괜히 눈치가 보인다면 그건 당신이 너무나도 착하고 성실하고 완벽주의자여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칭찬이라기보다 어쩌면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싶다.)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2. 시간적으로 내 사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먼저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하루 8시간 일해야지만 행복한 걸까? 8시간 일해야지 성실한 걸까? 8시간 풀타임으로 일하는 게 '정상'이라고 누가 정한 걸까? 8시간 일하는 것만이 '진정한' 일자리라고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우리가 월급쟁이의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없고, 회사에 가야지만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며, 사업을 시작하는 건 자본이 많이 든다는 착각 때문이지 결코 위의 질문들이 옳은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이 엄마인 나 자신이 9 to 6 풀타임 직장에 다녀야지만 '아,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이유도 한몫할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 자신도 프리랜서 일, 또는 시간제 일은 불안정한 일로 무의식 중에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아무리 확신을 해도 주위 사람들 때문에 흔들릴 수 있는 여지는 다분하다. 그만큼 우리는 쉽게 흔들리고 불안한 존재니까.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복직해도 일찍 조퇴해야 되거나 늦게 출근해야 하거나 하루를 통째로 휴가 아닌 휴가를 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은 생각한다. 하루에 3시간만 일할 수 있고 100만 원이라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감지덕지하다고. 정말 그걸로 감사하며 살아도 되는 걸까? 똑똑하게 일처리도 척척해내는 고등인력이 이렇게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채 살아가는 건 '엄마라서' 당연한 걸까?


3. 앞으로는 더더욱 시간이 들쭉날쭉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첫 1년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다고 보면 된다. 사실 거의 서바이벌 수준이라고 해도 된다. 내가 살아야 하고 갓난아이도 살아야 하니 정말 인간의 기본적 욕구만 충족하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가 우리들은 나의 자아실현은 고사하고 숨통이라도 트이기 위해(?!) 복직 또는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게 된다. 어린이집마저도 대기상태로 보낼 수 없는 상태면 더욱 막막하고 답답한 하루하루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남편에게 짜증 부리게 되고, 아이에게 괜히 화도 내고, 그렇지도 않으면 우리 마음이 썩어 문들어지게 되고...


그런 시간들을 어떻게든 버텨냈다고 치자. 그래서 일을 시작하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집안에 신경 못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 남편과의 크고 작은 다툼 등등 모든 걸 버텨냈다고 치자. 그러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럼 또다시 안정적인 듯 보였던 일상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것이다. 맞벌이를 하며 종일제 보육이 가능했던 어린이집 때와는 달리 초등학교 저학년은 낮 1~2시에 수업이 끝난다. 요새는 방과 후 교실이라는 생겼다고는 하지만(방과 후 교실에 대한 만족도가 어떤지는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이는 뛰어놀아야 한다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다) 엄마는 일을 하기 위해 아이를 방과 후 교실 또는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는 것과 자신의 퇴사 둘 중에 하나라는 엄청난 기로에 서게 된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둘째를 임신했다거나 그 외 예상치 못한 일들은 항상 닥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위의 상황이 오지 않더라도 나 같은 사람은 그 걱정을 하다가 불안감에 심장이 터져버려 건강이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다시 우리는 불안한 (월급쟁이로의) 복직, 그리고 퇴사, 또 복직과 같은 짜증 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나서 자신의 경력을 지레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거나 대학을 가거나 독립을 하고 나서는? 그때 가서 시간이 남으니 적당히 풀타임이면서 질이 낮은 일에 만족할 것인가?

4. 전업주부로 만족할 것인가?

어쩌면 위처럼 복직과 퇴사를 반복한 엄마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오뚝이 같은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걸 포기하고 출산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인내심이 없는 걸까? 그들은 실패한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가정을 최우선으로 선택한 그들도 대단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절대 어느 선택을 한 누구가 더 우월하다 말하고 싶지 않다.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는 대단하고 위대한 선택을 한 거라 말하고 싶다.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자(?)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하건 어쩔 수 없이 새 일이 구해지지 않아서 건 전업주부의 삶은 고단하다. 희생정신이 투철했던 우리 어머니 세대를 떠올려보자. 그분들은 행복하셨을까? 당연히 만족스럽고 행복하셨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름의 아쉬움을 누구나 가지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집안일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해도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과연 가족들은 그것에 대해 진정으로 고마워하고 있냐는 것이다.(이것에 대해 나는 '엄마의 일'이라는 글에서도 반성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쩌면 집안이 늘 이렇게 깨끗하고 항상 따뜻한 밥이 있는 일상이 너무나 당연해서 고마움을 잊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고마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머니는 서운함에 우울증이든 짜증이든 무언가가 마음속에 계속해서 쌓이고 있을 수도 있다. 집안일에는 완벽하나 짜증과 집착이 심한 아내, 그리고 집에서만은 쉬고 싶은 남편, 부모의 잦은 싸움을 보며 자란 아이... 내가 너무 과도한 예를 들고 있는 걸까? 아니면 꽤 많은 집안이 이런 상황을 크건 작건간에 겪고 있는 건 아닐까?


5. 남편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는 이런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요새는 요섹남 시대라며 은퇴 후 요리를 배우러 나오시는 남편 분들이 늘었다는 얘기였다. 그분들 중에 대부분은 부인을 잃고 혼자가 되신 분들이거나 아내가 더 이상은 남편 밥을 해주기가 싫다는 이유에서 졸혼아닌 졸혼을 선언한 경우였다.



요즘에는 요리하길 좋아하는 남편들도 늘었고 육아에 참여하는 분들도 많아졌지만 그게 대단한 일처럼 비치는 것도 약간 당황스럽다. 당연히 그게 고맙지 않은 건 아니고 그런 남편들을 폄하하자는 건 아니다. 4차 산업시대에 풀타임도 모자라 과도하게 오랫동안 직장에서 일한다는 게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일하는 시간이 줄어야 정상이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 순간 갑자기 인공지능이 그 일자리마저 뺏어야 아차 하며 깨닫게 될까?


너도 나도 워라밸을 외치고 있는 요즘, 남편과도 앞으로의 100세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한다. 남편이 50세에 은퇴해서 그다음에는 퇴직금으로 커피집이나 열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막연한 꿈을 꾸고 있다면 적신호다.(요새는 커피샵도 녹록치 않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긴 했지만) 커피집만 열면 월급쟁이 시절처럼 따박따박 수익이 들어온다는 보장이 있을까? 적자나 면하면 다행이지.


어쩌면 우리는 아무 준비없이 월급날만 기다리며 일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6. 아이를 위하는 최선의 길은?

아이 교육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부부의 경제활동과 노후 걱정만큼이나 큰 고민거리가 아이 교육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 교육을 걱정이다 걱정이다 말만 하지 사실 깊이 고민은 안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맞벌이하는 이유가 아이를 위한 일이고 가족의 행복이라고 하면서 인상 구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진 않은지. 그리고 돈만 벌면 아이에게 좋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비싼 학원에만 보내면 만사 오케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진 않은지. 그리고 그렇게 부모가 희생하며 너를 교육시켰으니 너는 좋은 곳에 취직하여 우리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압박 아닌 압박을 하고 있진 않은지.


7. 그걸 넘어 나를 위하는 최선의 길은 무엇일까?

아이를 다 키우고 나면 결국 두 부부가 남는다. 그때 가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어색하다는 부부들 얘기를 많이 들어보시지는 않았는지.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만의 이야기겠지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들이 그 나이 때가 되면 더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까? 아이만 다 키우고 부부가 또다시 결혼 전 연애하던 시절처럼 가끔 데이트나 즐기고 각자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걸 위해 우린 결혼한 걸까?


결국 아이들이 독립하면 우리들은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것마저 안 하는 사람은 계속 독립한 아이를 바라보며 그들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라 착각하며 이미 어른이 된 아이의 목을 조인다. 결국 부모의 자아실현이 아이를 놓아주는 건강한 방법인데 우리는 그 준비를 언제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아이를 독립시킨 지금부터 20년 이후인 50대 60대일까? 아니면 지금 30대, 40대일까.  


자신만의 경제활동을 하며 자아실현을 하는 삶이 대단한 사람들만이 가능한 게 아니라 엄마이기 때문에 더더욱 해야 한다는 나의 얘기가 간절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갔는지 궁금하다. 나의 경제활동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한몫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꿈으로 그치지 않고 이루어진다면 우리네 삶은 얼마나 풍요로울지 생각만 해도 신나는 나는 이상한 사람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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