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냥갑 Apr 19. 2020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날개짓

나에게 온 기회, 그리고 우리모두가 잡을 수 있는 기회

내가 어린 시절부터 괴로웠던 이유는 나 자신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묻는 질문들이 가족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궁금했던 일들이 그들에게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나는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내가 뭔가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건 아닐까. 그렇게 나에 대한 의심은 시작되었고 나는 내가 알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쓸모 있는 존재임을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면 나의 이런 목마름이 해소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에 대한 칭찬을 하시던 걸 들었을 때 나의 기분은 그다지 변함이 없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며 내 브런치에 쌓인 글들을 보여 드렸을 때 아버지는 매우 놀라워했다. 왜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냐며. 분명히 나는 말했었다. 다만 내 글들을 이제야 보여드린 것뿐이었다. 내가 만약에 아버지의 인정을 그렇게도 원했었더라면 아버지가 나를 인정하고 칭찬해주었을 때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의 목마름은 무엇이 원인일까. 나는 다른 것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의 인정이 아니라면 누구의 인정을 원하는 걸까.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정을 원하는 걸까? 하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 역시도 어떤 대상에 대해 어제오늘 좋아했다 식었다를 반복하는데, 대중의 취향과 인정을 붙잡아두는 것에 나의 인생을 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은 이어지다가도 쉽게 끊어져서 이 생각들을 하나로 이으려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의 생각들을 끊임없이 따라가서 그 끝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자유를 꿈꾼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어서다. 다음 달 카드값을 위해 월요일에도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을 자유를 얻는 힘 말이다. 


사람들이 괴로운 이유는 매번 불현듯 떠오르는 불안과 두려움을 그저 무시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왜 그것 때문에 괴로운지 마주 보고 싶지 않아서다. 마주 보면 더욱 괴로울 것이고 더 나아지는 건 없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내 안의 고통들을 마주한 결과 발견한 것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길이었다. 


모두가 이런 삶만이 '올바르다'라고 말해오는 세상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스토리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따분하다며 고개를 돌릴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그런 극한의 상황을 견뎌냈으니 그는 성공한 것이라고,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어쩌면 그런 극한의 한계가 그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건 아닐까라는 생각 말이다. 니체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할 뿐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인걸까. 여기서 사람마다 한계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전혀 다르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혼자 밥 먹는 것이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 더 괴로울 수도 있다.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기 때문에 각자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각자 다른 선택을 한다. 


소설가 안톤 체호프의 삶에 대해 알게 되면서 묘한 울림이 나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늘 궁금했는데, 안톤 체호프의 삶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순간 내가 외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를 읽고 있어서 더욱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있어도 어느 순간 문득 외로울 것이고 또 다른 자신을 끊임없이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여정 속에서도 우리를 외로움에서 구해줄 유일한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책과 글쓰기일 것이다. 수백 년 전 인물과 공감한다는 것은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않고도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 말이다. 글쓰기는 내 안의 동굴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일 것이다. 우린 늘 그 실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이 인생이라는 미로에서 끊임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것만 보면서 자신의 현실을 더욱 초라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 오늘이다. 태도가 모든 것을 바꾼다는 뻔한 말은 또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접했을 때 비로소 엄청나게 뻔하지 않는 말이 되어 나의 가슴을 울린다. '저 사람은 저랬기 때문에 잘된 거고 나는 아니야. 나의 삶은 빠져나갈 방법도 없을 만큼 비참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과거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미래의 어느 순간의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날이 어쩌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톤 체호프의 삶에서 그의 빛나는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책을 통해서. 그 책은 자신의 영혼을 맑게 닦기 위한 글쓰기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모두에게 자신의 삶을 사랑할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 자유로 가기 위한 여정이라면 글쓰기는 그 여정에 맞는 완벽한 준비물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상이고 기본이고 그런 거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