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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Nov 17. 2019

정상이고 기본이고 그런 거 없다

자기 한계가 어딘지 해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한달 전부터 쓴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하는 글들을 한군데 모아봤다. 일명 성냥갑 단편선. 1일 1글은 기본이고 2~3글을 쓴 적도 있었다. 예전의 나는 한달에 글을 4편 정도밖에 못썼다. 그게 정상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정상이고 나발이고 '기본'은 없다.


내 한계를 규정짓지 않는 것. 그리고 꾸준함으로 내 임계점을 넘어 본다는 것. 이제는 나는 믿는다.


나를 믿는다.





10년 전쯤에 혼자 간 상하이에서 어떤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작가 이름도 기억이 안나서 아쉽지만 이미지만은 강렬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돌로 만들어진 모습이었고 또 한사람은 고깃덩어리(?)처럼 표현되어 있었다. 돌 인간은 고깃덩어리를 들면서 상대방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고, 또 다른 상대방은 돌을 든 채로 돌 인간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 때의 느낌도 너무 강렬했는데 한참 지난 오늘 갑자기 다시 그 이미지 떠올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려봤다.


다른 사람의 삶을 옅볼 수 있어서 더 힘든 요즘. 나는 더더욱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감사일기같은 건 오글거려서도 못쓰곤 했지만 이제 쓰려고 한다. 내게 없는 걸 채우기만 하려는 삶은 즐겁기보다 괴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성장동력은 필요하다. 다만 짧은 인생 나자신을 학대하기보다 안아주며 토닥이며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내가 가진 걸 잊고 남만 부러워하기에는 우리 삶은 너무 소중하다.





나는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애들이 좋았다. 왜인지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좋았고 몸이 아파 감정적이었던 엄마보다 상냥하고 차분했던 어린이집 선생님을 더 좋아했다. 사실 어린 시절의 나는 감정적인 어른이 아닌 '어린 나'를 보듬어주는 '진짜 어른'에게 보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몸이 고단해 감정적이었던 엄마도 이해가 되고 어른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는 안정적인 어른이 필요했다. 나의 섬세함도 보듬어주고 안아줄 수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전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이런 말들을 해주고 싶다.


1. 아주아주 이쁜 아이들이 올 테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나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반쪽을 찾아 헤맸고 되도록 빨리 엄마가 되고 싶었다. 사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철벽녀에다가 연애 고자였던 나에게 연애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반쪽을 만났고 아이들도 만났다. 내 계획(?)대로 잘 이루어졌으니 연애 때문에 찌질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반쪽을 만나 아주 큰 행복을 경험했고 아이들을 만나 하루하루 멋진 친구이자 엄마가 되기 위해 성장한다. 신호등 빨간불에 차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아이가 보고 있기 때문에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게 된다. 나에게 기분 좋은 책임감을 주는 건 아이라는 커다란 존재다.

2. 지금부터 '꾸준히'의 강력함에 대해 알려줄게

꾸준히는 '매일매일'이어야 해. 그러니 너무 무리해서 3일하다가 포기하지 말고 아주아주아주 쬐~~~끔씩이라도 한달지속할 수 있는걸 해보는거야. 그리고 작은 성공을 맛보는거지. 그러다보면 점점 자신감이 붙을거야.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의 힘을 이용한다면 너는 강력해질거야.

3. 잠, 걷기(달리기), 글쓰기

밤을 새는게 무용담처럼 느껴지는 주위분위기에 휩쓸리면 안돼. 잠이야말로 제일 중요하고 그걸 간과해서 건강을 잃게 될뻔했잖아. 잠을 최우선으로 두고 그 나머지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에 집중하면 돼. 시간이 무한정 많다고 일을 다 하는건 아니니까. 걷기를 매일 안하면 넌 죽을수도 있다. 진짜 잠과 걷기와 글쓰기는 너를 살리는 길이야. 너의 육체와 정신 모두.

4. '함께'한다면 모든 게 가능할 거야

꾸준히의 힘과 건강한 몸/정신을 가지고 있어도 너는 뭔가 부족할거야. 그게 영감을 주는 멋진 사람들과의 '연결'에 목말라서라는걸 나도 이제서야 알았어. '함께'한다면 힘든 것도 지겨운 것도 다 이겨낼 수 있어. 내가 장담해.

실제로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나는 지금 이 네가지를 실천하고 있고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돌아갈 수도 없지만 돌아가기도 싫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매일매일 어제의 나와 싸우며 성장하려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포용력 있게 따뜻하게 보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게 불가능했다. 항상 나를 더 채찍질하고 잘 못해내는 게 용서가 안되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고 포용력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대해 주었으면 해서였던 거 같다. 내 안의 '나'에게는 가혹하게 대하면서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싶었다니 참 모순된다.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따뜻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가치관이 별로 맞지 않은 경우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아니기 때문에 변화시킬 수도 없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빛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나에게 대해서는 철저하게 그러지 못했던 거다. 이런 마음 상태가 지속되면서 나도 내 안에 느끼는 이 혼란을 풀 방법을 못 찾아 힘들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 안의 갈등, 그리고 사람과의 문제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낼 방법을 알고 있다. 당장 달리러 뛰쳐나갈 수 없다면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 차분해지고 거기서만 멈추지 않고 마음 속에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뛰러 나간다. 몸을 힘들게 하면 내가 진정 지금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큰 일이 닥치더라도 그걸 이겨낼 힘(육체적/정신적 체력)을 쌓아놓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일주일 중에 가장 컨디션이 좋은 날이 잠을 잘 자고 달리기를 했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냈을 때다. 완전히 아무것도 안 하는 날도 필요하다지만 나는 달리기만은 그 어떤 날에도 포함시키려고 한다. 달리기를 쉰다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달리기는 하기 싫은 것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자주 빠지게 될 것이다. 나에게 달리기는 잠처럼 예외 없는 것으로 내 뇌에 각인시켜놓고 있다.

이렇게 내 안의 평온(잘 자고 운동을 했고 그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냈을 때)을 찾은 다음에는 우리 가족에게 더 잘 대할 수 있다.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고 더 깊은 이해심이 생기고 아이의 짜증에도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고 최고의 자아가 되려고 오늘도 이 글을 쓰며 다짐한다.


내가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다니 참 신기한 경험이다. 나는 그 자리 그대로에 있었는데 새로 발견하게 되다니...


내가 이런 쪽 덕후인 줄 이제 알았다

<내가 나의 덕후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요새 경제적인 자유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잊고 있었던 게 하나 생각났다. 내가 뭐 때문에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어 했는지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 말이다.


미니멀리즘과 미식.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더 많은 걸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잘 이용하기 위해 내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삶은 미니멀해야만 했다. 옛날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머리 속에 구겨 넣었다. 마치 겨울을 나기 위해 식량을 모으는 다람쥐처럼 필사적으로 모았다. 나에게는 저장된 정보를 분류하는 나만의 방법도 있었다. 한 가지 분야에만 관심이 가는 게 아니라서 분야별 폴더는 미어터질 듯했고 그 많은 분야를 정리할 나만의 분류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정보를 제대로 사용도 못한 채 하드를 날리고 나서 정보 모으기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인풋만 넣던 나는 그 정보들을 분류하느라 또 수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알게 된 것이 미니멀리즘이었다. 나에게 충격이었고 처음 알게 되었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 내가 이걸 원하고 있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작은 집에서도 여러 가지 기능을 다 갖춰져 있고 눈이 피로하지 않은 깔끔한 내부를 보고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살게 된다면 나의 머리 속도 제대로 정리될 것만 같았다.



또 한 가지 요소인 미식은 언제나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분자요리나 새로운 기법의 휘황찬란한 그런 미식이 아니라 진짜 맛있는 음식이 좋았다. 그런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여유가 생길 때 보던 것은 음식 관련 다큐나 영화였다. 아메리칸 셰프(Chef. 2014 - 감독 존 패브로)를 보면 심장이 뛰었다. 영화 아이언맨 감독이자 배우로도 활약하는 존 패브로의 또 다른 넷플릭스 쇼 '셰프 쇼'도 요새 챙겨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진짜 요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다. 셰프의 테이블은 좀 더 진지한데 여러 가지 스타일의 셰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설레고 이욱정 PD의 요리인류도 좋았다. 우리나라 프로그램 중에 요새 보고 싶은 것은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식재료들에 대해 알고 그들의 철학을 공유하는 것도 너무 좋다. 내가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면 이태리와 스페인같은 미식의 나라로 가서 에어비앤비로 묵으며 현지 미식 여행을 하고 사람들과 현지 언어로 얘기하고 싶었다. 이태리 시골로 가서 이태리할머니의 숨은 비법 레시피도 함께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내가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면'이라는 말 뒤에만 붙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20년 후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글을 쓰며 나의 목차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었다. 그런 것처럼 미니멀한 공간과 미식을 추구하는 삶도 지금 당장 하면 되었다. 정말 너무나도 당연한 거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현재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돈벌이가 급급해 그러지 못했던 거다.




나는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중요한 게 회복탄력성이라고 생각한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소프트 스킬을 가진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겁날 게 없을 것이다.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그런 어른이고 싶다.


내가 듣기 싫은 말

<이 말을 들으면 맥이 쭉 빠집니다>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 "그건 안돼~~~ 왜냐면............" 안 되는 이유를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맥이 빠진다. 해결책 없이 불안감만 조성하고 그럴싸한 비평가 인척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문제제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게 잘못 변질되어 자기가 냉철한 지식인인양 으스대는 수단으로 쓰이는 게 싫다. 전 직장에서 CTO 셨던 괴짜 부사장님을 존경했던 이유가 있다. 부사장님은 직원들에게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하지 말고 되는 이유를 가져오라고 했었다. 그리고 부사장님 본인도 안된다고 직원들 의견을 무시하기보다 되는 방법쪽으로 믿고 진행하게 해 주셨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피해자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들도 수많은 '안돼'중독자들에게 까였으니 '일단 해보는 거야'라는 마음이 생기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실패해도 다시 회복하는 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는데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맞히는 시험형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회복탄력성이라는 소프트 스킬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안 되는 이유는 찾아보면 999만 9999가지 나오지만 그 안 되는 이유가 판치는 문제 속에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존재한다.


그냥 하는 것.


그래서 문제점을 너무 많이 알아 겁먹은 사람은 시도조차 못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바보가 해낸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나는 가끔은 안되고 실패한 사례가 수없이 많은 문제도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나이 들면서 내가 아는 게 진리라고 믿는 뒷목 빳빳이 세우는 어른보다 늘 겁 없이 도전하는 어린아이이고 싶다.



삶에서 변화가 온다는 것은 겁이 날 법도하지만 그게 부정적었어도 나에게는 결국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이래서 삶에서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는가보다.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이는 그걸 계기로 다신 일어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어떤 이는 그걸 발판삼아 엄청난 걸 이루기도 하니까.


내 삶의 전환점을 공유해볼까요

한달매거진 6번째 질문 : 나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 세 번의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각각의 전환점 이후,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전환점 1. 건강을 되돌아본 1주일


나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킨 첫 번째 사건은 9살 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것도 아니고, 6학년 때 잠깐 중국 현지에 있는 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나에게는 그런 변화가 싫지 않았다. 적응력은 갑이라고 스스로 자부했었다. 외향적이기보다 내향적인 편에 속하는 나지만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엄청 잘 적응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는 압박보다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환경의 변화는 나에게 별 특별하지는 않았다.


정작 나를 크게 뒤흔든 사건은 대학생 때 일어났다. 나는 운동신경도 꽤 좋은 편이라 나의 체력이 좋다고 믿었었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밤샘 과제며 술자리며 빠지는 법이 없었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해도 정신력으로 버텼고 자주 새벽 첫차를 타고 집으로 오곤 했다. 점심시간 없이 연속으로 수업 운이 나쁘게 잡힌 학기에는 초콜릿으로 때우면서 끼니도 잘 챙겨 먹지 못했었다. 잠도 불규칙하고 운동도 전혀 하지 않고 청춘의 몸뚱아리만 믿은 나는 어느 날 크게 아팠다. 어디가 아팠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하필 시험기간이었던 1주일간 학교를 아예 못 나갔고 제발 아픈 것만 낫게 해달라고 울며 빌었던 것만 생각이 난다. 그렇게 나는 지옥 같은 1주일을 보냈다. 근데 그보다 더 지옥 같았던 것은 그 1주일간 밀린 과제와 못 치룬 시험이었다. 그 당시 나는 엄청난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휴학을 할까도 고민을 했었다.


다행히도 교수님께서 부담을 내려놓으라고 배려해주셨고 휴학은 안 했지만 그 1주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큰 전환점이었다. 내 나이 또래에 비해 내가 건강 타령을 하는 것도 이 전환점이 계기였다. 나는 30대지만 60~70대가 느끼는 두려움이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이해가 된다. 내가 아파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사실 20대에 일찍 알게 된 것을 감사한다. 잠과 음식, 정신건강의 소중함,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운동까지. 나는 70대 노인이 30대의 몸으로 환생한 것처럼 지금의 건강에 감사하고 또 좋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전환점 2. 완전한 자유라는 늪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내가 구체적인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제약을 두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내가 나의 진로를 선택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완전한 자유가 나를 오히려 옭아맸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둔 게 오히려 독이었다. 선택지가 너무 넓어서 하나로 좁히지도 못하고 내가 대체 뭘 하고 싶은지도 길을 잃을 정도로 헤매게 되었다. 그러다가 사회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면서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선택을 내 삶에서 제외시켜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월급을 받는 생활을 하면서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경력이 단절된다는 건 피할 수 없겠다는 걸 처음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육아한다고 '경력이 단절'된다는 말자체에도 거부감이 있다. 나는 여전히 삶 전반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고 육아를 통해 사회적인 고민을 처음 하게 되었고 내 생각과 경험의 폭도 넓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 있으면 내가 원하는 일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경제활동에 대한 생각이 정말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돈이 들어오는 경제적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루에 9 to 6로 한 공간에서 묶여서 하는 경제활동이 아닌 다른 방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나에게 엄청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글쓰기가 어떻게 돈이 되느냐 할 수 있겠지만 나의 이 글쓰기는 영어로 글을 써서 세계무대로 파이를 키우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그림 역시 이미지가 갖는 힘은 언어를 초월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자유는 내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육아라는 선택지가 나에게 나아갈 길을 더 명확히 제시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전환점 3. 연결의 힘


육아를 하면서 틈틈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가끔씩 밀려오는 외로움을 달랜다면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외로웠다. 나와 함께 성장을 할 영감을 주는 동료들이 고팠다. 사실 씽큐베이션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연결을 원하고 있는 건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나에게 충격을 안겨준 멘토의 존재가 컸고 그들 속에 속해있고 싶었다. 씽큐베이션을 시작하고 나서는 책 읽고 서평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걸 다 해내는 것만이 목표가 되었다.


그러다가 끝나갈 즈음이 되니 불안해졌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이 모든 게 신기루같이 느껴질 것이고 나에게는 좋은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는 추억만이 남을 거라는 생각에 슬퍼졌다. 그러다가 한달쓰기를 만났다. 씽큐베이션 멤버들과도 계속 이어지면서 하는 한달쓰기라 씽큐베이션이 끝난 것 같지도 않게 느껴졌다. 한달쓰기 1기를 끝내고 한달매거진과 한달머니도 하고 있다. 그리고 30일간의 드로잉 모임도 하고 있다. 올해 7월부터 4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정말 제대로 쉰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그 쉼 없음이 기약 없고 지치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게 보장이 되는 느낌이라 꽤 할만한 거다. 내가 진작에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그전까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착각하던 게 무안해졌다. 난 열심히 산 적이 없었다. 그저 힘들어하기만 했던 거다. 내 한계를 너무 단정 지었고 겁먹었다. 이젠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의 힘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만이 나에게 남았다.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된 이 순간이 참 소중하기도 하고 현실같지 않게 묘하게 느껴진다.


나를 알아가는 여정

<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부족했다..>

한달매거진 Day 10 :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요? 당신을 대표하는 특성을 세 개의 문장으로 표현해 주세요.


오늘의 주제에 대해 풀기에 앞서 진선님의 ‘테마를 구체화하는 목차 만들기’라는 주옥같은 글을 읽었다. 그 글에서 나오는 질문대로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질문 1 :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요? (= 당신이 줄 수 있는 것)

자기 안의 빛을 못 찾고 자존감 바닥인 사람들이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랬듯이. 저도 찾는 중이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내가 기대되거든요. 글쓰기, 달리기로 점점 내면이 단단해졌거든요. 과거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내 동생에게,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 지금 시대 청춘들에게, 그리고 불안한 어른 속에서 더 힘들어할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해도 무릎 탁탁 털고 일어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전 솔직함과 호기심, 으쌰 으쌰 밝은 에너지, 회복탄력성은 끝장나니까요.


질문 2 :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가요? (= 당신이 얻고 싶은 것)

포용력 있고 여유로운 사람. 실력자. 경제적 자유인. 현명한 사람. 유머러스한 사람. 보고 있고 함께 하면 힘이 나는 사람. 막연한 괜찮아 할 수 있어가 아니라, 현명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사람.


글로 써보니 나에 대해서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풀어봤다.


1.  넘어져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 (포기하지 않은 사람) 성장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이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도 있겠지만 요새 들어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힘’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 옆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시 도전해볼까라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오기가 생겨 포기하기가 싫은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못해왔던 꾸준함이라는 힘을 잃고 싶지 않아서인 게 크다. 나는 어제의 나보다 항상 더 나아지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러니 지금 잘난 사람 보며 부러워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내가 매일 성장한다. 언젠가 그들을 넘어서는 날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기 때문이다.


2. 믿을 수 있는 사람. 진정성 있는 사람.


요새 함께 성장하는 재미에 푹 빠졌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믿음직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받는다면 정말 영광스러울 것 같다. 신뢰만큼 얻기 힘든 것도 없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잃은 신뢰는 되찾을 수 없다.


3. 포용력 있고 유머를 가진. 여유 있는 사람


내 삶의 기본 바탕에 유머가 깔려있는 거 같다. 웃음을 잃으면 균형이 흔들린다. 진지할 때도 있지만 웃음만큼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주위를 밝게 하고 걱정을 잠시 잊게 해 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고수는 유머로 승화시켜서 상황을 부드럽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생각의 깊이는 갖되 유머를 탑재한 여유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막상 꺼내보니 내 두려움이 별거 아닌걸로 느껴졌다. 모든지 보이지 않으면 더 겁나는 법이다.

밝은 빛을 쬐서 그 상대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진다.


즐겁고 뿌듯한 매일매일이 모여 행복한 인생이 된다. 지금 나의 하루 중에 행복한 순간이 단1초도 없는데 10년 후가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그리고 그런 긍정적인 기운은 전염이 된다. 그래서 요새 내가 사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보다.


지금 당장 기분이 좋아지는 법

<오글거려도 한번 해보면 피식피식 웃게 된다. 그리고 그 여운은 오래간다>

한달매거진 Day 11 :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순간들은 언제인가요? 언제든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드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좋아하는 소소함은 어디에 있나요?


우린 행복을 좇아 앞으로 달린다. 행복하려고 돈을 벌고, 행복하려고 사랑을 찾고, 행복하려고 물건을 소비한다. 가끔 모두가 행복에 중독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을 추구하는 데 막상 '나 요새 너무 행복해'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누가누가 더 불행한가 시합하듯, 아니면 불안함을 토로하는 게 좀 더 이성적인 사람인 듯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SNS에서도 행복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진짜 행복해서 포스팅을 하는지, 이런 행복한 나를 올리면 남이 부러워할 거 같아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지. 한 잡지에서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새해 소망에 대해 물으니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지 않은 세상이 되길'이라고 했는데 그게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내 작은 행복이 중요한데 내 행복이 남과 비교했을 때 별거 아니게 느껴진다면 내 행복은 행복이 아닌 걸까.


흔하고 오글거리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감사일기를 쓰라고들 한다.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내가 가진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하지만 너무 현재 삶이 팍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얘기마저 듣기 싫어한다. 내 삶이 이것보다 나아진다면 분명히 행복해질 거라 착각하는 것이다.


은퇴하신 부모님을 봐도 주위 사람, 그리고 책이나 미디어 속 인물들을 봐도 그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하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이 행복해한다. 행복에 대한 생각도 부익부 빈익빈인 건가. 억지로 행복하려고 머리를 쥐어짜기보다 매일매일 피식거리거나 입꼬리가 올라갈 때 하나씩 메모해서 조금씩 작은 행복을 늘려간다면 사람들의 행복도도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소소한 행복들 투척.


1. 인생을 이제 40개월 살았는데 40년 산거 같은 말을 하는 첫째를 볼 때 너무 웃기고 귀엽다.

2. 병맛 B급 개그 드립을 볼 때 너무 신난다. 혼자만 알고 있기 아쉬울 정도다.

3. 들깨칼국수 인생 맛집이 있는데 거기 들깨칼국수를 포장해와서 집에서 온 가족이 먹을 때 세상 행복하다. 겉절이랑 같이 먹으면 핵 꿀맛이고 칼국수 다 먹고 밥도 비벼먹고 배 두드리며 쉴 때 너무 행복하다. 첫째 아이도 너무 잘 먹는 메뉴다. 들깨칼국수 먹은 다음날은 어린이집에 가서 하루 종일 선생님들한테 자랑해서 알림장에 그 내용이 쓰여있을 정도다. 어린이에게도 핵 꿀맛인가 보다.

4. 요새 성장 중독이라 영상들을 되도록 안 보는 편인데(영상 보느라 시간이 너무 순삭 되어서) 점심 먹을 때 혼자 잠깐 10~15분간 넷플릭스 음식 다큐를 찔끔씩 이어서 보는데 그 순간이 세상 짜릿하고 행벅하다... 행복 아니고 행벅....(하트) 바쁠 때 아주 잠깐 갖는 휴식이 세상 짜릿한 것처럼.

5. 예전에는 뭔가 많이 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충분히 못한 거 같아 조급하고 자기 전까지도 죄책감이 들었었다. 지금은 한달매거진과 한달머니 쓰고, 책 찔끔이라도 읽고, 그림 그리고, 저녁에 2.5킬로 달리고, 저녁밥 잘 만들어 가족 먹이고 나면 세상 뿌듯하다. 열심히 사는 게 지치고 힘든 게 아니라 세상 뿌듯하다. 자려고 누웠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6. 갓 돌 지난 둘째가 넙죽넙죽 밥 잘 받아먹고 잘 클 때 뿌듯하다. 포동포동한 게 내 훈장 같다.

7. 모유 먹일 때 나랑 둘째 쪼꼬미랑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다.

8. 남편이 요새 나의 긍정 파워에 전염되었는지 편안해 보인다. 행복하다.

9. 매일 밤에 달리고 나면 행복하다. 내가 매일 한 단계씩 나와의 싸움에서 이긴 듯한 기분이 든다.

10. 구글 애드센스 수익이 0.1불이라도 오르면 기분이 째진다.


11. 둘째 지윤이가 새벽에 안 깨고 쭉 자면 나도 푹 자게 되니 컨디션이 최상이라 세상 행복하다.

12. 세상에 멋진 사람들이 많고 내 주위에 성장 중독자인 멋진 동료들이 많다는 것에 너무 행복하다.

13.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해서 행복하다.

14. 비바람 막을 집이 있어서 행복하다.

15. 우리 침대 매트리스가 꿀잠 자기 너무 좋은 상태라 누울 때마다 행복하다. 어디 다른 호텔 하나도 안 부럽다.


16. 맛있는 떡볶이 소스를 발견했을 때 세상 행복하다.

17. 요새 매일 2개 글은 기본으로 올리고 있는데 한 달에 글 4~5개 쓰던 게 max였던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너무 짜릿하다. 포스팅 일자를 보면 10월 1일, 그다음 글이 10월 9일.... 이 아니라 1일, 2일, 3일, 4일..... 이런 식으로 연속으로 매일 업로드된 걸 볼 때 짜릿하다. 스탬프 모으는 기분이다.

18. 현재의 나에게 너무나 찰떡으로 도움이 되는 글이나 책 구절을 읽으면 세상 날아갈 듯이 기쁘다. 보물을 발견한 것 같다.

19. 햇살 좋은 날 산책하면 잠시 하와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기분이 좋다.

20. 브런치를 켜서 글을 쓸 때 기분이 좋다.(최종 업로드 공간이 네이버든, 티스토리든 나는 초안은 무조건 브런치로 쓴다. 작가의 서랍에 넣어놓는 한이 있더라도)


21. 길가다 길냥이를 발견할 때. 너무 귀여웡.

22. 아삭거리는 샐러드 먹을 때 너무 기분이 좋다. 상큼한 드레싱의 향까지도.

23. 의도하지 않은 내 드립에 사람들이 빵 터져 줄 때.


또 생각나면 업데이트해야겠다.

쓰고 나니 기분이 참 좋네.



10년 후의 나에게 던진 한마디

<내가 이런 말을 던지게 될 줄 나도 몰랐다>

한달매거진 Day 13 :10년 후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상상하는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비슷한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가장 첫 번째 질문인 '10년 전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의 을 다시 봤다. 나는 과거의 나에게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고 잠/달리기/글쓰기/꾸준함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의 강력함을 강조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나는 지금 너무나도 행복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더욱 성장하게 될 내가 너무나도 기대되었다.


나는 10년 후의 미래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처음에는 '잘 사니?' '행복하니?' '돈은 많니?'와 같은 얕은 질문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전의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곱씹고 오늘 한달라이브를 하면서 동료들이 했던 답변들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고맙다고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이들과 함께 이 성장의 트랙 위에 안 서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지금의 내가 한 선택들에 미래의 나는 고마워할 것 같았다.


10년 후의 나 : "그때 한달매거진하길 정말 잘했어. 그지?"

지금의 나 : "그러게"

10년 후의 나 : "나한테 할 질문 없어? 나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지금의 나 : "아니 별로. 내가 지금 더 몰입해서 지금을 살면 10년 후의 너는 더 멋져질 거니까 그냥 안 물어볼래. 별로 궁금하지 않아. 내가 관심 있는 건 지금의 나, 내가 지금 해내야 할 일들이야."


그렇다. 나는 미래의 내가 연 수익이 얼마일지, 어떤 삶을 살지 사실 궁금하지 않다. 지금 나는 내 현재에 몰입한다는 즐거움이 뭔지 이제 알아가는 중이다. 다른 헛된 감정에 휘둘리거나 미래나 과거에 연연할 시간조차 아깝다. 10년 후의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을 것 같다.


" 여기 와서 이러고 있지 말고 너의 현재로 가서 열심히 살아. 그게 네가 할 일이야."




글쓰기를 아예 못해서 담임한테 면박을 받던 아이가,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고 안하면 견딜 수 없어졌다. 그랬던 글쓰기인데 이렇게 한달매거진을 통해 글쓰기와 더욱 깊이 사랑에 빠지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


예상치못한 나를 발견한다는 건

<두려운 게 아니라 어쩌면 반가운 일이다>

한달매거진 Day 15 : 한달매거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현재 30일의 여정에서 중간 지점에 와 있습니다. 자신의 [성향과 삶, 과거와 현재]를 탐구했던 지난 14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만 나에게 알기 정말 어려운 상대는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를 탐구했다. 나를 찾는 여정에 평생이 걸리더라도 나를 제대로 알아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쩌면 남들보다는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생각했다. 이렇게 내 안의 깊은 상처까지 도려내고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내가 나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주위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곤 했었다. 대부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대답 또는 두리뭉실한 대답으로 어물쩍 대화가 넘어가곤 했다. 어떤 이는 정말로 생각해본 적이 없을 수도 있고 나의 이런 질문들이 불쾌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싶어서 한 질문이 아니고 단순하게 궁금했다. 어린아이가 '하늘은 왜 파란색이에요?' 묻듯 정말로 궁금했다. 왜 하늘이 파란색일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 질문은 당황스러울 것이고 어떨 때는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나에게 그 대답을 들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달매거진은 어쩌면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타인에게 나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여기 질문들은 은밀한 내 일기장 속에 꼭꼭 숨겨놓고 비공개로 쓰고 싶은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글은 SNS에 공개해야 하는 게 원칙이고 그게 한달플랫폼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나 역시 20대 초반까지 나만의 일기장에 글을 써왔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깊고 어두운 이야기일수록 더욱 나만 봐야 한다고 믿었다.


7일 차 '당신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는 가장 기억에 남고, 나 스스로가 다 쓰고 나서 당황스러웠던 질문이었다. 그저 처음에는 나의 롤모델에 대해 쓰면 되겠지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글을 쓰면서 마이크 베이어의 ‘베스트셀프’에 나온 개념인 최고의 자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펑펑 울었다. 나도 당황스러울만큼 ‘내 안의 자아를 죽이는 게 된다’라는 문장을 쓰면서, 고치려고 글 전체를 다시 읽으면서도 또 오열하며 울었다.




한달매거진의 모든 질문은 내가 처음 그 질문을 읽고 예상한 내 답변과 글을 써나가면서 나온 이야기, 그리고 이 답변을 하나의 글로 마무리짓기 위해서 끝맺을 때까지 그 결과가 항상 예상을 빗나갔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9일 차의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만드나요?'라는 질문은 가장 쓰기 어려울 것 같았고 나에 대해 드러내는 것을 남들보다 두려워하지 않는 나조차도 쓰기 망설여졌다. 진짜 나의 어두운 면을 다 드러내서 남들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쓰고 나니 눈물은커녕 나의 두려움이 진짜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허무할 정도였다. 13일 차의 '10년 후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에서도 첫 문장을 쓸 때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답변으로 글이 끝맺어졌다. 나와는 다른 자아가 나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던져주고 온 듯했다. 이게 최고의 자아가 나타난 순간인 걸까? 아니면 어느 예술가가 말했듯이 그림을 계획하고 그린 게 아니라 자신은 다 그려져 있는 밑그림이 눈앞에 보이고 있고 그 선을 따라 그리는 것뿐이라는 것과 비슷한 나에게 온 작은 기적인 걸까.


자기 발견을 위한 한 달간의 여정의 딱 중간지점에서 내가 얻은 것은 안정감과 믿음이었다. 항상 내가 어디로 튈지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지 나조차도 예상이 되지 않던 내가 별로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어떤 내가 되더라도 차분히 받아들이고 믿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더 이상 내가 두렵지 않았다. 컨트롤이 불가능한 내 안의 두려움을 단단한 자물쇠로 가둬둔 게 아니라 언제든 달래고 통제 가능한 고삐를 쥐게 된 기분이다.


이래서 내가 글쓰기를 그만둘수 없다. 이게 내가 글쓰기의 힘을 믿고 글을 공개적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력한 이유다.




어쩌면 나는 손에 넣은 걸 잃는 게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물건에 집착하기 싫은건지도 모른다.

물건에 대한 것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런' 여행은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지금까지 경험했던 여행 중에 가장 즐거운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옛날부터 몰입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궁금했다. 요새들어 몰입을 여러 차례 경험해보니 그 이전까지는 몰입을 한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저는 사실 못하는 걸 못한다고 말하는 데에 좀 겁이 없습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며 후회하며 사는거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일본어를 한국어만큼 구사하지만 일본어는 쓸데가 거의없어요. 중국어를 택시 아저씨와 수다떨 정도는 하지만 그 이상 공부하지 않으니 늘 기회가 없었구요.

영어는 해야지해야지하면서 후회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납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일을 냈습니다. 저와의 약속을 단단히 했거든요. 이제 물러날 때가 없으니 뽑은 칼로 무라도 썰려고 합니다.



나는 내향적이지만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모순되는 것 같지만 사실 집에서 쉬는 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집순이기도 하다.

나의 성향에 대해 요새들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나 자신이 참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자존감 올라가는 소리가.


반짝반짝

<내가 굳이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

한 달 매거진 Day 18 : 당신은 좋은 점과 나쁜 점 중 어느 쪽을 먼저 보나요? 그런 성향은 일, 인간관계,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그 성향에 만족하나요. 아니면 바꾸고 싶은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내 성격의 좋은 점을 잘 보지 못하는 반면(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다른 사람의 좋은 점들이 잘 보인다. 그 사람의 반짝이는 좋은 점들을 일부러 찾으려고 안 해도 흘러나오는 것들이 쉽게 보인다. 내가 왜 그런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는 새로운 것을 참 좋아한다. 새로움을 만났을 때 나에게 주는 자극을 사랑한다.


내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기도 하고 새로움 속에서 보이는 좋은 점들이 나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준다. 내가 이렇게 된 게 부정적인 주위 말들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안 되는 이유나 안 좋은 점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다 알 정도로 넘치게 들어왔다. 그러니 좋은 점에 집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마냥 낙천적인 것만은 아니다. 내 성향이 원래 조급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좋은 점에 집중하려 해도 어느 정도의 조심은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강점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이 말은 사실 얼마 전까지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부족한 점만 채우려고 아등바등 대던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자기 강점을 아주 날카롭게 다듬다 보면 약점은 어느새 안 보인다던 말이 '이제야' 조금 알겠다. 그 전에는 '말은 쉽지...'라며 계속 부족한 양동이에 물을 붓기 바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반짝임이 보이듯 나에게도 나만의 반짝임이 있다. 이걸 알게 된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사람들 모두가 자신만의 반짝이는 빛을 볼 수 있기를.



시간을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강력한 방법은 있다.


시간을 나의 편으로 만든다는 것

<이야.... 정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말이다>

참 놀랍게도 <언어 씹어먹기> 모임을 시작하면서 친정에 온 듯한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항상 조급했고 시간에 쫓겼다. 시간이 부족하다 투덜댔고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갈까 봐 불안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이뤄놓은 것 없이 흰머리 노인이 되어 있을까 봐 두려웠다.


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었고, 빨리 그림을 잘 그리게 되고 싶었고, 빨리 대단한 내가 되고 싶었고, 빨리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빨리'라는 말에 노력하는 나는 없었고 그저 조바심 내는 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꾸준함'의 힘을 알게 되었다. 꾸준함시간을 나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함을 가지고 있다. 내가 오늘 이 순간을 제대로 보낸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잘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걸 알게 되니 나의 조급함은 신기하게도 사라졌다. 매일매일이 기대로 가득 찼다. 오늘 일을 제대로 해낸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니 더욱 자존감이 높아졌다. 더욱 대담한 일을 계획하고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꾸준함의 선순환이다.



나는 철저하게 워라밸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워라밸이 중요하지 않아졌다니 내게 그 동안 무슨 일이 생긴걸까.

예전 회사에 다닐 때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내가 다니던 곳은 LED조명회사의 해외영업부서였는데 회사 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직무와 월급에 만족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만나면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통에 있던 기운도 빠지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럼에도 그 회사를 3년 간 다녔던 이유는 CTO였던 부사장님이 특이한 분이셨기 때문이었다. 첫 직장이었지만 앞으로도 그런 상사를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분은 안 되는 이유를 말하기보다 되는 이유를 찾았고 모르면 뭐든지 물어봐야 직원들 간의 오해가 안 생긴다고 늘 강조했다. 괴짜 개발자 같은 면모에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은 그분에게 존경심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부사장님의 독특한 기질에 불만이 많았다. 그렇게 나는 부사장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워가자라는 생각으로 3년을 보냈다.  

어쨌든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내가 몰입을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멋진 동료들과 서로 으쌰 으쌰 하면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참 아이러니한 게 입사 초기에 내가 원했던 것은 완벽한 워라밸이었다. 6시 칼퇴(칼퇴라는 말도 사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당연히 누려도 될 것을 주장했는데 그걸 깍쟁이처럼 '칼'퇴라고 표현하는 게 숨 막혔다.)를 하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저녁 있는 삶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삶이 일이 되고 배움이 휴식일 수 있는 일상이었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분명한 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던 나였는데 이젠 일과 내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요새 내가 하고 있는 여러가지 일들이 어찌보면 누군가에게는 너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정신없이 저녁을 만들고 있는 와중에도 프로젝트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괴롭거나 스트레스받을 새도 없이 그저 '몰입'된 상태였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만큼 몰입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내가 하는 일에 몰입을 한다면 그 과정이 어떻든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이제 막 '언어 씹어먹기'라는 프로젝트도 10명의 팀원 분들과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도 사람들과 더 빨리 더 멀리 지치지 않고 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함께' 갈 것이다. 나에게 일과 휴식과 삶과 즐거움은 하나다.



시간을 덤으로 얻었습니다?

<매일매일 추가로 시간을 선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다니엘 핑크의 책 '언제 할 것인가'에는 같은 일을 해도 그 시간대에 따라 다른 효율을 보여주는 예시들을 보여준다. 사람 유형(종달새형, 올빼미형)마다 패턴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아침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제대로'된 시간에 맞는 '적절한' 일을 해야 한다. 가장 집중력이 높은 시간대에 유튜브를 본다면 얼마나 아까울까. 중요한 일들은 아침에 끝내야 한다는 것을 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을 떠올려보니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어제 오후에 가득 차 있는 스케줄 때문에 새벽에 중요한 일들을 미리 끝냈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 종일 시간을 덤으로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더 여유로웠고 더 즐거웠고 더 시간을 소중하게 쓰게 되었다. 내일부터 다시 중요한 일을 오전에 끝내고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내 삶을 세팅해놔야겠다.



나는 하고 싶은 건 일단 하고 보는 편이다. 후회가 남는 걸 싫어해서 되도록 나의 본능을 따르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니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한 일은 사실 없다. 해야 하는 데 '안한' 일들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어떤 게 중요한지 알지 못하고 아둥바둥대던 나에게 지금의 나는 그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다.

그저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게 지금의 내가 더 제대로 실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과거에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해 아쉬운 일들이 있다면 블로그에 드러내고 글쓰기(구글애드센스), 걷기와 뛰기, 그림그리기, 영어 씹어먹기, 유튜브하기, 돈공부하기, 양서 읽기, 영감 넘치는 공간 만들기 등이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중의 대부분은 하고 있고 일부는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미래에 후회하기 싫다. 하고 나서 내가 진짜 원했던 게 이게 아니구나를 깨닫는 한이있더라도 마무리를 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후회가 남지 않게 이 순간에 몰입하는 삶을 살고 싶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라면 내가 그 직업 자체가 되면 된다.

내가 브랜드가 되지 못하면 평생 소비자로 남을 것이다. 나는 그게 두려워서 생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달매거진 Day 21 :  당신의 일은 무엇인가요? 단지 직장이나 직업이 아닌, 유통기한 없이 지속해나갈 '나의 일'을 정의해주세요.


나에게 글쓰기는 취미가 아니다. 글쓰기를 나의 무기로 갈고닦아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경제적 자유 때문이었다.


나는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로 퉁치기에는 더 깊은 내면의 목마름이 있었다. 나의 노동시간과 일대일로 맞교환하는 노동이 아닌, 내가 자고 있어도 내가 이동 중이어도 수입이 들어오는 passive income 형태의 경제적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도 불안하지 않은 안정적인 일이어야 했고 한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야 했고 내가 혼자서도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에게 플러스가 되는 일이어야 했고 내가 즐겁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글쓰기로 돈벌이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고의 폭을 어디까지 확장하느냐에 따라서 한계는 다르게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전업작가로 먹고 살기는 쉽지 않다. 평생 10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더라도 우리나라 출판시장이 작아서 인세로는 기본생활조차 간당간당하다. 그러니 강의나 그 외 수입을 위해 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 한계를 보고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책 '변화의 시작 5AM 클럽'의 저자 로빈 샤르마는 전 세계에 책을 1,500만 부를 팔았다. 인세가 한 권당 천 원이라고 쳐도 인세만으로 150억을 번 거다. 뭐 세금을 떼서 반토막 나더라도 어마어마한 돈이다. 전 세계 베스트셀러만 가능한 일이라고 좌절할 게 아니라 그렇다면 내가 영어로 글을 써서 전자책을 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버는 것보다 잘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계 출판 시장을 우습게 봐서가 아니라 고정형 사고방식에서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생각을 바꾼 것이다. 판이 작다 좌절하는 게 아니라 파이를 키우기 위한 생각을 확장한 것이다.


내가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단순히 '영어를 잘하고 싶다' '외국인과 말하고 싶다'가 아닌 나의 경제적 자유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고 세팅되었을 때 마음가짐은 천지차다. 나는 타자칠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고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계속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나에게 글쓰기는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글쓰기는 나 자체다.



강점에 집중하고 그걸 더 날카롭게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목적지가 더 뚜렷해진다.
목적지가 뚜렷하다면 전속력을 내서 달릴 수 있다.

사막에서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으면 이리 저리 떠돌다가 지쳐서 주저앉아 버리게 된다.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아서 더 쉽게 지치고, 더 에너지를 소모하고, 다시 일어서는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덜어낸다

<더 이상 덜어 낼 것이 없게 만들기>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덜어 낼 것이 없을 때 완벽함에 도달한다" - 생텍쥐페리


예전에는 나의 부족함이 끝도 없다고 생각해서 자꾸만 더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최근에 약점보다 '강점에 집중하기'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실행하면서 이 말은 더 나에게 의미 깊게 다가왔다. 공간이나 다른 것에서는 최대한 미니멀을 추구했으면서 왜 할 일들은 아주 송곳처럼 한 가지로 줄이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언어에 집중하는 게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나의 뇌리에 꽂혔다.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아웃풋, 양질의 인풋, 시간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글을 쓰면서 훈련을 하고, 그에 쏟는 시간도 줄이면서 더 짧은 시간안에 더 많은 그리고 더 양질의 글을 쓰려고 실천하는 중이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이것들을 해내기 위한 체력과 감정컨트롤, 시간관리 능력인데 체력은 매일 달리면서 서서히 좋아지고 있고 시간관리 능력은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량의 글을 쏟아만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엮을지 계속해서 생각하고 덩어리로 묶어보고 다시 펼쳐보는 작업들을 반복해야겠다고 느꼈다. 오늘도 브런치북 공모를 위해 제목과 목차를 뽑아야겠다.



주식이나 사업에만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게 아니라는 걸 요즘 들어 느낀다. 물론 우리는 돈공부도, 내 몸뚱아리 하나 먹여살리는 법도, 심지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삶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없이, 배우려는 자세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자세라는 생각도 든다.


삶에도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최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업이다. 즉 지금 내가 당장 해내야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내 일, 내 집이 엉망인데 다른 걸 잘 해낼 수는 없다. 예전에는 이 말이 정말 잔인한 말처럼 들렸지만 이제는 무슨 말인지 잘 안다. 리스크 관리는 주식이나 사업과 같은 것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모두의 평범한 삶에도 적용된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대학생이 자기 방도 지저분한데 독립해서 자기 방 관리가 잘 될 리 만무하다. 회사일에서 몰입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한다고 이직한 회사에서 행복하리란 법도 없다.


새로운 도약을 하려면 3년 치 또는 최소 1년 치 안전망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우선으로 확보해야 한다. 저축을 해서든 추가 수입을 위한 짱구를 굴리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현재 상황에 불만만 말할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다 보면 불만을 말할 시간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내 생존을 위한 어느 정도 안전망을 확보했을 때 대담한 시도가 가능하다. 주저할 것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해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건 용기라기보다 그저 실행 그 자체다.




나는 예전부터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자주 그려보곤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생각만 해오고 꿈만 꾼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지금 현재의 내가 오늘 시간을 초단위로 아껴가며 쓰고 있지 못하는데 어떻게 3년 후 5년 후의 내가 더 발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제 5년 후든 미래의 나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하지 않는다. 보물지도를 만들어 시각화한 이후로 그걸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오늘'에 집중할 뿐이다.

오늘의 내가 만족스럽지 않은데 5년 후의 내가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만족스러운 오늘을 살기 위해 '지금'에 집중하는 게 내가 지금 할 일이다.


티끌모아 티끌밖에 안된다고들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한참 티끌을 모았는데 그게 꽤 그럴싸한 양이 되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은 클 수 밖에 없다.

자존감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많은 작은 성공을 해보는 것인데 그런 맥락으로 보면 티끌은 모으면 태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꾸준함의 힘이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똑똑한 경쟁자보다 꾸준히의 강력함을 아는 경쟁자가 더 무서운 법이다.


우리 아이한테 해주고 싶고,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고, 내 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자기안의 틀에서 깨고 더 많은 도전을 해보는 것
꾸준함의 힘은 강력하다는 것
체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은 일머리도 잘 돌아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
마감을 지키는 게 신뢰를 얻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것
글쓰기는 디폴트, 실행은 빠르고 더 많이
아웃풋, 아웃풋, 아웃풋  

너무 많아서 듣는 사람이 잔소리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말보다 행동이 강력한 임팩트를 준다는 걸 절실히 느끼니까.


어려운 걸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고수다.

역사는 어렵지만 언젠가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곰브리치 세계사는 그런 나에게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번역서로 읽으려다가 원서로 보게 되었는데 영어 공부하기에도 너무 좋고 영어로 읽는 게 더 생동감있고 재미있는 것 같다. (청소년 도서라 그런지 사용하는 단어들도 쉽고)

언어공부를 해야하는 진정한 이유는 원서가 주는 진짜 재미를 느끼기 위함이구나라는 걸 잊고 있었다. 아..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이렇게 원서 책 읽기가 재미있다고 느낀 건 처음인 것 같다.


진짜 제대로 안다는 것

<쉽게 말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이해한 게 아니다>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고수라고 생각한다. 책이나 글을 읽었다고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설명을 읽은 것 그대로 읊어준다고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정확히 이해하고 나만의 언어로, 그리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분야를 쉽게 얘기해주는 고수를 만나면 존경심이 생긴다.


곰브리치 세계사는 예전에도 읽고 싶어서 읽을 목록에 포함시켜 놓은 책이었는데 우연히 원서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초반을 읽어보니 영어로 읽는 게 더 재미있고 더 놀랍고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책 선택하기 어려운 이유는 쉬운 어린이용 도서로 시작하면 좋겠지만 너무 아이들 이야기라 읽으면서 재미없어서 지속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자기 계발서를 읽자니 아직 좀 어려운 것 같고 선뜻 시작하기가 망설여진다. 곰브리치 세계사는 청소년 도서지만 내가 다른 빅 히스토리 책(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모기)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고르게 되었고 그건 나에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역사는 어렵고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한데 곰브리치는 그걸 아이들에게 설명하듯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매우 흥미로운 '거울'과 '우물'에 비유해서 말이다. 역사를 거울과 우물을 이용해서 설명하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쉬운 단어들로 재미있게 설명을 하다니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내일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렇다. 뭔가를 씹어먹으려면 지속 가능해야 한다. 지속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의지도 뭐도 아니고 나를 끌어당기는 재미다.




나는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참 좋아한다. 반대로 일정 기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지겨움을 못견뎌하더라도 반드시 매일 꾸준히 해야하는 일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꾸준히 글쓰기를 하든 뭘하든 질리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 때는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권태를 극복하는 편이다. 그게 내가 컴포트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자하는 하는 이유다.

매일 새로운 일이나 항상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했다. 성장을 위해서는 꾸준함이 필수인데 꾸준히 하면서 내가 질리지 않는 방법. 그게 컴포트존에서 벗어나기였고 지금까지 나름 잘 유지가 되고 있다. 매일하다보면 어떤 날은 쓰기 힘들지만 그래도 써야한다는 내적동기가 나를 나아가게 한다. 지겹고 힘들다면 살짝 색다르게 시도해봐야겠다는 장난기도 발동한다.

하기 싫지만 해야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나는 살짝 유머와 장난기와 호기심을 섞어본다. 즐겁지 않던 일이 나름 재미있게 되길 바라면서 오늘도 나는 내 등을 떠밀어 해야할 일들을 마친다.



번아웃되지 않으려면 체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체력을 키우는 것 외에도 추가로 중요한 게 있다면 나는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 놀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향적이고 혼자놀기의 달인인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내향적인 사람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함께하는 즐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그렇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모임들이 활성화되는 건가 보다. 모두 외로운것일지 모른다. 연인이 있어도, 친구가 있어도 진정한 나와 공감하는 누군가와의 연결이 목마른거다.  

나는 요즘 멋진 사람들과 강력한 연결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요새 즐겁고 쉽게 안지치나보다.


지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나도 사실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내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사실 재미보다는 의미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재미만 추구하는 것에 묘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아직 마음 놓고 놀면 안 돼', '뭔가를 이뤄놓은 다음에 재미를 추구해야 해'라며 지금은 성장이 우선이라고 스스로를 강하게 채찍질해왔다.


때로는 그게 지치기도 했지만 소비자로만 머물며 재미만을 추구해온 과거에 대한 속죄를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생각보다는 요즘의 엄격한 스케줄을 그럭저럭 잘 버텨내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4개월 넘는 기간을 그렇게 성장 중독자처럼 지내는 게 그저 의미만을 중시하면서 버텨온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텨온 게 아니라 사실 너무나 '즐거웠다'.


닐 도쉬, 린지 맥그리거의 책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에서는 일을 하는 직접 동기에는 즐거움, 의미, 성장이 있다고 말한다. 의미, 성장만으로 나는 이 모든 것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 강력했던 것은 내가 '즐거웠다'는 것이다. 혼자 하는 성장, 혼자 하는 의미부여가 아니라 한 달 플랫폼에서 멤버들과 '함께' 이 모든 것을 하는 게 너무나도 즐거웠다.


심지어 외로움은 사람의 뇌를 멍청하게 만든다. 매튜 리버먼의 '사회적 뇌'에서는 외로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시험 점수가 낮아졌다는 게 밝혀졌다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 나의 무한할 것 같았던 의미와 성장이라는 직접 동기도 외로웠을 때는 잘 유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한달쓰기, #한달매거진에서 함께하며 느낀 '즐거움'이 나의 직접 동기를 4개월 이상이나 지치지 않고 불태울 수 있게 유지시켜주었다. 나는 함께하는 연결의 힘을 지금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회사에 다닐 때 나 자신이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9 to 6 근무형태에 대한 반발이 있었지만 회사를 바꿀 수는 없었고 유럽 회사들이 4~5시에 퇴근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냥 부러워만 했었다. 그런데 팀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를 읽고 나서는 내가 믿고 있던 세계가 와장창 깨지는 경험을 했다. 하루에 4시간도 아니고 1주일에 4시간만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였다.

그 이후부터 물꼬가 트이듯이 수많은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고 경제적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수 있는 수익구조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 나는 공간적인 제약이 없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냥 휴양지에서도 일하는 디지털노마드가 되고 싶다는 식의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강력한 욕망이었다. 내가 지방에 내려가는 ktx 속에서도 업무처리를 할 수 있고 내가 내일 당장 어떤 약속이 생겨도 유동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제약이 없다는 게 불안할 수 있지만 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 오히려 시간이나 공간을 제약하는 게 나의 몰입도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그 모든 상황을 내가 몰입을 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몰입을 하는 순간은 아무 생각이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저 그 몰입이 끝나고 이렇게 시간이 지났구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뿌듯함이 몰입을 자꾸 경험하고 싶게 만든다.  

나는 시공간에 제약이 없고 내가 주도적일 때 가장 몰입할 수 있다.



내가 회사에 다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걸 떠올려 보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일하기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일하고 문제가 터지면 해결하기보다 피하기 급급한 사람과 할 때 진이 많이 빠졌다. 일을 하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여지는 많다. 누구나 문제가 생기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왕 생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문제해결여부도 결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터지면 툴툴대기보다 문제를 도전으로 여기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편이고 그런 시각을 가진 동료가 있다면 나도 더 힘이 난다.

자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일을 할 때 더욱 몰입할 수 있을테고 결국 함께 했을 때 시너지도 날 것이다. 자기 일을 좋아하려면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걸 할 때 힘들고 재미있는지,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본 사람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쉽지는 않은 과정이지만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잘 모를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 인간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하면 너무나도 즐거울 것 같다. 나는 문제해결에 몰입하는 편이지만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나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더욱 나를 사랑해야겠다. 쓰담쓰담.



질문은 참 중요하다. 그리고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에게는 중요한 것 투성이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되었다. 돌고 돌았지만 우리의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수많은 외적 갈등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여러 가지 돌고 돌아 고민해봤지만 결국 이거였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최근에 인간관계를 힘들게 하는 것, 우울, 불안, 두려움 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존감의 결핍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을 쓴 너새니얼 브랜든은 '생물학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장애는 제외하고, 나는 자존감의 결핍에서 기인하지 않은 심리적 문제를 단 하나도 생각할 수 없다.'라고까지 말한다.


건강한 자존감 없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할 수 없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를 생각하면 슬퍼진다. 우리는 대부분의 문제가 외부의 요인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내면부터 돌봐야 한다. 언어 씹어먹기를 하고 있지만 당분간 언씹의 포문을 여는 글의 주제는 '자존감'이 될 것 같다. 이 문제만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시급한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은 혼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삶에서 꽤 많은, 아니 대부분의 문제는 자존감이 결여된 어른들의 인간관계로부터 야기된다.

자존감에 대해 알고 싶었고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좋은 책을 알게 되었다.

언어씹어먹기하면서 자존감도 씹어먹게 되었다.

나만이 나라는 존재를 책임질 수 있다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뼈 좀 맞아봅시다>

나는 뭐든 전체를 먼저 보고 깊게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목차를 읽고 큰 그림이 그려져야 깊게 들어갈 수 있다. 그냥 세부적인 본론부터 들어가면 이해가 잘 안 가고 헤매기도 한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가늠이 안 가기 때문이다. 중요한 이슈도 되도록 근본적인 본질에 대해 먼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려운 걸 쉽게 알려주는 전문가를 존경하고 큰 틀을 제대로 된 시선으로 파악하는 책들을 좋아하는 거 같다.


자존감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자존감이 제목에 포함된 책들을 무작정 빌렸었다. 하지만 제대로 읽지 못하고 넘어갔었는데 최근에 깊이 있는 다독가로부터 좋은 책을 소개받았다. 너새니얼 브랜든의 '자존감의 여섯 기둥'이었다. 내가 예전에 무작위로 빌렸다가 완독을 못한 책 중에 하나여서 소름 돋았다. 그래, 이건 운명이다 싶었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을 나열하는 걸로 '자존감'에 대해 쉽게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한 기둥 한 기둥 하나하나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고 싶었다. 그 첫 번째 기둥은 '의식하기'다. 의식하는 삶이란 자기 책임이 함축되어 있다. 오직 나만이 '나'라는 존재와 나의 행복을 책임진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이걸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 걸까. 제일 뼈 맞은 구절은 이거였다.


다른 누군가 나를 대신해 생각의 짐을 덜어준다거나 결정을 내려줄 것이란 환상에 빠지지 않는다. (중략) 의식적인 삶이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자 하되 이 순간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넓은 맥락을 놓치지 않으면서 '순간'에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균형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능력이 풍부한 상태로 이끈다. - '자존감의 여섯 기둥' p. 126,127


내가 이전 글에서도 썼던 지금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자존감에 연결되어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다.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피하게 된다면 자기 책임에서 도망치는 것과 같다. 자기 책임에서 도망친다면 자존감도 멀어진다. 자존감을 단단하게 하는 방법 중 매우 중요한 게 나만이 나의 존재를 책임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구절이다. 나는 꽤나 독립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을 먹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기둥 하나에도 이런 뼈 때리는 말이 곳곳에 숨어있는데 여섯 개 다 훑다가는 몸이 남아나질 않겠다. 제대로 찬찬히 곱씹으며 실행에 옮겨야겠다.


참고 자료 : 너새니얼 브랜든 '자존감의 여섯 기둥 - 어떻게 나를 사랑할 것인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그 어떤 도전도 하지 못하게 되고 그 어떤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는 겪기 싫은 실패는 하나 있다. 건강에 대해 간과한 20대가 나에게는 큰 실패의 경험이다.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하고 민첩한 편이라 운동신경은 꽤 좋았다. 그런데 매일매일 하는 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못느꼈던 게 아주 크나큰 실수였다. 실수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소소한 게 사실 아니다. 건강을 잃는 거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니까.

30대초반의 내가 70대 노인처럼 건강에 대해 이 정도로 목매는 것은 끔찍한 경험을 직접 했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은 남의 얘기를 들어도 자기가 경험한 것만큼 와닿지 않는다. 나는 건강이 최우선이다.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 생존없이 그 어떤 것도 없다.  

20대의 나의 무지로 인한 실패로 나는 가장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니멀해지려고 했고 그래서 본질에 집중하려했고 그래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이번 삶이 두 번째인양 나는 하루하루가 애틋하고 간절하다.


나에게 성공이란 뭘까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돈이 많은 걸까? 돈이 많아도 콧줄 끼고 누워있는 부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돈이 많고 건강하기만 하면 될까? 영감을 주고 받는 멋진 동료들과 함께 재미난 일들을 벌이고 싶다.  

위의 세 가지가 다 이루어지면 난 성공한 걸까?


사실 외부에서 보는 성공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삶에서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 이 즐거움이란 것은 단순히 돈이 많고 시간이 많아 띵가띵가 노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만의 일에 몰입하고 그걸 오래도록 즐기면서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기버의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이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느냐가 돈의 액수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는 데에 내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먼저 실력을 키우고 나서의 이야기다.


성공한 사람은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부자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안다. 항상 부족한 나를 채찍질하던 사람이라서 더 그랬다. 하지만 자신을 거부한다면 '그 어떤 성장도 시작할 수 없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찬물샤워를 한듯 정신이 번쩍 났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 어떤 의미있는 발전도 이룰 수가 없다라니....

자존감 끌어올리기란 참 쉽지 않은 여정이구나. 하지만 분명 의미있는 일이고 자존감이 전부다.

소중히 여기고 받아들이기

<나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그리고 상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두 번째 자존감 기둥은 '자기 받아들이기'다. 자기 수용 개념에는 3단계가 있다고 한다. 그중 1단계인 '나를 소중히 여기고 받아들이기'가 나는 되고 있나 되돌아봤다.


어떤 사람들은 심각하게 자신을 거부해서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전까지는 그 어떤 성장도 시작될 수 없다. 어떤 치료도 지속할 수 없으며, 새로운 배움도 제대로 통합되지 못하고, 의미 있는 발전도 이루지 못한다.(중략) 유능한 심리치료사는 자존감이 아주 낮은 사람에게서도 기초적인 자기 수용 태도를 일깨우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자기 수용적 태도는 자신의 가치를 거부하거나 삶의 의지를 버리면서 자기혐오로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격려가 절실히 필요한 이들에게 중요하다. - '자존감의 여섯 기둥' p.156


여기까지 읽는 데 너무나도 괴로웠다. 나는 내 자존감을 올릴 생각만 했고 '남편의 자존감은 왜 낮지?' 하면서 힘들어했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나는 내가 힘들면 도와주지 않는 남편과 부모님 때문이라고 자존감의 첫 번째 기둥인 '의식하기'를 피하고 있었다. 나만이 내 행복을 책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두 번째는 나는 소중히 여기면서 남편을 온전히 소중히 대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존중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존감, 자기 수용을 못하게 막은 것은 나였다. 그걸 깨닫자마자 눈물이 펑펑 나왔다.


남편에게 지금까지 너무 미안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느껴왔던 것, 내가 착각했던 것,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것,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 미안했고 많이 감사하다는 것.


내가 남편의 눈빛에서 따뜻함을 느낀 건 나의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상대방의 존재도 소중히 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니.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내 안의 불안들이 녹기 시작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게 부정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건강한 자존감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남을 생각하지 않고 내 멋대로 해야한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특정 부분을 낯설거나 '자신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라는 이야기다.

쉽지 않지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면 나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제에 살펴본 자기 수용 1단계인 '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기'에 이어 2단계는 '나의 감정 받아들이기'다.

나의 특정 부분을 낯선 것이나 '내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특정 순간에 내 존재의 실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부인하지 않고 기꺼이 경험하려 하는 의지이다. (중략) 오늘 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을 기분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나의 기분을 인식하고,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일을 시작한다. 자기기만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기에 더 명료한 정신으로 일을 할 것이다. - '자존감의 여섯 기둥' p.157

나는 항상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억누르고 경계했다. 완벽한 사람이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기분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에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마저도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반드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도 아님을 말한다.


그랬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인하지 않는 것, 기꺼이 경험하려는 것 이게 자기 수용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자기 수용은 잠들어 있다가 갑자기 깨어날 수도 있다. 심지어 우리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삶을 위해 싸울 수 있다. - '자존감의 여섯 기둥' p.157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제대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 오늘도 천천히 읽게 된다.




매일 무엇인가를 하는 게 별게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매일 하는 사람 중에서도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을 때도 계속 그걸 유지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앞서 있을 것이다.

작지만 매일 하던 것을 계속 유지한다면 어느새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거리로 아예 시작도 하지 않은 사람보다 큰 격차가 벌어져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심장이 뛰었다. 그래서 '단 하루'라도 빠트리지 않으려고 나는 마음먹었다.불안한

 게 당연하다

임계점을 넘을 수 있을까

<불안한 게 당연하다>

임계점은 언제 돌파할 수 있는 걸까 조바심이 나던 때가 있었다. 열심히 하는 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면 하던 노력을 멈추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던 걸 멈추면 다시 도루묵이니 그럴 수조차 없다. 내가 이대로 하던 대로 해도 되는 건지, 방향을 틀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는 시점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런 순간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가 '무조건 한 달은 해보기'라던가 일정 기간 동안은 그냥 해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나에게 '걷기'였고 두 번째는 '매일 글쓰기'였고 세 번째는 '달리기'였고 지금은 언어 공부다.


걷기는 바로 그 변화가 보이지 않아 답답할 수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장 쉬운 운동이었기에 그냥 지속했다. 그리고 그게 한 달, 두 달 지나 10개월이 넘었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내가 10개월 동안 매일 걸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나의 건강이 걷기로 그 어떤 변화가 크게 생기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지나온 시간들이 내가 다른 그 어떤 자그마한 도전을 하더라도 지속하기만 한다면 엄청한 만족감을 줄 것이란 걸 미리 알려준 셈이다.


걷기에서 달리기로 넘어온 지는 한 달이 지났다. 오늘 달리면서 '생각의 임계점'을 넘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집 바로 뒤쪽에 빗물 저장시설 부지에 자그마한 야외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매일 2km씩 뛰었는데 평소에는 별 생각이 없다가 오늘 확연히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두 명 보이던 운동하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걸 알게 된 순간 엄청난 것을 깨달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달리는 게, 또는 매일 무엇인가를 하는 게 별게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매일 하는 사람 중에서도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을 때도 계속 그걸 유지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앞서 있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소름이 돋았다. 작지만 하던 것을 계속 유지한다면 나는 어느새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거리로 아예 시작도 하지 않은 사람보다 큰 격차가 벌어져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심장이 뛰었다.


언어 씹어먹기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이 언어 씹어먹기를 계속해나가다 보면 달리기 하면서 내가 느낀 것과 같은 그 어떤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걸 위해 나는 오늘도 언어를 매일 씹어먹는다.



공모전에 제출하고 나서 바로 내가 한 일은 또 다른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실패가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의 수많은 시도를 하는 것. 그게 더 많은 시도를 하고 더 많은 기회와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패가 두려워지지 않는 방법

< 성공한 사람들은 다들 하나같이 더 많은 실패를 해보라고 한다 >

실패가 두려워지지 않는 방법은 더 많은 시도를 하는 것이다. 내가 하게 될 시도가 지금 '브런치북 공모'라는 단 하나의 시도에 내 모든 것을 걸게 된다면 안되었을 때의 타격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내가 공모전에 당선될지 여부는 제출을 한 시점에서 내 손을 떠났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다면 더 준비를 철저히 하겠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때는 '마감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완벽한 걸작을 만들어어냈어도 마감기한이 지났다면 그건 평가조차 못 받기 때문이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제출하고 나서 바로 내가 한 일은 또 다른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실패가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의 수많은 시도를 하는 것. 그게 더 많은 시도를 하고 더 많은 기회와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만 해도 서운함이나 슬픈 감정은 풀리는 경우가 있다. 문제해결을 하지 않았어도 공감받고 싶고 이야기를 터놓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 거 같다.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듯이 내 감정을 내가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정 경험은 치유다

<내 감정 그대로를 경험하고 받아들이기>

말을 아직 못 하는 아이가 울기도 하고 떼를 쓸 때 무척이나 난감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대체해야 할지 알기 위해 육아서적을 뒤적대다가 '감정에 공감'해주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떼를 쓸 때 무엇 때문인지 어림짐작으로 말해보았다. "이게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되어서 속상했어?" 근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말을 못 하는 아이인데도 그 말을 이해하고 울음을 그쳤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내가 맞추는 게 한 번에 맞지는 않아도 두세 번에 걸쳐 뭐가 잘 안되어 속상해서인지, 엄마가 안 놀아줘서 슬퍼서인지, 배고파서인지 등 결국 맞는 걸 물어봤을 때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그 이유를 자존감에 관한 책에서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직접적인 치유력이 있다.- 너새니얼 브랜든 '자존감의 여섯 기둥' p.159


울거나 떼쓰는 아이에게 왜 우냐고 울지 말라고 다그쳐도 계속 운다. 하지만 "~해서 슬펐구나."라고 마음을 읽어주는 순간 울음을 그친다. 남이 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해도 치유가 되지만 나 자신이 내 감정을 그대로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그 자체로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를 받아들인다는 건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니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뿌듯하다.





이 글 끝까지 읽으신 분들은 진짜 리스펙. 저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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