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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Dec 26. 2021

동상의 추억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잠깐 밖에 나갔는데 손이 얼얼하다. 이런 날이면 남들은 감기 조심을 생각하는데 나는 동상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먼저한다.

동상은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11월 중순 때부터 손님처럼 찾아왔다. 우린 동상을 '얼음들다'라고 표현했는데, 정말로 동상이 든 손발은 얼음이 든 것처럼 깡깡했었다. 한 번 얼음이 든 손발은 조금만 추워져도 다시 얼음이 들고 만다. 마치 피부병처럼 일정한 조건에서 자꾸 재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겨울마다 동상에 걸리는 이유를 어머니에게 들었다. 내가 한 두 살 때쯤 어머니는 나를 둘러업고 한 겨울에 장사를 잠깐 하셨다. 그때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탓에 그때부터 얼음이 들어 겨울마다 동상으로 고생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 때문에 자식이 동상에 걸렸다는 생각에 동상에 좋다는 온갖 민간요법을 나에게 썼다.

마늘대를 물에 푹 고아 그 물에 동상에 걸린 손발을 넣으면 좋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어머니는 나에게 마늘대 물에 손발을 담그게 했다. 은은한 쓴맛을 들이키며 한 시간 이상 어정쩡한 자세로 손발을 담갔었다. 그렇게 담그면 손과 발은 사우나에 다녀온 것처럼 쪼글쪼글해지고 동상으로 가려운 것도 어느 정도는 해결됐다. 또 어느 겨울에는 콩(완두콩 보다 큰 콩인데 정확히 어떤 콩인지는 모르겠다)이 동상에 좋다고 해서 큰 양말에 콩을 담아 그것을 양손과 양 발에 싣게 했다.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자기 전에 주로 했다. 또 어느 겨울에는 동상에 좋다는 약을 구해와서는 내 양 손과 양 발에 모두 발라줬다. 귀한 약이 이불에 묻지 않게 나는 개구리처럼 누워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최고의 치료는 날이 따듯해지는 것이어서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자연 나았다. 그리고 어느 해 겨울부터는 마늘대 물도 콩도 약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얼음이 손발에서 모두 빠져나갔다.

어렸을 때 심하게 앓던 동상은 크면서 점차 사라졌다. 막 추워지려고 하는 날에는 무조건 사우나로 달려가 뜨거운 물에 손발을 담그곤 했었다. 감기가 오려고 할 때 뜨거운 차를 마셔 사전에 감기를 차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는 동상 걱정은 전혀 하지 않을 정도로 내 손발에서 얼음은 모두 빠져나갔다. 나는 그것이 어머니의 민간요법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예전에는 왜 그리 추웠는지 모르겠다. 입는 것도 좀 빈약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예전만큼 춥지도 않고 보온이 좋은 옷도 많다. 어릴 때 장갑, 목도리, 모자 같은 걸 거추장스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일단 따듯하게 좋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고 다닌다. 얼음이 들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날이 추울 때마다 어릴 때 동상으로 고생했던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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