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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만난 말로 녹이는 사람들

by 헬렌

차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넘었다. 아침 7시가 되면 새소리가 날 깨운다. 새벽엔 영하까지 내려가서 차가 꽝꽝 얼었다. 돈 아끼려고 시작한 건데 주변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캠핑장에서 더 지내고 싶다.


어제 저녁엔 Clem이랑 같이 있었다. 내가 뉴질랜드에 막 왔을 때 심정을 얘기했다. "원래 나 오클랜드나 크라이스트처치 같은 도시에서 오래 살다가 짧게 여행하고 귀국하려고 했어. 나 너희 만나고 진짜 많이 바뀐 거야.""네가 바뀐 게 아니라 마음을 연 거 아닐까?" 이 상태가 포함 관계에 있는 건지 다른 건지 오래 고민하다가,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감탄했다.


잠들기 직전에 차 안에 켜진 크리스미스 등을 보고 앉아있다가, 그가 해준 말을 떠올리고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찾아냈다. 그는 내가 쓴 글을 읽는 걸 좋아하는데, 내가 세세한 걸 잘 남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글에 내가 나타난 걸 보면 똑같은 1분 1초도 다르게 바라봤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계속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화가 있다. “If you like it, then I do too" 10대와 20대 두 남성이 한 얘기다. 듣고 너무 귀여웠고, 이런 감정을 말로 들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난 이제까지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면서 지냈는지 반성했다. 다정하진 않은 거 같다.


오늘은 근무 휴무라 7시 반에 일어나서 호박, 감자, 오트밀, 계란을 먹고 호박을 새로 구웠다. 버터를 하도 많이 먹어서 올리브유를 써봤다. 한국에 살 땐 냉장고에서 버터를 본 적이 없다. 다음엔 호박 조림을 해볼 거다. 얼마 전엔 ‘닭을 내가 삶아 먹었던가?’하고 한국에서 어떻게 먹었는지 까먹어서 놀랐다. 하나씩 잊어버릴 때마다 충격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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