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동력
집에는 유아/미취학 아동용 한글, 숫자, 구구단들이 적힌 벽지가 많이 붙어있었지만,
그것들은 누나를 위했던 것이었고, 내 유년시절에는 부모님께서 달리 한글을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음식도 잘 안 가리고, 잠도 잘 자고, 혼자 있어도 곧 잘 놀던 아이였다.
그래서였을까,
부모님께서는 모두 맞벌이를 하셨기에 둘째였던 나에게는 조금 관심이 부족하셨던 것을 아닐까.
대여섯 살 즈음,
당시 방영하던 '날아라 슈퍼보드'라는 만화를 누나와 함께 시청하고 있었다.
만화가 시작할 때는 항상 그날 회차 주제에 대해 제목이 나왔는데,
글을 읽을 줄 몰랐던 나는 누나에게 제목을 읽어달라고 부탁했고,
누나는 나를 놀리기 위해 제목이 지나가 사라질 때까지 읽어주지 않았다.
나는 제목이 사라지자 왜 읽어주지 않느냐며, 세상 서럽게 펑펑 울었었다.
그러고는 곧장 글을 배우고 싶다고, 나도 유치원에 다니고 싶다고 어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그렇게 처음으로 가게 된 태권도장.
유치원과 태권도를 함께 병행하던 곳이었다.
첫 등원, 첫 수업
어찌 보면 나는 학기 중간에 들어왔기 때문에
수업 진도를 중간부터 참여한 꼴이었는데,
그날 첫 수업 시작과 동시에 받아쓰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총 10문제의 받아쓰기를 했는데,
나는 당연히 단 한 문제, 한 글자도 받아 적을 수 없었고,
친구들은 당당히 답안지를 제출하는 와중에
나는 연필을 꼭 쥔 채로, 또다시 서러운 마음에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답안지를 끝까지 제출할 수 없었다.
서러움과 부끄러움, 모를 분한 감정은 내 원동력이었다.
나는 한 달도 채 안 걸려서 한글을 모두 뗐다.
그동안 서너 번의 받아쓰기가 있었는데, 곧 만점을 받았고,
선생님께 칭찬받았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말 큰 축하와 친구들의 힘찬 박수도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때부터였나,
한글, 국어를 좋아하게 된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