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안녕하십니까, 총무회계팀 OOO 행정원입니다.
지난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몸 담았던 사랑하는 직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 오늘의 제가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애증의 마음으로 떠나는 먹먹한 심정에도 불구하고, 저의 퇴사를 배경이 설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과론적으로 단순히 성취지향적이고 돈을 좇아 떠나는 정도, 또는 의리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까 우려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거의 매년 인력증원을 통해 늘어가는 연구직 분들과 매년 증가하는 예산은 곧 행정업무(보수, 4대 보험, 사업비 지출 등)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이로 인해 나날이 늘어가는 회계업무와 실장님의 급작스럽고 빈번한 업무지시 등으로 저는 휴가, 교육, 연수, 출장, 유연근무 그 어떠한 것도 자유롭지 못하였습니다. 마지막 업무 인계마저도 인수받을 실무담당자가 없어 팀장님께 인계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있습니다.
하나씩 업무를 정리하며 다른 부서를 바라보다 문득 느낀 상대적인 부러움인지, 혹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인지 모를 감정에 말 그대로 ‘자유로운’ 이 게시판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솔직한 마음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사랑했습니다.]
우선, 지난 3개월 간 팀장님과 무수한 야근을 하면서 행정실장님께 수많은 읍소가 있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아 그리고 그 사이 제게는 좋은 기회가 와서 이렇게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년 7월 19일 부로 기존 기획팀에서 재무회계팀으로 인사발령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 팀장님과 둘이서 재무회계 업무를 나누어 진행하였습니다.
업무는 과중했지만 그래도 분담해서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연말 즈음 결산업무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특별한 야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청년인턴 정도만 추가 배정을 받는다면, 조금은 수월할 수 있겠다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3월 11일 부 인사발령에서 총무회계팀으로 부서변경이 되었습니다. 총무, 서무, 정보화, 계약, 재무회계 업무가 아우러진 기이한 구성이었습니다.
3월 인사발령 이후, 기존에 분담해서 하던 일을 고스란히 저 혼자 맡게 되었습니다. 팀장님께서도 정말 많이 헌신적으로 도와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총무회계팀에는 회계업무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업무의 검토·논의·결재·출장 등으로 인해 시간과 한 명의 팀장이 아우를 수 있는 물리적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에 본격적인 야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리 하루를 쪼개어 쓰고, 밤을 지새워도 늘 시간에 쫓기는 불균형 한 생활이었습니다. 행정원급들 사이에서는 회계부서에 가면 더 이상 벗어나지도 못한 채 계속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만연히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특정직무 기피 현상도 심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경영학도로서 배운 조직구조 및 실무구조가 우리 연구원과 너무나 다름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가 크게 보수, 4대 보험, 연구비 집행, 출장정산, 법인카드 관리 등이 있습니다. 이 안에는 수많은 세부 단위업무 갈래가 나눠집니다.
기존에 배우고 알고 있던 구조는 보수와 4대 보험, 입·퇴사자 신고관리는 인사/노무 업무의 분야였습니다. 그 외에도 재무와 회계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원의 경우 인사/노무 분야에서 아우르는 상당한 일들이 채용이라는 업무를 제외하고는 회계업무 담당자 오직 단 한 명에게만 부여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같이 업무를 분담할 실무담당자 충원이 단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이러한 결정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기관 창립 이래 행정직 최초로 신입직원 근무평정 우수 결과를 받았습니다. 이때에 당연히 시기도 있었고 저로 하여금 앞으로 들어오게 될 신입직원들도 정말 열심히 업무를 수행한다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새 지평을 열게 된 것에 기쁘다고 수고했다는 선배들의 칭찬 또한 들으며 자부심과 애사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말 짧은 근무기간이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근무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헌신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직은 우는 아이에게는 젖을 물려주고, 헌신적인 직원은 보살피지 않아도 ‘헌신할 거야.’라는 당연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걷잡을 수 없는 더욱 큰 사태가 일기도 합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사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2년 간 근무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 중 하나는‘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가?’라는 동력의 상실이 가장 컸습니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외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정시에 퇴근하고 개인 여가를 즐기면서 업무시간에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등 저와는 다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직이 성숙할수록 인사에 대한 고찰이 심화됩니다. 업무분장, 직제, 인력충원, 내부갈등 나아가 개인의 문제와 더불어 그들의 가족문제까지도. 하지만 우리 연구원의 경우는 내부적인 문제보다도 외부적인 문제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행정실장님의 경우 부하직원들의 아우성은 들으시지도 않은 채 그저 대외적인 시선만을 중시하시는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부하직원들은 속된 말로 갈려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모습에 사기가 저하됐습니다. 늘 인력충원의 필요성을 피력함에도 그저 ‘지켜봅시다.’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적은 차이는 결국 전체의 태업으로 이어지며, 이는 생산성 저하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합니다.
그럴 거라면, 똑같이 일을 많이 할 거라면 당연히 보수가 많은 곳이 합리적이겠다.라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누구는 처우개선을 외칩니다. 시작점이 달랐음에도 처우를 개선해 달라 합니다. 이는 반대급부로 하여금 역차별을 느끼게 합니다. 절망합니다. 그들의 처우가 개선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의 처우는 어떻게 개선되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구조는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기다리면 순차적으로 올 것이다.’라는 막연한 불확실한 얘기만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중에 언제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건지요.
일례로, OO회에서는 매년 기관별 우수직원을 선정하여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선배들의 말에 따라 기다리면 제 차례가 올 것을 계산했을 때 길어야 3, 4년이었던 시간이 처우개선 등 다양한 이유로 그 기준이 바뀌면서 12년 뒤로 미루어졌습니다.
이렇듯 아무리 열심히 야근을 해서도 해소되지 않는 업무의 양을 헤쳐 나가면서도 당장 내년 청년인턴 최저임금이 신입정규직원의 연봉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도저히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현재의 보수로 많은 업무와 책임을 지고 있는 위치에서 그렇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공공기관의 장점으로는 고용의 안정성과 적은 보수지만 워라밸을 지킬 수 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많은 청년 정책들이 있지만 정작 갓 입사한 신규직원 초년생들에게는 곪을 대로 곪아버린 극심한 상황으로 내모는 조직의 모습에, 선배들의 모습에 환멸감 또한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년보장 외에는 발전 없이 소모되어지는 제 자신을 바라보며 이러한 마음을 상쇄하는 다른 동인은 크지 않았습니다.
제 신념 중 하나인 ‘10년 뒤 행복의 근거는 오늘의 행복이다.’가 있습니다. 지금의 회사생활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도전인 생활에서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안정과 보장된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저의 10년 뒤의 모습이 어떨지 그려보면 과연 행복할까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입니다. 그저 회사원으로, 월급쟁이로 남을까 그저 살아만 가는 사람이 될까 두렵습니다.
오늘이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일을 많이 하더라도 뿌듯하고 보람된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요즘의 하루는 보람은 없이 지쳐만 갑니다. 팀장님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모든 역량을 투입해서 저를 도와주고자 하심을 알고 버텨보고자 했습니다.
인력충원의 문제, 업무분장의 문제도 팀장으로서 할 수 있는 권한·능력 안에서 최대한 혹은 이를 넘어서는 노력을 해주심을 알지만 이런 시기에 너무나 뿌리칠 수 없는 좋은 제안이 왔습니다.
기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를 격려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있지도 않았던, 앞으로 있지도 않을 것 같은 긴 장문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또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기대기보다는 지금 확실한 현재에 기대고 싶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함께 헤쳐 나가는 것,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본인으로 하여금 사기를 고양시키는 일인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힘들어도 웃으면서 지내고 의지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 팀장님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해갈될 수 없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 앞에서는 결국 인내심과 정신력만으로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이러한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이 제가 퇴사를 생각하게 된 배경입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연구원은 규모가 작아 작은 인사에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쉽게 동요하고 어수선해집니다. 쉽게 가십거리가 발생합니다.
물론 많은 고심과 갖은 경우의 수들을 고려하여 인사가 결정되는 줄 압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풍선효과처럼 한쪽을 억누르면 다른 쪽은 크게 부풀려지기에, 그렇다고 다시 부풀러 진 쪽을 다시 억누른다면 결국 풍선은 압력을 이기지 못해 터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에 균형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좋은 인재(人才)를 채용하여도 육성과 사후관리가 진행되지 않으면, 범재(凡才)가 되어갑니다. 더 나아가는 경우 인재(人災)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외치던 조직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어 떠나게 됨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젊은 청년의 도전과 앞길을 응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퇴사 이후 신규입사자가 됐건 다른 인원이 와서 제 업무를 이어나가던 이런 일이 반드시 또 일어날게 자명합니다. 당장 팀장님과 저만의 문제가 아닌 옆 주변 팀장님들을 포함하여 다른 팀원들마저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이 제 자리만 다시 채운다면 현재의 상황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여럿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감당하게 되는 일, 혼자서 하던 일을 주 40시간 도입으로 다시금 고용창출 등을 통해 재분배하는 일이 곧 또 다른 처우개선이 되는 일. 이 모든 일은 전사적으로 공론화되어서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 생각됩니다.
퇴사하는 입장에서 조용히 나갈 수 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글을 올리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조직이 성숙해지고 당장 이번 하반기나, 내년쯤 시간이 지나서 우리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직도를 열어 보았을 때 회계업무가 나아가 다른 부서들 또한‘개선되었구나, 나아졌구나.’하는 안도감과 기쁨을 가질 수 있기를,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사랑한다고 외쳤기에, 애정이 있기에 쓸 수 있는 글임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글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