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고뇌와 고민
중학교 시절,
가세가 기울어 고등학교 진학을 실업계로 변경하게 되는 결심.
고등학교 시절,
학업성적 유지와 생활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
대학교 1-2학년 시절,
장거리 통학과 학업과 일의 병행으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사경고를 받은 일.
군대 시절,
직업군인의 선택, 힘들었던 훈련, 초임시절, 고소, 방탕했던 생활.
전역과 추가 휴학,
토익학원과 다이어트, 복학준비와 아버지와의 갈등.
복학. 대학교 3-4학년 시절,
자취, 학자금 대출, 장학금을 위한 치열한 학교생활, 처절한 취업활동.
나는 중학생 시절까지 국어선생님을 꿈꾸다가, 고등학교 진로를 결정하면서 회계사를 꿈꿨었다. 이에, 경영학과로의 진학, 군대 보직 선택에도 영향이 있었다.
전역 당시, 아버지께선 내가 저축한 돈으로 고시생활을 해보는 것을 추천하셨다. 참 서운했었다. 대게, 고시생활을 위해서는 부모님의 지원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자취집을 구한 이유 중에는 별거 중이신 아버지가 거처 없이 지내는 것에 대한 안정을 드리기 위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무언가 꾸준하게 못하는 성정이었다. 벼락치기만 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꾸준함이 필요한 고시공부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생활비의 마련을 위해서는 고시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복학과 취업준비를 결심했다.
살아오면서 항상 마주하던 고민이 있었다. '왜 이렇게 가난하지? 또 나는 시간을 왜 이리 허비했을까?' 하는 질책들이었다. 안 좋은 결말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도 종종 가졌다. 그럼에도, '살아가야지, 살아나야지'라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취업과 직장생활에 열심히 최선을 다했었다.
하지만, 열의를 가지고 사랑한다고 외치며 들어갔던 나의 첫 조직에서 업무과중으로 공황장애를 겪고, 전근대적인 시스템과 사회초년생을 사지로 몰아가는 환경, 퇴사의 결심과 또 수 차례의 이직을 하면서도 우울감은 계속 뿌리를 내리고 커져갔다.
퇴사를 하고, 이직으로 행복해졌냐고? 나아졌냐고? 아니. 글쎄.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시절을 겪으면서, 점점 나만의 마음의 벽과 세상과의 단절을 쌓아왔다.
힘들었던 과정 속에서도 성공과 성취에 대한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긍정적인 결과로 흐르진 않았다. 늘 내 선택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고 앞으로만 나아가자고 다짐하며 달려왔는데, 방향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순간의 성취와 순간의 열의로 잠시 우울감을 잊고 극복하는가 하는 착각이 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찰나였고,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우울감은 해갈되지 않았다. 근원적인 원인은 어렴풋이 알겠으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계속 우울감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 퇴사 이후, 회계법인, 블록체인, 환경 등 다양한 산업에서 컨설팅과 사업기획, 제안, 행정업무를 경험했다. 다양한 회사, 다양한 사람, 다양한 업무를 겪으면서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고, 연애, 자기계발을 하며 지내오는 중에도 항상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떠한 생각이 늘 자리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작 내가 계속해야 하는 일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하는 등의 생각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다방면으로 곧 잘했었다. 운동신경도 있었고, 공부도 곧 잘,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면 금방 센스 있게 해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정말 잘한다.' 하는 수준의 어떤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게 어려서부터 큰 콤플렉스로 다가왔었다. 이 때문에 나는 계속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또 찾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은 뭐지?,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내 재능은 뭐지?' 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가졌다. 그러다, 한 때 제너럴리스트가 대두됐던 적이 있는데,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결국 제너럴과 스페셜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아직도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어떻게든 흘러가겠지.' 싶으면서도 '하,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결정장애를 겪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불규칙한 수면, 과수면으로 시간을 계속 허비하고 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을까? 나아지겠지? 나아질 거야.
(어떻게? 왜?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아 글쎄, 모르겠지만,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