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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어느날 Sep 26. 2024

서른셋의 나 (1) _ 방황

서른다섯, 다시 무기력에 맞서다.

나의 이전의 글 '서른셋, 잠시 멈추기로 결심하다.'를 쓸 때만 하더라도, 최악의 상태로 치닫던 마음의 고통이 고작 한 스푼 덜어졌을 시점이었다. 그래서 가끔 그 글을 다시 읽어볼 때면, 그 순간의 감정이 글 곳곳에 묻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나는 참 힘든 순간을 견디며 살았다. 그래도 시간이 좀 흘렀다고 그 시절의 대부분은 쓰디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선명한 아픔의 순간들이 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내 모습을 조금은 건조하게 회상해보려 한다.




내 모든 시간과 노력을 바쳐 일하던 회사 생활로는 내 인생을 장밋빛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고, 그와 동시에 평생을 원망하던 아버지의 건강상태가 갑작스럽게 위험한 수준으로 악화되며, 내 마음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경험한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진단은, 끈기와 강인한 정신력에는 자신 있다고 자부하던 나에게 큰 충격이며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항할 틈도 없이 무기력에 잠식당한 나는 어떤 것에도 의욕을 가지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업무에도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고, 돌아보면 닭장 속의 닭처럼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선배들이 내 미래라는 생각에 좌절했다.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공황 발작 증상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다. 여느 때와 같이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심장을 조이듯 가슴이 아팠고 호흡이 가빠왔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해 바로 밖으로 뛰쳐나가 토하듯 숨을 내뱉었다. 이때 느꼈던 공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때 처음으로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순간은 그 시절의 점심시간이다. 팀원들이 항상 같이 먹자던 점심을 매번 동기들과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그리곤 회사에서 좀 떨어진 카페로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켜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용기를 내는 법, 무기력을 극복하는 법을 찾아보곤 했지만 대부분 퇴사에 관한 영상을 보며 좌절했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지금도 혼자 산책을 자주 하지만, 그 카페 주변으로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팀원들과의 잦은 회식은 매일 저녁 나를 취한 상태로 만들었고, 항상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괴로웠다. 내일 출근을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루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서는 불도 켜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울컥하여 눈물을 흘리며 컴퓨터를 켰고, 무엇에 홀린 듯 사업자 등록을 하는 방법을 검색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가졌던 당장이라도 회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 내가 찾는 행복은 회사 생활로 얻을 수 없다는 좌절감이 돌발적인 행동으로 발현된 것은 아닌가 싶다.


이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털어놓는 경험을 했다. 점심시간에 커피 한 잔 하자던 동기에게 무미건조하게 '나 공황장애 진단받았어, 힘들어서 못해먹겠네.'라고 털어놓았다. 로봇처럼 일만 하던 나를 몇 년간 봐온 동기의 충격받은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퇴사를 결심하고 지방에 사는 부모님께 내려가, 난생처음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통보를 했다. 불효를 하는 것은 아닌가,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은 아닌가 했던 걱정이 정말 컸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 편이 되어주었고, 널 믿으니 아프지만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퇴사 대신 휴직을 선택했고, 그 모든 이야기를 나의 이전 글인 '서른셋, 잠시 멈추기로 결심하다.' 자세히 기록했다. 하지만 위에 적은 내용들만큼은 그 글에 상세히 기록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 시절에는 떠올리기 힘든 순간이라 기록을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프다. 씁쓸한 추억이기보단 아물지 않은 상처 쪽에 가까운 기억들이니까. 내 핸드폰 메모장엔 그 시절을 겪으며 깨닫게 된 나를 다독이는 문장들을 써놓았는데, 그 메모의 첫 줄은 '어떠한 고통이든 그때의 그것보단 나을 것이야.'이다. 이때 느낀 고통들이, 어쩌면 복직 이후에 과감히 시도한 나의 모든 도전과 노력들의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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