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다시 무기력에 맞서다.
'22년 새해가 밝았다. 인생 최악의 1년이 그래도 지나는 갔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로봇처럼 강인한 사람, 버팀목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온 33년의 세월이 허무하리만치 한순간에 무너졌으니까. 고통의 시간을 꾸역꾸역 흘려보내고 다시 무언가 계획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기적이었다. 아무리 더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사람이 산처럼 많다고 할지라도, 아픔은 상대적이니까. 나에게는 기적과도 다름이 없었다. 특히 '21년도 말부터 시작했던 '온라인 창업' 도전기는 나에게 더욱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모든 계획은 순차적으로 수립되었고 그 첫 번째로 교육을 들었다. 무자본, 낮은 리스크를 키워드로 온라인 사업 관련 이런저런 강의들이 막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중에서 나름의 필터링을 진행하였고, 무료 세미나부터 만원 대 강연, 수십만 원짜리 온라인 강의, 백만 원 단위의 오프라인 강의까지 수강을 했었다. 지금 와서 단언할 수 있는 건, '교육은 적건 크건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흔히들 '강의팔이'라고 하며 강의를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사람들을 폄하하곤 한다. 또한, 따라만 하면 엄청난 부를 이룰 수 있다는 과장된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건 명백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빠르게 부스터를 장착할 수 있는 수단은 강의가 맞고 가격과 퀄리티는 비교적 비례하며, 그대로만 해도 강의료 정도는 회수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러 세미나와 자료조사를 통해 내가 집중 투자하기로 결정한 방향은 바로 '해외구매대행'이었다. 온라인 사업 중에서도 해외구매대행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사람을 대면하지 않아도 된 다는 것, 마음이 다친 후 전화공포증까지 생겨버린 나에게 대면 비즈니스는 어려운 일이었다. 두 번째는 초기투자자본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자본이 많지 않은데, 몇 가지 부대비용을 제외하면 사입할 필요도 없고 딱 좋은 조건이었다.
희망을 발견한 만큼 실행력은 강해져만 갔다. 회사 생활 내내 보던 주변 사람들의 눈치도 과감하게 떨쳐버리려 했다. (물론 아직도 힘든 일이지만..) 그때는 핸드폰으로 사업자 및 통신판매업 등록을 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각 플랫폼에 입점할 때도 필요한 서류가 많아서 한 번은 동사무소에 들러서 일처리를 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써보지도 않던 반차도 썼다. 퇴사를 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생각에 다른 건 고려하지 않았다. 마치 당장이라도 큰돈을 벌 수 있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강의에서 배운 대로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준비하고 온라인 몰에 입점하면서 나는 또 한 번 느꼈다.
'아 내가 이런 것도 잘 못하는구나.. 내가 퇴사하면 마주해야 하는 세상이 이런 세상일 텐데...'
회사에서는 인정받으면서 내 잘난 맛에 살아온 시절도 있다. 나의 판단력은 훌륭해, 회사를 위해선 이렇게 일해야지 하면서 콧대 높여 큰 소리로 말한 적도 많다. 그때마다 나의 자존감은 올라갔고 마치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회사에 갇혀 세상이 변하는 것도 모른 채 나이만 들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본 적도, 할 생각도 계기도 없었다.
'22년 2월, 설 연휴를 잊지 못한다. 온라인 강의에서 배운 대로 엉덩이 붙이고 열심히 한 결과, 첫 주문이 들어왔던 날이기 때문이다. 부모님 댁에서 서울 집으로 올라오는 버스에서의 그 전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온라인 시장에서 처음으로 벌어본 수익은 나에게 엄청난 만족감을 주었다. 사업자 등록이라는 최초의 시작부터 상품 소싱, 제품 등록까지 내 손으로 전부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에서는 '디지털노가다'라고 평가절하당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바닥부터 내 손으로 일궈낸 귀하고 빛나는 열매였다.
그때부터는 참 열심히 했다. 퇴근 후와 주말은 항상 공유오피스에서 일을 했다. 회사에서 회식을 해도 취한 채로 발주를 넣고 잠에 들었다. 꼴에 대기업 다니는 놈이라고 수익을 정리하고 비용을 상세하게 나눠 디테일하게 관리하는 척을 했다. 사업자통장에 정산이라는 것을 받아보면서 추가 수입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성취감을 맛보았다. 외국에 있는 물류업체와 소통을 하고 외화를 송금하면서 큰 세상에서 일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정도 궤도에 올랐으면 퇴사하고 올인해 볼까?' 하는 얼마 전의 나였다면 당연히 했을 법한 생각을 이때는 하지 못했다. 회사가 너무나도 싫었지만, 그동안의 과정에서 체감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내 모습' 그리고 '가파르게 올라가지 않는 성과'를 보며 무작정 저지르는 퇴사에 대한 겁이 났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수천만 원의 매출을 빠르게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는 매출 그래프를 보는 게 위안도 되고 재미도 있었다. 유명한 해외구매대행 코치와 1:1 오프라인 컨설팅은 진행했을 때도, '잘하고 있고, 이대로만 가면 좋은 결과가 있겠다.'는 피드백에 또 한 번의 희망을 품었다. 점심시간이면 온라인 사업에서 유명하신 분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최면에 걸린 듯 나에게 연료를 주입했다. 그럼에도 더딘 성장에, 공유오피스에서 일을 하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지.. 내가 이렇게도 부족한가...?'에 대한 좌절에 사로잡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내 모습 자체에 희망을 찾기 시작했고, 이렇게만 간다면 언젠가는 월급만큼 벌고 퇴사할 수 있겠다는 간절한 마음에 또다시 하루하루를 버텨갔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희망을 찾던 나의 모습과 상황이 절망을 주는 냉혹한 현실로 변하기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