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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어느날 Sep 26. 2024

서른셋의 나 (2) _ 복직

서른다섯, 다시 무기력에 맞서다.


나름 처절했던 3개월의 휴직을 마치고, 나는 복직을 했다. 

처음 계획은 3개월 휴직 후 복직이 아닌 무조건 퇴사였다. 하지만 복직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건강이 호전되면서 초기의 조급했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조금의 용기가 생겼다.

2.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재설정했고 이를 위한 실행을 하기로 다짐했다. 

3. 계획을 실천하고 도전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필요했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호전되면서, 마음을 굳게 먹고 '회사 생활을 즐겨보자'는 마인드를 장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 복직 몇 주 전 팀장님이 팀 회식에 초대했고 나는 용기 내어 참석했다. 몇 달 만에 본 팀원들은 나를 꽤나 반겨주었다. 조금은 밝게 변한 내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괜찮냐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또한 오래간만에 본 팀 선배 동료들이 반갑기도 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간에 이야기를 했고 함께 웃었다. 


꽤나 옛날 사람인 팀장님은 내 이미지를 걱정해 주었다. 병가를 쓰기 위해 상신한 품의에는 많은 결재라인이 있었고, 그들을 통한 나에 대한 소문은 꽤나 빠르고 넓게 퍼졌었기 때문에, 괜찮아졌다는 인식을 주고 이미지를 회복하려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동안 배운 게 있다면, 그런 것은 아무 쓸모도 상관도 없다는 점이다. 


그 당시 나는 심각하게 아팠고, 주저 없이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그 선택에 있어 주변의 가십거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주변의 평판?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를 보고 눈을 흘기던 사람들 전부 지금은 회사에 없다. 나는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오히려 내가 휴직을 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달라진 내 표정과 몸 상태에 못 본 새 좋은 일이 많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주변에 관심이 없다. 그때 그것을 몸소 깨달았다. 




3개월의 휴직을 결정하던 순간에는 복직이라는 옵션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퇴직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마음의 아픔이 가라앉고 몸 상태가 호전되면서, 좁아진 시야가 돌아오며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에 닿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해보지 않은 수많은 도전과 리스크 감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반드시 회사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꿈을 향한 도전이 한 번에 성공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많은 책을 읽고 상담을 받으며 내린 결론은 이랬다. '나의 인생을 위해 회사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연습을 하자.' 


회사에서는 내 몫의 일만 충실히 하며 에너지를 비축하고, 퇴근 후 내 삶에 에너지를 쏟기로 다짐했다. 이 것부터 나에겐 첫 도전이었다. 이러한 태도를 탑재하기 위해,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먼저 평판, 회사생활 5년 동안 그렇게도 집착했던 주변으로부터의 인정과 회사에서의 성공은 이제부터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며 미래의 성장을 약속하던 임원들 또한 회사원이었고 본인의 앞날이 가장 중요했으며, 얼마 못 가 다 회사를 떠났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겼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연습도 해야 했다. 평생 주변의 시선과 평가를 민감하게 생각하며 살아와서 그런지, 이건 지금까지도 극복해 내기 힘든 어려운 과제이다. 하지만 내 인생을 위해, 이러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여전히 변함없다. 정시 퇴근을 하는 순간에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주변 동료들을 보며 망설였다. '혹시 나를 욕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주변에서 나를 뭐라고 평가하든 중요한 게 아니야, 걔넨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어.'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기계처럼 일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에 의미를 찾으면 찾을수록 나의 동력은 사라져만 갔다. 그저 내 미래를 위한 계획의 안전장치 확보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바로 생각을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습의 연습이 필요했고, 지금도 완벽히 바꾸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번 마음의 고통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꿔야만 했다. 새로운 사람처럼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마주하며 고민했던 내 가치관과 재정립했던 인생의 목표, 그것을 이루기 위한 나름의 로드맵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며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신개조 수준의 마인드 셋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자세히 기록하겠지만, 내가 정의한 '내가 원하는 삶'은 명료하다. 


1. 부모님 병원비 걱정 없는 삶

2. 내 자식 자라는 모습 볼 수 있는 삶

3. 돈 때문에 아내를 울리지 않는 삶

4. 경제적 고통이 없는 삶

5. 마음이 다치지 않는 삶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것인지. 

부모님 아플 때 회사 일이 바빠 병원도 못 찾아가고, 병원비가 조금이라도 덜 나오길 바라는 삶. 

내 새끼 크는 것도 못 보고 일만 해온 것을 훈장처럼 말하는 주변 상사들처럼 되는 삶. 

내 집 하나 없이 은퇴 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기술과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삶.

돈이 없어 고통받던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고, 아버지와 십수 년을 떨어져 살았던 인생.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정말 큰 욕심인 것일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회사 생활로도 충분히 타협하면서 살 수 있다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합리화하며 지레 겁먹고 도전하지 않는 것이 내 인생의 키맨으로서 내가 할 일인가?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고 해봐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세웠으며 여전히 실패와 실천을 반복하는 중이다. 미련 없이 퇴사할 만큼의 성과를 창출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지치고, 이게 맞는 건가 포기하고 싶고, 남들은 금방금방 성공하던데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가 하며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써 내려갈 내가 해온 도전의 여정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또 한 번 무기력에 빠진 나를 보듬어 새로운 출발을 위해 힘을 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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