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매대에 놓인 라면 한 봉지의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습니다.
반면 그 라면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밀, 설탕, 옥수수 같은 원재료 가격은 시장과 계절,
각국의 수급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죠. 올해 들어 그 진자(振子)가 눈에 띄게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쌀, 밀, 옥수수 가격이 5년 만의 저점권을 찍었고,
원달러 환율까지 숨을 고르면서 국내 식품회사들의 원가율이 일제히 가벼워졌습니다.
삼양식품의 개별 원가율은 2022년 74%에서 2025년 상반기 59%로 15%p 하락했고,
CJ제일제당의 원맥(t) 수입단가는 2022년 말 대비 22% 낮아졌습니다.
원당 가격 역시 반 년 새 한 자릿수 비율로 내렸죠.
곡물가격 하락의 원인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유럽, 미국 등 주요 산지의 작황이 좋아졌고, 중국은 곡물 수입을 줄였습니다.
전쟁과 팬데믹의 충격이 가시면서 안전재고를 과감히 쌓던 시기가 지나간 겁니다.
인도는 쌀 수출 규제를 풀어 공급 쪽에 숨통을 틔웠고,
국제기구가 집계하는 곡물지수는 2020년 가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렇다고 영원한 낙관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곡물은 본질적으로 날씨의 자산입니다.
엘니뇨가 라니뇨로 바뀌고, 흑해 수출 항로에 예기치 못한 뉴스가 나오고,
어느 산지에서 수출 제한을 걸면 시세는 순식간에 고개를 듭니다.
이번 사이클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면 중국의 수입 축소가 단발 변수가 아니라 ‘뉴노멀’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입니다. 재배 면적 확대와 재고 운용 방식의 변화가 지속된다면, 과거 급등기만큼의 상단 압박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다만 변동성은 항상 남습니다. 그래서 투자자는 지속성을 따져야 합니다.
관심있게 볼만한 기업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회사를 봐야 할까요.
라면, 간편식, 제과 같은 가공식품은 원가 하락의 레버리지가 가장 크고,
이미 올려 둔 판가를 어떻게 운영하는지가 관건입니다. 판가를 굳건히 지키면 이익률이 급격히 좋아지고, 점유율 경쟁을 위해 프로모션을 과하게 쓰면 볼륨은 늘지만 이익은 희석될 수 있습니다. 여러 이슈와 함께 관심있게 볼만한 수혜 기업을 추려보겠습니다.
1) 삼양식품
수출 볼륨과 평균판매단가(ASP)가 동시에 우상향하고, 증설 효과가 본격 실적에 스며드는 구간이라 ‘원가↓ + 판가 유지’ 스프레드를 가장 정석적으로 누릴 후보입니다.
2) CJ제일제당
제분과 당, 가공식품이 함께 있는 포트폴리오라 곡물 및 설탕 하락의 효과가 여러 축에서 나타납니다. 2024년 실적에서도 방어력이 확인됐고 환율이 우호적일수록 글로벌 사업부가 받쳐주는 구조라 눈여겨 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