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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ug 14. 2018

한국인들은 왜 게임을 잘할까?

의외로 단순할 지 모를 그 이유..

한국은 자타공인 게임대국입니다. 아래는 WCG(World Cyber Games) 성적을 바탕으로 한 국가별 게임실력 지도인데요. 여기서 한국은 '신의 영역'으로 분류됩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스타크래프트, LOL, 오버워치 등 종목에 관계없이 각종 e-sports 대회의 우승을 차지하고 상금을 싹쓸이하는가 하면 유수의 게임회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출시한 작품을 몇 시간도 안 되어 클리어해버리는 등 게임세계에서 한국인들의 위엄은 말그대로 ㅎㄷㄷ한데요.


이쯤에서 떠오르는 의문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게임을 잘할까요?

한국인과 게임은 왜 한국인은..(why Korean..)으로 시작하는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의 첫머리에서 game을 볼 수 있을만큼 세계인들이 궁금해하는 주제인데요.


정작 한국인들은 이 현상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이 게임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상금랭킹이 높다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얼마나 하고 놀 게 없으면 게임만 그렇게 한다" 는 식의 댓글이 베플이 되곤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한국인들이 "하고 놀 게 없다"는 말에 대해서는 대단히 동의하지 않는 편인데요. 이런 인식이 게임 말고도 대단히 여러 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영화가 천만이 넘었다는 소식에도 '한국사람들은 하고 놀 게 없어서 영화만 그렇게 본다'. 주말이 산들이 등산객으로 가득찬다는 소식에도 '한국 사람들은 하고 놀 게 없어서 산만 그렇게 간다'. 프로야구 관객이 몇백만 명이 넘었다는 소식에도 '한국 사람들은 하고 놀 게 없어서 야구장만 그렇게 간다'. 

놀 데 없어서 야구장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

가만.. 어... 하고 놀 게 없다구요? 게임도 하고 산에도 가고 영화도 보고 야구도 보러 가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하고 놀 게 많은 거 아닌가요? 그러니 '하고 놀 게 없어서' 게임을 한다는 말은 별로 맞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왜 게임을 하십니까? 게임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죠.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닙니다. 게임을 잘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하고 싶으니까 잘 하게 된 것이죠. 


그러니 문제는 간단합니다. 한국인들은 왜 게임을 잘할까? 라는 질문을 "한국인들은 왜 게임을 잘하고 싶을까?"로 바꾸면 됩니다.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상 너머에 있는 욕구로 초점을 바꾸는 것이죠. 이것이 문화심리학적인 사고입니다. 


서두가 다소 길었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사람들이 게임을 잘 하는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사람들은 재미있어서 게임을 합니다. 게임에는 많은 재미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그래픽, 게임에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라인, 주어진 과제를 수행했을 때 받게 되는 보상 등등.


그러나 게임의 재미에는 이러한 게임 자체의 요소 외에 다른 것들이 더 있습니다.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이유 또는 맥락은 저마다, 그리고 문화마다 다른데요. 


게임을 하는 이유 중, 한국문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여럿이 어울리고 싶다 

는 점입니다. 


피씨방은 혼자도 가지만 대개 친구들과 어울려 갑니다. 그리고는 대개 같은 게임, 같은 서버에 접속해서 같은 파티를 이루어 놀죠. 친구들이 같이 가지 못하는 경우에는 같은 게임 안에서 종종 만나는 유저들끼리 시간을 정해서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혼자 게임을 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한 게임 안에 많은 유저가 동시에 접속하여 서로의 역할을 하는 방식의 게임을 MMORPG(멀티 유저 다중 접속 롤 플레잉 게임)이라고 합니다. 스타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lol), 오버워치, 배틀 그라운드 등 현존하는 거의 모든 게임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죠. 


플레이스테이션(플스)나 엑스박스, 닌텐도 같은 콘솔게임이 한 사람(혹은 두 사람)의 플레이어와 게임기 간의 상호작용에 그친다면 MMORPG에는 접속자의 수에 따라 수백수천 가지의 상호작용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MMORPG는 정해진 스토리라인 외에도 유저들이 행동할 수 있는 자유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게임 내에서 한 유저의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

유저들은 게임 안에서 직업을 갖고 물건을 사고파는 것 뿐만 아니라 사기를 치고 싸우고 동맹을 맺고 전쟁을 합니다. 때로는 게임 내에서의 상호작용이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져 즉석 만남을 갖거나 실제의 연애/결혼/현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콘솔게임(플스, Xbox, 닌텐도 등)이 주류인 일본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특히 MMORPG를 선호하는 편인데요. 제 지난 글(가면으로 본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인관계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22)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인관계 인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에 열려 있는 한국인들의 성향이 반영된 현상이라 생각됩니다.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국의 연극 

한국인들이 여럿이 팀을 이루어 플레이하는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데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한국인들이 게임을 잘 하고 싶은 또 다른 이유이자 가장 큰 이유는, 

지기 싫어서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입니다. 지기 싫으니까 잘 하게 될 수밖에 없죠. 


한국과 일본을 연구해 온 문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주체성 자기'가 우세합니다(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적 차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6). 


주체성 자기가 강한 사람을 자신을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는 중심적 존재(주체)로 보기 때문에, 타인을 이끌고 통제하고 가르치고 관리하려는 욕구가 큰데요.

'이긴다'는 것은 자신의 영향력을 타인에게 미칠 수 있는 일들 중에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반대로 '진다'는 것은 자신의 영향력이 가장 별 볼 일 없을 때겠죠. 따라서 한국인들은 누군가에게 이기고 싶은, 그리고 지고 싶지 않은 욕구가 강합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뭘 하든(예, 씨름) 삼세판, 즉 세 번 겨뤄 두 번을 이겨야 이긴 것으로 쳐 주었는데요. 한 번 승부의 결과로는 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한국인들의 심성이 반영된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일본의 스모가 단판, 한 번의 경기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과는 다르죠.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이기는 일은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의 나는 한없이 힘없고 약한 사람이기 쉽죠. 게임은 이러한 '승리'를 상대적으로 쉽게 경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게임에서의 승리는 상당 부분 나의 순수한 노력의 결과니까요.


한국에서 일어나는 문화사회적 현상은 대개 부정적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것도 한국인들에 의해서요. 한국인이 게임을 잘 하는 이유를 '놀이 문화가 부족해서'라든지 '지나친 경쟁에 내몰려 게임을 게임으로 즐기지 못하고' 등으로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이기고 싶어서 열심히 했고 그러다보니 잘 하게 됐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한국인이 게임을 잘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기고 싶은 마음이 어딘가 '자기가 꽂힌 분야'와 맞아떨어지면 한국인들은 거기서 또 기막힌 성취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추가로.. 한국이 게임을 잘 하는 이유로 언급되는 막강한 인프라와 접근성, 선수 육성시스템 등은 이러한 욕구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을 더 잘 하려다보니 좋은 장비와 빠른 인터넷이 필요하고 좋은 환경에서 게임을 하다보니 또 게임실력에 긍정적인 영향도 미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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