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트 대사 피습 후 일어난 일들에 대한 고찰
※ 이 글은 '트럼프의 격노가 의미하는 것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95' 중에서 리퍼트 대사 피습에 대한 부분을 발췌, 보완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미국(美國)의 의미는 특별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그냥 큰 나라, 초강대국이 아닙니다. 미국은 부(富)와 선(善)이며 법(法)이자 기준(standard)입니다. 구한말, 500년을 이어 온 유교를 잃은 한국은 미국을 새로운 질서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 다른 글(그들은 왜 성조기를 드는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69)을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국의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전래와 더불어 미국에는 '제사장의 나라', '신의 대리국'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는데요. 기독교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미국의 의미도 급격하게 종교성을 띠게 됩니다. 6.25와 냉전은 이러한 미국의 이미지를 한층 강화시켰죠.
그런데 미국에 씌워진 종교적 의미는 온전히 기독교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 우리나라에는 유교, 불교 등의 기존 토착신앙이 자리잡고 있었는데요. 연구자들은 가장 한국적인 종교로 무속(巫俗)을 꼽습니다.
무속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한국인의 심성에 영향을 미쳐왔는데요. 그동안 불교, 기독교 등의 외래 종교가 전래되었지만 기존의 토착신앙과 융합하여 여전히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전문용어로 습합(習合)이라고 하지요.
일례로, 불교는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이지만 애초에 인도의 토속신앙과 융합하면서 사천왕이나 제석천, 팔부중 등의 신들이 합류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무속신앙과 습합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것입니다. 주불당 뒤의 산신각(삼성각, 칠성각 등)이 그 증거죠.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처럼 건물을 따로 세우지는 않지만, 새벽기도나 부흥회 등 한국 기독교(특히 개신교)의 신앙형태는 상당 부분 무속신앙과의 관련을 짐작케 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종교화되는 과정에도 당연히 이러한 색채가 스며들었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그 대표적인 예가 2015년 발생했던, 리퍼트 미국 대사의 피습사건입니다.
2015년 3월5일 오전 7시경,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 강연 중 난입한 김기종(55)씨에게 25㎝ 길이 과도로 오른뺨, 왼쪽 손목을 찔린 사건인데요.
사건은 한 시민운동가의 일탈적 행동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기억들 하시다시피, 리퍼트 대사의 피습 이후에는 별의별 희한한 일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색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분들이 거리에 모여 부채춤, 북춤, 발레, 석고대죄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병실에도 위문편지와 꽃다발, 개고기를 필두로.. 환자에 좋다는 음식 등이 끊이지 않았죠. (리퍼트 대사가 애견가라는 것은 함정)
예상치 못한 한국인들의 뜨거운 반응에 외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가장 놀란 이들은 한국인들 자신이었던 듯 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 창피하다' '나라 망신이다' 등 낯설고 부끄럽다는 반응 일색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대단히 초현실적인 일입니다. 전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걸로 끝인 걸까요? 제가 늘 강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그런 일들을 하게 된 배경을 살펴봐야죠.
제 견해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들은 '굿'으로 설명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굿판을 벌였다는 것이죠. 이것이 리퍼트 대사의 피습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굿'이란 무속의 종교의례입니다. 그 전에 무속(巫俗)은 한국의 전통 신앙입니다. 현대사회 들어 미신으로 폄하되고 있으나 수천 년 동안 한국인들의 마음과 의식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죠. 역사적으로 불교, 유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존재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무속의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한국 연구자들의 공통적 인식입니다.
미국이 갖는 종교성 역시 무속에 대한 이해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종교성은 일차적으로 기독교(개신교) 신앙과 관계가 있지만 기독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무속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번 말씀드리겠지만 한국 기독교의 종교현상 중에는 무속과 관련된 부분이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리퍼트 대사의 피습에 대한 반응들을 '굿'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선, 그 행위들이 상당부분 공연형식으로 의례(ritual)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의도가 명백히 리퍼트 대사(와 미국)를 달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리퍼트 대사가 일개 개인이 아니라 미국의 대사 신분임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무의식에서 미국은 '신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신의 나라에서 온 대사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신의 사자, 즉 천사(天使)인 것이죠.
천사가 우리나라에서 해를 당했습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동티도 이런 동티가 없는 것이죠. 신이 크게 노할 일입니다. 그 해는 고스란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닥치겠지요. 굿은 이럴 때 해야 하는 겁니다.
물론 저 자리에 참여하여 부채춤을 추고, 발레를 하고, 난타를 한 사람들이 우리가 '굿'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리퍼트 대사의 회복을 기원하는 '기도회'라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두 나라의 외교적 관계를 기도로 해결한다는 해결방식 자체가 이미 무속적 사고입니다.
굿은 대개 다음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지는데요.
1. 문제가 발생한다.
2. 신을 부른다.(청신;請神)
3. 신을 즐겁게 하여 문제해결을 부탁한다.(오신;娛神)
4. 문제가 해결되고 신을 보낸다.(송신;送神)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공연들은 신을 즐겁게 하는 3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문제는 터졌고(피습) 신이 노했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 곧 들이닥칠 신의 화를 막기 위해서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 신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부채춤도 추고, 북도 치고, 발레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어떻습니까. 지나친 해석일까요?
그러나 리퍼트 대사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에서 굿이 아닌 다른 의미를 찾는 것도 무리입니다. 불합리, 미개, 정신병 같은 단어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러나 백주대낮에 한 나라의 수도에서 수백 명이 참여하여 벌어진 일을 '그들은 미쳤다'로만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만족스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