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헬조선에 버금갈 2015년의 핫워드는 뭐니뭐니해도 '흙수저'일 겁니다. 흙수저는 금수저의 반대말로 금수저가 부모 잘 만나 큰 노력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데 반해, 가진 것 없이 태어나 노력에 노오력을 거듭해도 잘 살기는 커녕 현상유지조차 힘든 이들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영어의 관용어구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een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가 한국에서 활용되면서 은수저보다 급이 하나 더 높은 금수저가 나타났고, 금수저에 대비해서 흙수저가 등장한 것이죠. 어느새 넷상에는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이어지는 수저계급론까지 나타났습니다.
누가 정리했는지는 모르지만, 금수저는 자산 20억원 또는 가구 연수입이 2억원이상, 은수저는 자산 10억원 또는 가구 연수입 8,000만원, 동수저는 자산 5억원 또는 가구 연수입 5,500만원, 마지막으로 흙수저는 자산 5,000만원 미만 또는 가구 연수입 2,000만원 미만을 의미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시나요?)
처음에는 금수저의 반대말로 쓰이던 흙수저는 어느새 인터넷을 달구는 핫 이슈가 되었습니다.
사회에 어떠한 현상이 급속히 퍼지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그만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흙수저라는 말 속에는 한국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고, 그 말을 통해 호소하고자 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지요.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흙수저 계급론이 결국 내가 못 가진 것에 대한 남 탓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잘 살고 싶으면 노력을 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느끼기에 우리 사회는 노력한 만큼 잘 살 수 있는 사회일까요?
한국과 외국의 부자들을 비교해 보면 외국은 창업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반면 한국은 대부분이 상속, 즉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얻은 부입니다. 우리는 소위 '부모 잘 만나' 남들보다 쉽게 기회를 얻고 또 성공하는 이들을 자주 접합니다. 국회의원의 자녀가 로스쿨에 쉽게 입학을 하거나 손쉽게 교수가 되고, 재벌의 자식은 남들 다 가는 군대도 가지 않고 젊은 나이에 계열사들을 거느린 사장이 됩니다.
흙수저는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뼈빠지게 회사를 위해 일했지만 승진하는 것은 소위 금수저들이고 늦은 나이에 퇴사해서 편의점, 빵집, 카페 등등을 차려보지만 대기업의 2세들은 어느새 골목상권까지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노력'은 과연 얼마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요?
제가 대학에서 만나고 있는 청년들의 노력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대학생들은 1학년때부터 성적과 공인영어시험 점수, 스펙관리에 몸이 서너 개라도 부족할 지경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비로 등록금을 벌거나 학자금 대출이라도 받은 경우에 그 노력의 정도는 제곱, 세제곱이 됩니다. 공강시간과 방과후, 방학은 이들에게 재충전을 위한 휴식시간이 아니라 모자란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치열한 투쟁의 시간입니다. 밤 늦게 알바를 마치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성적과 스펙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사람들은 상대방이 겪는 사건의 원인이 상대방의 내적 속성에 있다고 생각하는 '근본귀인오류'를 저지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추론경향성이죠. 하지만 청년들의 노력부족을 탓하기 전에 경기가 침체되어 고용이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나 기회 자체가 줄어든 현실에 눈을 돌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노력은 희망이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희망만 있다면 청년들은 노력이 아니라 노오력, 노오오력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청년들은 실제로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력해 왔고 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흙수저의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몇년 전부터입니다. 88만원 세대와 N포 세대가 유행어가 된 것이 그 시작이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중고등학교 6년동안을 입시에 올인하여 대학에 입학한 뒤 4년 동안을 성적과 스펙관리에 매달려야 졸업 후 월급 88만원을 받습니다. 2015년 1인 가구의 한달 최저생계비가 62만원입니다. 88만원으로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N포 세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3포에 인간관계와 내집마련을 포기한 5포, 5포에 더해 꿈과 희망을 포기한 7포 세대... 거기에 건강과 학업마저 포기한 9포세대...
이들이 포기한 것은 미래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포기하게 된 이유는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부른다는 것이 과연 심리학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하는 점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현재의 흙수저 현상이 향하는 곳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문화심리학자 한선생이 그 과정을 추론해 보았습니다.
1. 먼저, 욕구가 있습니다. '잘 살고 싶다'
2.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이 나타납니다. '노력한다'
3. 욕구가 좌절됩니다. '노력을 해도 소용이 없다'
4. 욕구를 좌절시킨 것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나타납니다. '헬조선 싫다, 금수저 밉다'
5. 현실이 변화하지 않습니다.
6. 분노와 원망이 사그라들면서 자신의 욕구가 좌절된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습니다.
7. "내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이 잘못이다"
주목할 부분은 5에서 7로 이어지는 심리적 변화입니다. 청년들은 처음에 좌절된 욕구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변화하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바뀌리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입장에서 해결되지 않는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그대로 갖고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점차 대상에 대한 원망을 '자신에게로' 옮겨옵니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게 속이 편하니까요...
이러한 과정은 문화심리학이 밝혀낸 한(恨)의 생성과정과 일치합니다.
한은 자신이 당한 인정할 수 없는 피해에서 발생합니다. 한은 처음에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대상에 대한 원망으로 나타나지만,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서 대상에 대한 원망은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한(恨)은 자신이 경험한 부정적인 사건의 원인이 결국 자기에게 있다고 인정해 버림으로써,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상실했던 통제력을 되찾으려 하는 아주 처절한 방식의 멘탈유지법입니다.
사람들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통제감을 가지려는 욕구(need for control)가 있습니다. 통제감의 욕구는 정신건강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통제감을 가지기 힘든 경우에도 착각적 인지과정을 통해서라도 통제력을 확보하려 노력할 정도입니다.
쉬운 예로 운동선수들의 징크스가 그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했어도 경기의 승패는 쉽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때 선수들은 경기에 대한 통제력을 얻고자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들(속옷 뒤집어 입기, 특정 순서대로 유니폼 만지기 등_예를 들면, 박한이)에 집착하게 되는데 이것이 습관화된 것이 징크스입니다.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한(恨)이 이러한 기능을 해 왔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적 결과 앞에서 '내 탓'을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내가 겪은 사건의 이유를 설명하고 통제감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즉, 흙수저 계급론은 이 시대 청년들의 한(恨)입니다.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고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음으로써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한(恨)은 국내외 학자들로부터 한국인을 대표하는 문화적 정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비극, 권위주의 정권의 압제를 겪는 동안 한국인들은 가슴으로 한을 삭여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낸 지난 몇십년 동안, 한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잊혀진 감정이라 여겨진 것도 사실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웰빙'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잊혀졌던 한(恨)이 되돌아 오고 있습니다.
세상 앞에서 아직 날개도 펴보지 못한 청년들의 마음 속에 말입니다.
과연 우리는 흙수저 논란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한국인심리학'의 다음 글에서는 '흙수저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