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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Apr 25. 2024

너의 말에 나는 숨이 막혀 온다

떠나는 신입 사원의 마지막 말


 "선배님. 혹시 밥 드실 때 반찬 안 드시고 맨밥만 드시는 건 아니죠? 말에 왜 이렇게 여유가 없어요? 어쩔 땐 숨이 막혀요. 맨 밥을 반찬 없이 퍼 먹는 기분이라고요! 진짜로! 아, 가는 마당에 이런 말 해서 미안해요. 근데, 꼭 하고 싶었어요. 이 말. 안녕히 계세요. 저 갈게요."


...라고 첫 직장의 회사 신입이 빠른 퇴사를 시전 하면서 보이지 않는 망치로 후들겨 패고 떠났다. 그 동료는 나름 예의를 지킨다고 미안하단 말로 마무리하며 그런 무시무시한(?) 얘길 했는데 당시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나는 그저 신입으로 왔기에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나름대로 말을 많이 하며 노력한 건데 그게 그렇게 받아들여졌다니,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저 떠나는 마지막 뒷모습만 넋 나간 얼굴로 바라볼 뿐.


그가 떠나고 부어오른 뒷머리를 문지르며 괜찮은 척했지만, 그 뒤로 누군가와 처음 만나는 일이 생긴다거나 대화를 할 일이 생기면 자꾸, 그 신입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상대방이 질식할 것 같지는 않은지 신경 쓰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다소 뻑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했으면, 다음은 재미있고 소박한 대화 소재를 꺼내려고 노력했고, 내가 느끼기에도 꽤 많이 말했다 싶으면 인내심을 발휘해 입을 닫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내 '지껄이기' 본능은 억눌러지지 않았다. 시시 때때로 나라는 인간의 패시브 스킬은 여지없이 발동되었고, 그때마다 자제력을 잃고 상대방이 지루해하든 말든 마음대로 떠들어댔다. 종일 지껄여대고 나서, 흙빛이 된 상대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제야 얼굴이 붉어지곤 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다음 순간에는 여지없이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꽃 피우며 나를 괴롭혔다.


순진했던 걸까, 멍청했던 걸까? 일방적인 대화가 상대를 힘들게 만든다는 걸 몰랐다. 정말이다. 상대의 기분이 드러나지 않기에 사소해 보였던 걸까? 아니, 어쩌면 보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내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게 즐거웠다. 그래서 모른 체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때 나는, 무의식 중에 알고 있던 그 점을 누가 직접적인 말로 구체화시키자 무척이나 아팠던 듯하다. '상대가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에 한 말들이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어색할 것 같아서 얘기를 계속 꺼낸 것이다.' 같은 말은 그저 나를 위한 뻔뻔한 변명일 뿐이었다. 그런 말을 해봤자 부지런히 잘도 떠드는 내 앞에서, 어떤 누군가는 '질식할 것 기분'을 느낀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고, 얼굴빛이 흙빛이 된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인정해야 힐 건, 단 하나였다. 나는 대화를 썩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아프지만 그것이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의 나는, 대화는 상대방과 나 둘 다 즐거워야 하는 '이벤트'라 믿게 되었다. 봄날 점심식사 후의 포근한 산책처럼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상태로 서로 주고받는 공놀이. 


대화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하는 공놀이의 목표가 어딘가에 골을 넣는 일이라면, 그 방식은 혼자 골대로 볼을 몰고 달려가는 드리블이 메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과 패스를 건네며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대화의 '골'을 꽃피우기 위해 상대방이 어디 있는지를 보고 정확히 공을 보내고, 상대의 공을 받기 위해서 적절한 위치를 찾아갈 필요가 있다. 상대가 공을 주기 껄끄러워하면 공을 달라고 요청하기보다는 상대가 편하게 패스할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일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대화를 하려 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다. 


혼자 화려하고, 혼자 재미있는 건 대화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수강생들은 모두 자고 있는데, 혼자서 신나게 떠드는 혼자만의 강의를 하는 일이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가끔 진심으로 그때 나에게 답답함을 토로했던 그 신입 사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많이 아팠지만 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내 문제를 제삼자 입장에서 보려 노력하고, 결국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마움의 이유는 충분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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