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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Jun 08. 2019

온통 이파리들로 홍수가 난 상태였다

여행 소회 (17) - 대한민국 경기도 가평



아침에 비가 살짝 내려 마당에 깔린 단풍잎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내린 비로 공기가 씻겨져 가을산은 붉게 맑았다. 숙소 위 지붕을 덮고 있는 나무들은 계속해서 단풍비를 내렸다. 마당은 온통 이파리들로 홍수가 난 상태였다.



주인집의 고양이는 바짝 들어 올린 꼬리로 잔망스럽게 톡톡 건드리며 관심을 끌었다. 10월에 입양돼 시월이라고 불렸다. 두 마리의 골든리트리버 부자는 촐싹 대는 시월이를 물끄럼이 바라보며 조용히 우리 곁에 머물렀다. 곁에 와 앉는 폼이 무게감이 있었다. 커다란 털 뭉치가 곁을 내어주니 마음을 열어 손난로 하나를 넣어둔 것처럼 따뜻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마당은 걸을 때마다 단풍잎 아래 깔린 자갈이 부서져 자갈자갈 소리를 냈다. 이파리의 색은 하나하나 스포이드로 콕콕 찍어 다른 컬러를 입힌 것처럼 다양했다. 일몰이 가까워지자 마당엔 불이 켜졌다.



전구의 빛이 번져 열매가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신이 난 우리는 마당에 쪼그려 앉아 어린 손님들이 놀았던 것으로 보이는 소꿉놀이 세트를 모델 삼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흙이 들어앉은 플라스틱 장난감이 참 고왔다.



일행이 마음에 드는 단풍을 찾았는지 낙엽을 네트에 걸었다. 붉은색의 이파리는 마를린 먼로의 립스틱처럼 탁함이 없는 선홍색이라 그날 저녁과 잘 어울렸다. 청명한 가을바람이 조금은 서늘하게 뺨에 와 닿았지만 공기가 수분을 머금어 아프지 않았다. 지친 기억을 바람이 낚아채 산 너머로 날려 보냈다. 작은 마당에서 온 산을 누린 듯 생각이 제멋대로 리듬을 탔다.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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