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마트에서 과육이 잘 익었으면서도 잎사귀(정확하게는 크라운이라고 한다) 부분이 싱싱한 파인애플을 고른다. 잎사귀가 누렇게 변했거나 상한 것은 되도록 피하고 초록초록 예쁜 아이로 골라본다. 마치 내 반려식물을 고르는 기분으로...
둘째, 크라운 부분을 대강 잘라내고 과육을 분리해 맛있게 먹는다. 잎사귀 부분은 이제부터 내가 키울 식물이니까 냉장고에 넣는 것보다 바로 손질해 과육 부분만 밀폐용기에 정리해 넣어주는 게 좋겠다.
셋째, 크라운에서 과육을 섬세하게 제거하고 아래 잎과 상한 잎을 몇 장 따준다. 이때 잎을 과감하게 많이 따 주는 분들도 있고 물꽂이시 물에 잠기지 않을 정도로만 정리해주는 분들도 있다.
넷째, 잼이나 스파게티 소스병을 깨끗이 씻어 화병으로 재활용한다. 잎이 잠기지 않도록 입구부의 크기가 적당한 것을 선택해 파인애플 밑동 부분을 물에 담근다. 사실 물꽂이 과정은 뿌리가 나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한 절차일 뿐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못했을 경우 물러질 가능성도 있다.
가끔은 크라운을 며칠 잘 말려두었다 흙에 바로 심을 때도 있다. 흙에 심고 나서는 뿌리가 나는 것을 관찰하지 못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내버려 두면 어느 순간 깜짝 놀랄만한 이벤트로 당신을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섯째, 물꽂이한 파인애플을 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깨끗한 물로 자주 갈아준다. 뿌리가 내리기까지는 수주 정도 걸릴 수 있다. 이 과정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닌데, 파인애플을 살 때마다 시도하다 보면 얻어걸리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뿌리가 충분히 내리면, 화분을 준비해서 흙으로 옮겨준다. 파인애플은 열대 과일이니 너무 추운 곳은 피하고 따뜻하고 습한 곳이 좋다. 여름이나 따뜻한 계절에는 밖에서 키워도 좋고 겨울에는 실내 관리한다. 따뜻하고 양지바른 베란다라면 장소 이동 없이 계속 키워도 상관없다.
꽃이 피고 열매가 다시 열릴 때까지는 2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오랜 기간이 지나도 꽃이 피지 않는다면 에틸렌 가스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에틸렌 가스는 과일/야채의 숙성에 관여하는 식물의 호르몬이다. 그래서 인공적으로 과일을 익게 하거나 개화를 촉진할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에틸렌은 식물의 세포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있지만, 가정에서는 손쉽게 잘 익은 사과 조각을 화분에 올려두는 방법을 통해 인공적으로 공급해주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흔히 사과는 다른 과일과 함께 보관하지 말라고 하는데, 에틸렌 가스가 많이 발생해서 다른 과일까지 너무 빨리 익게 하기 때문이다)
출처 : 픽사베이
이제 내 반려식물은 파인애플
파인애플이 또 다른 파인애플 열매를 맺을 때까지 최소 2년이 걸린다니 무엇하러 그런 짓을 하냐며, 차라리 마트에서 하나 더 사 먹고 말겠다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시간이나 경제적인 효율면에서는 100%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파인애플 다시 기르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쓰레기도 내 반려 식물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내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의 시작인 것 같다. 식물이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과 기다림이 주는 지혜까지 합하면 돈으로 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파인애플 크라운을 부엌 창가에 물꽂이 해두고 수년 뒤 귀여운 파인애플이 뿅~하고 달릴 즐거운 상상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2년 뒤 파인애플이 드디어 열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꼭 전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