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드닝은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고 생각하기 쉽다. 식물 모종이야 사실 커피 한 잔 가격보다 더 싼 게 현실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고급 품종으로 키우려면 가격이 상당하다. 식물보다 더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역시 화분인데, 집안 분위기와 내 취향에 맞는 화분을 고르다 보면 만만찮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브랜드 토분의 경우에는 작은 화분도 3~5만 원에 달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재화에 비하면 그리 비싼 가격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식물이 하나하나 늘어날 때마다 추가되는 화분 가격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액수다.
그런데 식물을 오래 키우다 보니 꼭 돈이 드는 가드닝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캠핑 초보가 온갖 장비를 사모으는데 집착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1인용 원터치 텐트로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는데, 가드닝 또한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요즘 집에서 식물을 키울 때 고급 화분 대신 플라스틱 포트와 식품 용기, 주스병 등을 많이 활용한다. 좋은 말로 포장을 해보자면 물건을 다시 쓰는 리유즈 가드닝이다. 처음엔 환경 보호에 특별한 뜻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고, 그냥 요즘 식품 용기들이 참 단단하고 예쁘게 잘 나와서 재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선물 받은 주스병은 요즘 수경재배 용도로 유용하게 쓰인다. 주스병은 입구 부분이 좁아 물꽂이할 때 딱이다. 높이가 높아 뿌리가 뻗어나갈 자리도 많다. 요즘 트렌디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주스병이 많아 꽃을 꽂아두는 화병으로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테이크아웃 커피컵도 뚜껑 구멍 부분에 식물 줄기를 끼워 수경재배하면 뿌리만 물에 닿게 수위를 잘 조절할 수 있어 아주 유용하다. 조금 단단한 것은 아래쪽에 구멍을 뚫어 화분으로도 사용가능하다.
무순이나 작은 야채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는 특히 파종에 유용하게 쓰인다. 지피펠렛을 옹기종기 올려두고 저면관수로 관리하며, 습도관리를 위해서는 뚜껑도 살짝 올려둘 수 있어 씨앗을 키울 때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싹이 나기 시작하면 계속 물이 고이면 곤란하기에 용기 아래 구멍을 10개 정도 뚫어 배수가 되게 하고, 또 다른 플라스틱 용기를 받침처럼 겹쳐두면 관리가 용이하다.
스*벅스 디저트 용기는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귀여운 디자인이다. 아이가 좋아해서 가끔 사 먹는데 유리병은 작은 슬릿분을 끼워두면 딱 좋다. 지금 파종해 키우는 금어초도 본잎이 나면 슬릿분으로 옮겨, 이 유리병에 끼워줄 생각이다.
나는 굳이 화분을 많이 사지 않고 플라스틱 포트는 그대로 재사용하되, 흙만 바꿔 분갈이하는 경우가 많다. 집이 좁아 식물을 작게 키우는 편이라 뿌리는 손질을 해서 들여온다.
분갈이 없이 포트 그대로 키우면 이미 재배, 유통과정에서 영양분이 소진되어 집에서 건강하게 키울 수 없다. 그래서 분갈이는 하되, 포트는 계속 활용을 한다.
포트 그대로 키우면 아무래도 예뻐 보이진 않을 수 있어 화분 커버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케* 화분 커버는 가격이 저렴해 10개 정도 구비해 두고 돌아가며 7년 넘게 쓰고 있다. 화분커버가 좋은 점은 물을 주다가 바닥에 넘치는 일도 없고, 집을 비울 땐 저면관수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엔 파인애플 캔을 깨끗이 씻어 화분 커버로 활용해 보았는데, 살짝 레트로 하면서도 싱그러운 열대의 느낌이 나서 아주 마음에 든다. 요즘 어떤 화분보다 마음이 가 책상 옆에 놓아두고 매일 보고 있다.
요즘 자주 먹는 그릭 요거트 용기는 귀여운 오니기리 모양으로 높이도 높아 파프리카 심을 화분으로 모으고 있다. 파프리카 씨앗도 따로 산 것이 아니라 파프리카를 잘라 손질하다 재미로 심어본 것인데 진짜 싹이 났다. 식물도 리유즈, 화분도 리유즈가 될 것 같아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환경보호도 쉽고 재미있어야 꾸준히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우연히 시작한 리유즈 가드닝은 쉬우면서도 흥미롭다. 파인애플, 아보카도, 파프리카, 대파 등 많은 식물도 리유즈가 가능하니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
굳이 리유즈에 집착할 필요 없이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오래오래 잘 쓰는 것도 멋진 환경보호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물건을 살 땐 내 마음에 딱 드는 하나를 신중하게 골라서 오래도록 잘 쓰는 것도 리유즈 못지않게 멋진 환경보호 실천방법이겠지.
식물은 자연의 한 조각을 떼어와 기르는 것이니, 자연에 대한 책임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 실내 식물의 역사가 열대 지역 환경을 착취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책임감은 한결 더 무거울 것이다. 내 방안의 식물을 사랑한다면 지구 환경의 80%를 차지하는 식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한 번쯤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