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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최애에 빠지게 되었냐면

다시 만난 세계 - 3

by 시그리드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가장 완벽한 대답은 “잘 모르겠어. 그냥 다 좋아”라고 생각한다. 그냥 어느새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것’. 그것이 무언가에 빠져버릴 때의 감정일 것이다. 이렇게 속절없이 감겨버리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그래서 왜 최애에게 빠지게 되었냐면

같은 덕후들끼리도 아니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 "제발 좀 잘하는 우리 애를 봐주세요"하고 '영업'을 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서로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각자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를 지속적으로 강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이성을 잃고 친한 주변인들에게 영업을 했던 적도 있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참을성 많았던 그들에게 감사를...)

그렇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왜 최애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나름 담백하게 설명해보려 한다.

칭찬하고 싶은 점은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많고, 왜 좋은지를 물어본다면 역시나 대답은 그냥 좋다 이지만. 소극적이고 여리게 보이던 아이가 어떻게든 팀원들을 다독이고 좋은 무대를 만들어내고, 하나하나 미션을 클리해가는 모습이 기특했다. 눈부신 외모와 가수로서 중요한 아름다운 음색을 가진 것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꿈을 향해가는 모습과 그 노력이 좋았다.


부모 대리 체험

하나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 그 노력을 결과물로 확실하게 보여주며 낮은 등수에서 어느새 데뷔권으로 성장했다는 것 자체를 부모의 심정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래, 아마도 앞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을 것 같지만, 자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모성애가 있는 사람이었나?

마지막 방송날이 되었을 때, 나는 염치 불구하고 (이를 이해해줄 만한) 주변인에게 “제발 좀 뽑아달라” 며 문자투표를 독려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만난 세계

최애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무대였다. <다시 만난 세계>는 보통 댄스곡으로 커버를 하기 마련인데(시즌1 때도 고음이 돋보이는 커버 무대가 회자되었다) 이땐 보컬 포지션의 미션으로, 발라드로 편곡해서 준비해야 했고 우여곡절 끝에 팀원들을 다독여서 멋진 무대를 만들어냈다. 숨죽여 바라보던 사람들 앞에서 떨리는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터져 나오던 환호성과 달라진 공기는 그 아일 모르는 사람들도 충분히 느낄만한 것이었다. 그 다만세 무대 이후로 그 아이의 세계는 달라졌다.


그로부터 2개월 후, 2018년 8월 31일.

이 날 나의 최애가 속한 걸그룹의 멤버가 확정되었고, 그 이름이 공식적으로 공표되었다.

나의 공식적인 아이돌 덕질이 시작된 덕후 인생의 시작인 날이었다. 이 날 나의 세계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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