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의 매력

뻔한 술 이야기 - 20

by 시그리드

우리는 술을 왜 마실까?

술 자체의 고유한 맛 때문에, 또는 함께 페어링 되는 음식들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식음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술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진 않지만 즐거움을 주는 '기호식품'이다. 알코올로 이루어져 있기에 취기를 유발하며 세계 보건기구가 선정한 '마약성 물질' 이기도 하다.

이런 속성 때문에, 일부 문화권에서는 공식적으로 판매를 하지 않는다든지 먹는 날이 정해져 있다든지 금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술을 왜 마실까라는 질문엔, 맛이 있거나 포만감을 주는 식품으로 보다는 알코올을 함유한 포션으로서의 기능에 집중하게 된다. 즉, 술자리가 주는 특별함이 좋아서 혹은 술이 주는 취기가 좋아서 등으로 좁혀지게 되는 것이다.


물처럼 술 마시기 vs 알쓰 되기

문득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알코올 분해 유전자를 타고나서 술을 리터럴리 물처럼 마시는 것 vs 소주 한잔이면 알코올의 노예가 되는 것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물론 적당히 사회에서 평균이라고 불리는 정도의 술 분해효소를 타고나는 게 좋겠으나,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아마 과거의 나였다면, 정말 술을 잘 마시고 싶었고 '술은 근성' '술은 먹다 보면 세진다'는 유사과학 같은 논리를 철석같이 믿었으므로 전자를 원했을 것 같다. 즐기는 술이 아니라, 버티는 술을 마셨던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소량밖에 입에 댈 수는 없을지라도 취하는 기분을 쉽게 느낄 수 있는 후자를 선택할 것 같다. 유달리 맛있는 술들을 많이 먹지 못하는 것은 아쉽긴 하지만, 꼭 술이 아니어도 맛있는 음식들은 많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이 술을 마셨던 기억은 끝이 좋지 않았다. 아니, 기억이 없어서 '끝' 이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하하...


낮술의 매력

얼마 전 오랜만에 낮술을 했다. 버거집에서 페일 에일 하나를 시켜서 같이 먹었는데, 적당히 취하는 기분이 좋았다. 어둑해진 상태에서 시작되는 술자리는 술잔을 채우고 비우며 시간과 이야기가 쌓여가지만, 밤이 주는 안도감은 이성의 끈을 놓은 채 알코올을 부르짖게 만든다.


낮술은 밥과 함께 간단히 먹을 때가 많은데, 살짝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시고 끝난다. 누군가와 점심을 함께하며 마신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페이스를 맞출 필요는 없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만큼 꼭 커피처럼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마신다. 이것이 태양이 이성의 끈을 지켜주는 낮술의 매력이고, 그래서 내가 낮술을 좋아했지 싶다. 즐기는 술의 끝판왕이야말로 바로 낮술이다.

휴양지에서 대낮에 바다를 보면서 마시는 맥주란... 아 생각만 해도 웅장해진다. '대낮부터 술을 마신다' 라는 낮술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도 이제는 좀 수정되야하지 않을까?


취하는 기분을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신다. 철저하게 술이 주는 효용을 생각한다.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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