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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리드 Aug 18. 2022

일하는 이유

장투하듯 삽니다 - 27


일하는 이유

일이라는 건 뭘까.

애초에 그냥 돈을 벌기 위한 것만 일로 생각했다면 모든 게 편할텐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이 주는 의미, 만족감, 성취감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또 그렇다고 배워왔으므로. 그래서 '좋아하는 일' 이라는 표현도 쓸 수 있다. 특히, 내가 '쓸모 있다' 고 여겨지는 효용감 같은 것은 진짜 인간의 본능에서는 왔을 것 같진 않은데, 사회가 인간들이 일하게 만들기 위해 교묘하게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기도하다.


여하튼 일이라는 것은 여러 얼굴이 있고, 꼭 금전적인 가치가 있어야만 일이라고 볼 수도 없다. 여러 이유에 의해 회사를 뛰쳐나온 백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을 뿐, 일을 하지 않을 생각은 없다.

뭐가 되었든 '내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므로. 이건 금전적인 것과 별개로 나라는 존재의 근본과 직결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평생 농사를 지으셨던 우리 할머니는 팔십이 넘어서도 움직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집 근처 밭이 팔린 이후에도, 저 멀리 한참을 차를 타고 가야하는 밭까지 삼촌을 재촉해 기어코 드나드셨고. 그마저도 힘들어졌을 때도마당의 식물들 키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이 닿은 식물들은 보란듯이 꽃을 피웠다. 나는 할머니를 보며, '소일거리' 라고 폄하되지만 사실상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백오피스, 그러나

최유안의  <백오피스>를 읽었다.

최유안 작가의 책은 <보통맛>이란 단편집을 만족스럽게 읽었는데 그 보통의 모범 인간(?)이 되고자 하는 분투가 좋았다.


책에는 3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데,

호텔의 백오피스의 지배인인 '강혜원' 과 에너지 대기업 태형의 대리 '홍지영',  행사 기획자 '임강이' 이렇게다. 이 세 명의 개성 있는 여성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다른 고민을 품고 살고, 일을 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준비하는 대형의 컨퍼런스를 잘 해내고 싶다는 그 마음. 그러니까 일을 잘하고 싶다는 그 마음가짐 말이다.

소설은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위기들을 거쳐 행사를 치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궤적을 쫓아간다.


백오피스라는 말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호텔에서 프런트 뒤편에서 보이는 것들이 모두 잘 돌아가도록 보좌하는 업무를 맡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들을 뒷받침하는 곳. 호텔뿐 아니라 사실 모든 일 돌아가는 일은 백오피스가 있기에 가능한 것일 텐데, 책 속 표현에 의하면 '무언가 유지하는 데는 그것을 아끼는 어떤 이들의 마음과 그것을 받쳐 줄 희생이 수반된다'. 사실 회사의 모든 일들이 그렇다.


오너, 상품(결과물), 스타, 창작자 등 앞에 보이는 것 뒤에는 그들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바로 그 뒤, 백오피스에 있는 사람들이니깐.


강혜원은 집에서 육아를 도맡아 하는 남편의 이혼선언과 잘 챙겨주지 못하는 딸이 신경 쓰이지만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임강이는 정말 일 자체를 사랑하며, 홍지영은 똑 부러지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한다. 강혜원의 경우 육아휴직에 갔다가 돌아온 선배들이 떠오르고, 임강이는 3-4년 차쯤 되었을 때의 열정이랄까 그런 시기가 떠오른다. 홍지영, 그래 홍지영의 경우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 정도로 생생한데(작가는 이 책을 구상하면서 오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고), 이건 또 우리들의 얘기기도 해서 공감이 갔다. 지독한 모범생의 길.


어릴 때 홍지영은 자신이 지구에 떠다니는 먼지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 늙어 가다 결국 죽는 이 거대한 연극이 한없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것 좀 하자고 일을 하며 청춘을 바치는 꼴이라니.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청춘, 꿈, 열정 따위는 애초에 인생에 없었던 단어처럼 멀어졌다.

눈앞에 주어진 보고서와 납부해야 하는 공과금이 늘면서부터, 학점과 취업, 인사고과 같은 것들이 소소하고 끈질기게 자신을 붙들고 부지런한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강요하면서부터 삶은 한 번도 유치해진 적이 없었다. 대기업에 입사해 부모님이 자식의 이력을 적당히 자랑할 수 있었을 때부터 홍지영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유치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최선을 다해 해내고 있었다. 일상은 유치하지 않았다

백오피스, 최유안



알고있지만,

어떻게 보면,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 이 행사는 에너지 그룹 태형이 비리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고, 친환경 기업으로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고. 모든 건 결국 태형이라는 기업과 그 태형의 오너와 주주들을 위한 것이나 진배없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세명은 어딘가에 소속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개미일 뿐이다. 태형 전략기획실에 소속된 홍지영조차도 사실 끝없는 보고와 의전 지옥에 놓인 그냥 월급을 받는 일개의 직원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열심히 일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 과정은 끝없이 지겨운 조율의 늪이고.

세상 모든 일터에 속한 직장인이 그렇다. 결국에는 자신이 맡은 일을 무탈하게 잘 끝내고 싶다는 그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는 사실상 일하는 개인의 커리어와 성취, 보람, 의미 혹은 금전적 보상 등을 중요한 일인 양 크게 부풀려서 믿게 만든 뒤 일에 전념하게 만드는 구조이므로.


나를 포함 인생 일대가 번민이 연속인 인간들은 과연 이게 맞나, 의미가 있나, 대체 일을 왜 하고 있는 건가 하고 고민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러다가 또 일이 주어지면 하고 그런 것들을 반복하고는 한다. '과정 없이 결과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모든 과정이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일을 하는 것은 그게 주는 무언가가.. 거부할 수 없는 귀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긴 할 거다. 각자가 생각하는.


그 불나방의 삶을 벗어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다시 불나방이 된다고 하더라도 예전처럼 무리스럽게,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죽어라 달려들진 않을 것 같다. 어찌 됐건 그 빛 바깥에는 희미할지라도 또 다른 빛들이 많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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