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람이 아닌 기억으로

by 옹달샘

25년 10월 초는 거의 2주 내내 비가 왔다.

흐리거나 비오거나를 반복 했지만 마치 여름 장마가 뒤늦게 찾아오는 듯 분명 비가 계속 왔다.

우리 할머니는 딱 그 시기에 돌아가셨다.

편찮으실 때부터 애석하게도 하늘은 늘 우중충했고 돌아가시는 날도 하늘이 울었다.

그리고 며칠 만에 해가 모습을 보이는 때가 찾아왔는데, 그날이 바로 장례식 3일 차이자 화장을 하고 납골에 모시러 가는 날이었다.




2025년 10월 9일 목요일. 장례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이 날은 수면시간 0시간. 통으로 밤을 새운 날이어서 사실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벼락치기 시험 때에도 밤을 새지는 않는데.. 수면이 인간의 3대 본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날은 기억도 감정도 밍밍하다. 뭘 해도 몽롱한 게 집중도 되지 않았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로 그렇게 따라 움직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침 일찍 우리는 식장을 정리했고 여정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의 일정은 이러하다. 식장 -> 우리 시골 할머니의 동네와 집 -> 화장터 -> 납골당

장남인 오빠가 할머니의 사진을 들고 이동했고 친척 동생이 그 뒤로 위패를 모시고 따라갔다.

그리고 난 그 주위를 맴돌며 함께 걸었다. 아 정확히는 할머니가 열심히 믿고 따르시던 종교의 기도 스피커를 들고 사진과 붙어 이동했다.

시골집으로 이동하는 데 역시나 우리 동네는 예뻤다. 드넓은 평야에 온통 노오랗게 익은 벼.

몇십 년을 봐오고 있지만 우리 시골동네만큼 예쁘고 평화로운 '시골'은 본 적이 없다.

며칠 만에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장의차로 모든 가족들이 함께 이동했다.

오빠와 친척동생은 사진과 위패를 들고 기사님의 뒷좌석에 앉았고 나는 그 바로 옆좌석에서 화장을 마친 할마버지의 유골을 오른편에 앉히고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갔다.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할아버지와의 동행이라니!

"나, 할아버지랑 데이트한다!" 엄마아빠에게 자랑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직접 뵌 지도 이틀 전인데 이렇게 옆자리에 데이트하는 영광까지..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괜히 할아버지에게 못 해 드렸던 귀여운 손녀 노릇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본다는 생각에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쓰다듬기도 하고 안아 드려 보기도 하고 미소도 많이 보여드렸다.

중간 웃자는 이야기로 말해본다면, 귀여웠다고 생각됐던 게 있는데 유골에도 안전벨트를 채워주시더라. ㅎㅎ 정말 귀여워서 기억에 남는 모습이다.

아무튼 그렇게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리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동네 분들이 모두 나와서 할머니의 마지막을 인사해 주실 준비를 마치셨다. 그분들을 보면 할머니가 요양원에 잠시 계실 때 몇 주에 한 번 집에 돌아오면 모두 걷기도 불편한 몸을 유모차에 의지한 채 일렬로 한세월을 우리 집으로 걸어오시던 모습이 선하다. 우리 할머니에게 이런 정 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동안 할머니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아왔는지 또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는 안내에 맞춰 걸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백 년은 넘었을 것 같은 익숙한 수호나무를 지나, 유년시절이 가득 담긴 거북바위를 지나, 동네의 중앙청인 우리 할머니 집에 들어선다.

주인이 없는 집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 주인이 없는 티를 낸다.

지난여름 할머니의 감독하게 우리가 심었던 고추밭을 넘어 마당을 보여드리고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할머니의 거실, 방, 부엌, 작은방, 화장실까지 구석구석 우리는 할머니가 정든 집과 인사하실 수 있도록 천천히 시간을 드렸다. 이런 게 처음인 오빠는 꽤나 어른스럽게 잘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마지막으로 비닐하우스를 보여드리고 우리는 마을의 회관으로 갔다. 할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냈던 곳. 마지막으로 회관에도 인사를 마치고 우린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할머니는 동네와 집과 정든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충분히 하셨을까? 정이 많은 할머니기에 걱정이 된다.


그리고 다시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이동을 한다.

납골로 가는 길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옆자리에 앉으실 테니 두 분의 거진 40년 만의 데이트를 미리 마음속으로 알려드리고 수다를 떨며 마지막 할아버지와의 데이트 시간을 온 감각으로 담아본다.


목포 화장터에 도착하니 상상했던 화장터와는 달랐다.

굉장히 깨끗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대리석의 건물에 드는 느낌은 큰 은행 혹은 회사 건물 1층 같았다.

거부감은 전혀 없었고 아무런 향도 없었으며 특별한 감정이 드는 공간은 아니었다.

화장터를 상상했을 때 어둡고 풀숲에 타는 냄새가 나고 갈색의 나무색깔과 가라앉은 우울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전혀 벗어나는 환경이었다.

도착해서 우린 할머니의 성함을 등록하고 (물론 미리 예약은 했다.) 한 시간 정도 대기를 했다.

대기하는 동안 2층에 식당에서 식사도 했다. 커피도 팔고 식당도 있어서 신기했다. 메뉴는 육개장과 설렁탕.

며칠 동안 속세의 음식과 벗어났었기 때문에 매콤한 육개장을 선택했다. 철이 없게도 맛있었다. 화장터에 와서 육개장이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걸 자각하며 인간으로 산다는 건 언제나 철이 없는 건가 보다는 생각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커피를 한잔씩 마셨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게 이런 말인가 보다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우리는 커피도 마신다.


그리고 할머니를 호명하는 전광판이 뜨고 우리는 정말 할머니의 육체를 보내드리러 간다.

추석인데도 어찌나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은지 화장터는 슬픈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떤 가족들은 쓰러질 것처럼 오열을 하시고 어떤 가족들은 처연히 앉아있다. 우리 가족은 조용히 인사를 하고 조용히 슬픔을 나누는 축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돌도 안된 애기와 함께였기 때문에 조금 더 생기가 있을 수 있었다. 아기. 파릇파릇함. 죽음 앞에서 대비되는 새로운 시작의 생기와 생동감은 경이롭다. 죽음의 슬픔보다 탄생의 기쁨이 더 강한 힘을 가지는 걸 느꼈다. 왜 결혼을 하면 아기를 낳는지도 새로운 시선에서 인정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주 작은 방에 책장 같은 갈색 선반이 놓여 있고 중간만 한 유리창이 화장터 안을 비춘다. 그 유리문은 잠시 열렸다 할머니가 들어가시면 바로 가려진다. 직업의 이름을 모르겠지만 담당하시는 분이 나와서 할머니의 육체가 담긴 우리가 할머니를 모셔드린 관을 보여주고 인사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할머니는 바로 뒤 어딘가로 들어가신다. 들어가시는 공간이 아마 화장터일 텐데 그 공간이 명확이 어떤 공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적나라한 상상 속 공간이었다면 조금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가 정의 내리지 못할 공간이라 다행이었다. 보여주는 시간은 1분 남짓일까 아주 잠깐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와 진짜 마지막 인사를 했다.




8화. 마지막 이야기. 영원한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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