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큰슬픔을 나누면 잔슬픔이 돼

by 옹달샘

깨달은 것 :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이유 ‘가족’ 그리고 '친구'




1. 가족 이야기


나에겐 고모 둘과 고모부 둘, 작은엄마와 작은 아빠가 계시다. 그리고 그들 사이 태어난 나의 친척들이 나와 오빠를 포함해 아홉이다. 거기에 결혼을 한 친척들까지 고려하면 형부 셋에 언니가 추가된다. 고로 내 나잇대의 또래 가족이 열셋이나 된다는 것이다. 어른들까지 더하면 열아홉이 된다.


명절마다 이 인원수가 모여 웃고 떠들었으니 얼마나 시골집이 북적북적했을지 기억이 흐뭇하다.


친척이 많아서 그리고 친해서 우린 늘 좋았다.

전국 각지에 떨어져 살지만 연말이면 또 그 지역에 놀러 가면 모여서 만나 놀기도 하고 밤새 떠들기도 하며 그렇게 지낸다. 내 인생에 만나온 사람 중 가장 다정한 사람도 우리 친척들 사이에 여럿이 된다. 내 나이에 내 밥숟가락 위에 생선을 가시 발라 올려주는 그런 자연스러운 따스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우리 가족이다.

심지어 형부들도 모두 엉덩이가 가벼워 처제인 내가 일만 조금 하려 들면 곧장 일어나 나를 멈춰 세우고 다정한 말들과 행동으로 아껴주신다.

모두 좋은 사람들인 데다 우린 항상 서로를 아낀다.


항상 우리 가족 구성원을 좋아했지만 이번 장례에선 더 깊은 감정을 느꼈다.

장례가 시작되기 전 식장을 청소하고 사람들이 오기 전 그 고요함과 약간은 차갑게 부는 바람이 마치 나를 한겨울 고속조로 한가운데에 세우는 기분이었다. 그때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이 우리 가족만으로 꽉 채워진 장례식장과 서로를 안아주고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 우리 할머니를 알고 모두가 할머니를 향한 사랑만으로 생각이 뭉친 사람들.

그때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되는 기분을 강하게 느꼈다. 존재 자체로 힘이 되고 많으니 많을수록 더 좋았다. 부담스럽게 한 사람과 공유하지 않아도 됐고 과거와 현재를 공유하고 있는 사이기에 별다른 이야기 없이도 존재만으로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자녀가 적은 사람들을 그 고통을 혼자 감내하기에 얼마나 벅찰지, 답답할지 가늠이 안 갔다.

처음으로 자녀가 많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의지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존재가 우리의 절망적 순간을 이겨내게 해 줄 테니까.




2. 친구 이야기


가장 깊은 배움을 준 것은 뜻밖에도 '친구'였다.


지인의 경사와 조사 중 어떤 것을 더 신경을 써줘야 하냐 묻는다면 단연 조사라고 말한다.

기쁜 일은 스스로 도취되는 경향이 있어서 주변이 부족하더라도 홀로 충분히 누릴 수 있지만,

슬플 땐 사소한 순간, 5분, 1분 같은 찰나 속에서 땅 깊숙한 멘틀까지 닿을 정도의 어둠에 도달하곤 한다.

고독을 찾으면서 동시에 의지할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해지는 때이다.

그런 생각을 품어왔지만 이번에 든 생각이, '과연 나는 지금까지 가치관에 맞게 행동했을까?'

큰 생각의 전환점을 주고 반성하게 만든 건 내 주위 훌륭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추석 한가운데 발생했던 일인지라 명절 인사차 연락이 온 몇몇 친구들이 상황을 알게 되었다.

사실 조부모 상은 친구들과는 일절-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형제는 당연히 함께할 슬픔이지만 조부모까지 가게된다면 서로가 부담스러울 것 같기 떄문이었다. (내가 친인척이 많은 탓에 든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연히 알게 되면 위로의 마디를 나누고 상황이 마무리된 후 도움을 주려 애쓰겠지만, 당장 닥친 상황 속에서 행동으로서 무언가를 할 이유는 찾지 못해 왔기 때문에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도 그냥 당시의 당황스러운 일상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나의 예상을 깬 지인들의 모습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다들 걱정과 위로의 진심 어린 안부를 건네더니 전화가 오고, 부재중이 오고, 심지어 취준생인 친구까지 부조를 하고, 내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밤 10시에 멀리서 나와 이야기도 들어주고 용기도 북돋아준 친구들, 또 여행을 가려고 KTX에 발을 딛기 직전이었던 친구는 다시 돌아갈까 고민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 그대로 머리가 '띵-'했다.

내가 지금까지 너무 속물의 인생을 살았던가?

정 없는 마음으로 살아온 건 아닐까? 공감능력이 부족하게 살아온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 일에 너무 스스로를 채찍질만 하고 있었던 건지.

주변에서 보내주는 예상치 못한 따스함이 놀라울 정도로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었다.


나누려고 했던 슬픔이 아니었는데!

나눌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슬픔이었는데! 나눠야 하는지도 모르는 슬픔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주변에서 내 슬픔을 온몸으로 나눠가져주었다. 여럿이 모여 친구의 슬픔을 분해해주고 있었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 슬픔을 나누면 같은 크기의 슬픔이 두 개가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슬픔을 나누면 좋을 것은 하나 없다고. 듣는 사람은 지치고 부담스러우며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만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고민이나 감정을 터놓지 않으려 노력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슬픈 상황의 당사자이더라도 나 역시 슬픔을 밖으로 꺼내면 그것이 해소가 되지 않고 내 슬픔이 복제되어 두 개가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슬픈데 왜 사람에게 의지하는 건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건 나뿐 나는 오만한 생각. 인생은 혼자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지금까지 27년을 헛살아온 걸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슬픔이 분해가 되었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사람들 덕에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이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나누니 감당할 수 있는 슬픔 여러 개가 되었다.

슬픔은 둘이 아닌 반이 되었고, 터놓을수록 그의 반 또 반 계속 쪼개져갔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난 그 감정을 실제로 느끼고 있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또다시 하나의 알을 깬 나였다.

나는 지금까지 혼자가 아니었다. 사실 존재만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면 사실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 주변에서 온몸으로 키워준 사랑 속에서 성장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거야.

띵-.

이제야 그 사실을 알아버려 부끄러웠지만 이제서라도 알게 되어 행복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는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할머니가 떠났을 때 내가 슬픈 이유도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고 존재만으로 행복을 주는 내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그냥 난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팠던 거야.

그리고 내가 슬픈 이유를 더 심연까지 파고든다면

나의 존재만으로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에 슬프지 않을까?

세상에서 나를 사회에서 알아가는 사람들이 내 존재만으로 날 사랑해 줄 수는 없다.

나의 존재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나의 핏줄뿐이겠지.

그 몇 없는 귀한 한 사람이 또 떠난 것이다.

사실 더 외로워질 내가 두려워서 슬픈 건 아니었을까? 이러다가 부모님도 떠나면 나중에 나는 정말 고아가 될까 봐, 나의 존재를 어여뻐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에 살게 될까 봐 내 걱정에 더 슬펐던 건 아니었을까?


전혀 아니라고는 반박하지 못할 것 같다.


정말 정말 부끄러운 심연의 질문이었지만

꼭 한번 주제로 다루고 싶었다.


결론은

실제로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실은 무의식에서 내가 그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 결국 사랑을 많이 할수록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슬픔은 나누면 분해된다는 것.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을 지니게 된다는 귀한 배움을 터득하게 되었다.



일할 땐 빠른 문제 해결을 하자고 질문, 중간보고로 협업의 중요성을 그렇게 실천하면서 이 팀플은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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