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뒤에야 피어나는 것들
「열여섯 번째 정오」
그날은 아무 일도 없던 날이었다.
비가 오지도 않았고, 해가 지독하게 찬란하지도 않았다.
나는 아주 평범한 길을 걷고 있었고,
그 길에는 바람도 없었고, 이름 없는 들꽃도 피어 있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내게는 잔인했다.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세계의 모든 고요가 비명처럼 느껴졌으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지만 시간은 지나가도, 그 사람의 빈자리는 거기 그대로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그 빈자리를 안고 일어났다.
이불을 개고, 물을 끓이고, 출근을 하고,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의 모든 장면에
그 사람의 부재가, 투명한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어느 날, 정류장에서 작은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삼촌, 손에 흙 묻었어요.”
나는 흠칫 놀라 손을 내려다봤다.
화분을 들고 나오는 길이었고,
아이의 말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정말, 손이 흙투성이였다.
아이는 그걸 바라보다가 내 손을 톡, 쳤다.
“흙은 꽃 나게 해요.”
나는 무언가가 안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오래된 얼음장이 녹는 소리였다.
아이는 그렇게 사라졌고,
나는 흙이 묻은 손으로 화분을 가슴에 꼭 안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그 아이를 생각한다.
정말 흙은, 꽃을 나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품고 있는 이 상실도, 언젠가는 어떤 따스함을 피워낼 수 있을까.
어느 날, 꿈을 꿨다.
그 사람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찻잔에는 김이 올라오고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깨어나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울었다.
그 울음은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이, 아주 선명하고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의 상실을 품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어떤 이는 주저앉은 자세로, 어떤 이는 침묵 속에서.
하지만 때때로, 낯선 아이의 말 한마디, 지나가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혹은 아무 일도 없던 날의 햇살 같은 것이
우리의 균열에 스며들어, 조용히 빛을 피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더 이상 그 사람을 잊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을 품은 채, 아주 작고 천천히,
내 안의 흙 위에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