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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조용한 선물

상처는 언젠가, 따뜻함이 된다

by 온기

「열일곱 번째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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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사람을 떠나보낸 날, 나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투명한 유리가 산산이 부서질 때 나는 듯한,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파편의 소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스며 나왔다.
그때는 몰랐다.
무너지는 소리와 피어나는 소리가 어쩌면 아주 닮아 있다는 걸.


헤어짐은 늘 느닷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전부터 불안하게 울리던 징조였으면서도,
막상 닥쳐오면 한순간에 모든 색이 사라졌다.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떠났고, 나는 그 사람의 빈자리를 끌어안은 채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모든 것을 잃는 방식으로 세상을 느꼈다.
햇살도, 비도, 바람도.
그 사람 없는 풍경은 너무 선명해서 아팠다.
낯익은 골목을 걷다 멈추고, 우산 속에서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았다.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졌고, 나라는 사람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동네 빵집.
창가 자리에 앉아 식지 않은 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과 나란히 앉았던 기억이, 커피 향에 실려 불쑥 떠올랐다.
한 모금 삼킬 때마다, 마음 어딘가가 아릿하게 젖었다.
울고 싶었고,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문득 창밖을 지나던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작고 따뜻한 눈빛이었다.
그 순간, 아주 작게
무언가가 피어났다.


그건 아주 조용한 따스함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오래된 라디오에서 흐르던 노래,
빨래 너머로 느껴지던 햇살 냄새.
삶은, 의외로 부서진 자리에서부터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픔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시 태어나게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간이 오래 흐른 뒤,
누군가 내게 물었다.
“그때 정말 많이 아팠지? 그 사람, 많이 사랑했나 봐.”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마음속 어딘가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응, 정말 아팠어. 근데 그 아픔 덕분에 내가 나를 더 잘 알게 됐어.
그리고... 더 따뜻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사람은 모두 각자의 균열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 틈에 조용히 주저앉고,
누군가는 그 틈에서 조심스레 꽃을 피운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픔은 나에게 가장 조용한 선물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한 생명처럼,
나는 그 이별 덕분에 조금 더 다정해졌다.
타인의 상처를 흘끗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고,
말없이 울고 있는 사람 곁에 머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은 결국
누군가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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