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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원 Jul 02. 2021

하동 일기 火 수묵화 풍경

나를 찾아가는 여행 에세이 5

아주머니댁의 지리산 풍경

 왼쪽 무릎을 절뚝거리는 나를 걱정하시며 숙소까지 데려다 주시던 아주머니는 '우리집에 들렀다 갈래?' 물어 보신다. 그래서 도착한 아주머니 댁. 묵향이 묻어나는 연한 수묵화같은 멋진 지리산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텃밭에는 상추와 온갖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서울서 일하는 자녀분들에게 보내줄 나물도 쨍쨍한 햇볕에 잘 마르고 있다. 텃밭 앞에 마련된 파티오에 땀을 닦으며 앉아있으니 아저씨께서 비비빅 아이스바를 가져다주신다.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먹는 추억의 비비빅은 어찌나 맛있는지! 그래서 다음날 팥빙수가 그렇게 먹고 싶었나보다. 상추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갑자기 저녁을 먹고 가라신다. 그러더니 아저씨께 얼른 삼겹살을 사오라고 하신다. '앗, 일부러 사오시지 않아도 돼요! 상추면 충분한데..'라고 했더니, '부담갖지마~ 그래도 조금만 먹어~' 하고 서둘러 길을 떠나신다. 그 동안 아주머니와 함께 텃밭에서 상추를 깨끗이 씻고 구워먹을 마늘도 다듬었다. 전날 '무량원 식당'에 갔는데 매실 장아찌가 너무 맛있었다고 했더니, 집에서 손수 담그신 매실 장아찌와 두릅, 양파 장아찌까지 꺼내오셨다. 매실 장아찌는 아삭아삭 상큼하고 여린 두릅으로 만든 장아찌도 생각 외로 너무 맛있다!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와 잊을 수 없는 장아찌

 아저씨는 원래 휴대폰 만드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삼별? L쥐? 다 아니라고 하셔서 팬Tech, 노키A, 모土롤라 까지 말했더니 드디어 정답을 맞췄다. 그런데 정작 카카오톡 앱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아저씨. 디지털디톡스를 실천하고 계신다. 그래서 나도 도전해볼까 했지만, 역시 어렵다. 여백이 많은  휴대폰 배경화면의 가장 깊은 바다를 헤엄치다 잔잔한 뭍으로 걸어나오는 아저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비로소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원래는 시장 골목의 감성 풍경을 담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으셨다는 아저씨. 그러나 생업으로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필름 카메라와 필름을 단호히 모두 버리셨다는 아저씨, 그러면서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신다. '이런 구름 흔하지 않아~'라고 하시는 아저씨의 배경화면은 하늘로 가는 계단같은 층층 구름이다. 아직 아저씨의 감성은 그 때 그대로이다.

 

어여쁜 민들레같은 아주머니와 아직도 참이슬같은 감성을 유지하시는 아저씨

 맛있는 삼겹살과 김치를 구워주시는 아주머니. 양파 장아찌랑 같이 먹으면 맛있다며 손수 장아찌에 고기를 올려주신다. 한참을 두 분이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 여쭤보고 있는데, 아주머니 폰으로 따님한테 전화가 왔다. 우리집에 손님이 왔다며 자랑하시는 아주머니. 방 안으로 들어가셔서 한참을 통화하고 나온 아주머니의 미소는 환하고 눈부신 햇살같다. 무뚝뚝한 우리 엄마도 마음 속으로는 저렇게 웃었을까.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아주머니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느냐며 잊지 못할 명언을 남기셨다. "자식이 물에 빠지면 생각 않고 달려들면 어머니고, 어떻게 구할까 생각하는 건 아버지야." 옆에서 "아니, 합리적으로 생각을 해야지."라고 응수하시는 아저씨. 하하하. 나도 이렇게 오손도손 나이들고 싶다.

  곧 이어 수박을 썰어 가져오시는 아주머니. 어릴 적 생각이 참 많이 났다.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수박을 먹고 대나무 돗자리 위에서 온 가족이 연속극을 보다 잠들었던 여름밤. 행복했던 어린시절의 추억. 그 기억만큼이나 수박이 참 달았다.

  아주머니는 "또 하동 오면 연락해. 우리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신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며 서울에 있는 자식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울컥하다. 자식한테 모두 다 주고 싶다던 아주머니. 내 아픈 무릎에 파스를 뿌려 주시던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언제나 그 자리에 민들레처럼 계실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큰 사랑을 받고 갑니다. 감사해요. 아주머니, 아저씨.

 

 

 아주머니께서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숙소까지 차를 태워주셨다. 드릴 게 없어서 아침에 한 접시 따놓은 앵두를 드렸는데, 한 개만 맛보신다. 더 드시라고 말씀드리자 "다음에 오는 사람도 먹고, 새들도 먹어야지."라고 하신다. 이 말씀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부터는 눈으로만 앵두를 맛보았다. 아주머니가 인사를 하려고 차창을 내리자 나도 모르게 아주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숙소 옆 대나무숲

'솨아아아'

싱그러운 바람이 대나무숲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머니가 남긴 여운은 오래도록 내 마음의 숲에 남아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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