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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원 Jul 07. 2021

하동 일기 水 내 마음에 부는 바람

나를 찾아가는 여행 에세이 6

"저기...... 소 좀 그려줘."
"뭐라고?"  
"소 한 마리만 그려줘."  
"부탁이야, 소 한 마리만 그려줘......"
어린왕자의 부탁으로 소를 그렸습니다.
"안돼. 이 소는 병들었잖아. 다른 걸 그려줘."
"잘 봐, 이건 내가 말한 소가 아니야. 수소네. 뿔이 있잖아."
"이 소는 너무 늙었어. 나는 오래오래 함께 살 소를 원해."
그때쯤 내 인내심이 바닥났다. (...)
그래서 슥슥 이렇게 그려서 던져주며 말했다.
외양간에 있는 소가 보인다면 당신은 어린 왕자.  "소 한 마리만 그려줄 수 있나요?"
"이건 소가 사는 상자야. 네가 원하는 소는 그 안에 있어."
꼬마 재판관의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고 나는 무척 놀랐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소야! (...)"
나와 어린 왕자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2018)

  

  외양간의 소를 보자 갑자기 울컥해지는 건 왜일까. 좁은 외양간 구유 위에 올라간 소는 갑자기 음메에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너는 왜 여기 있을까.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네가 가엾어서일까. 그런 내 맘을 알기라도 하듯 커다란 머리를 맞대놓은 울타리 사이로 힘겹게 들이밀어 고개를 겨우 밖으로 내놓고 한번 더 크게 울어버린다.

  한참을 소의 까맣고 큰 눈망울을 보며 서 있었다.



순결하구나. 들꽃같구나. 나는 느낄 수 있어, 너 마음이 슬픔에 가득 차서 깨끗이 씻겨져 있는 것을.




  소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채, 천지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영문도 모른채 근대화, 식민화, 6.25 전쟁을 까막눈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소설『토지』의 농민들을 떠오르게 했다. 그저 이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박경리와의 대화", 『박경리와 이청준』1982


우리의 농부에게 이처럼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었다는 얘기를 저는『토지』에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용이라든지 영팔이 같은 인물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부여했던 것입니다. 비록 농부지만 범접할 수 없는 자의식. 이런 것을 그네들한테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보리죽을 먹어도 인간으로서 비천한 것을 못한다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전쟁이 났다는 소식에 피난길에 오르면서 다시 돌아오리라는 생각에 간단히 옷가지만 챙겨서 대문을 곱게 잠그고 집을 나섰다는 할머니는 다신 개성에 있는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밀려 밀려 거제수용소로 갔지만 우뭇가사리를 긁어먹고 솔방울을 끓여먹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암, 이렇게 살 수는 없지 말구.."하고 핏덩이같은 어린 자식 둘을 데리고 거제수용소를 빠져나가 부산까지 갔다. 팔 것은 없지만 길가에 전을 부려놓고 소식이나 들을까 해 하루종일 앉아있었단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남편의 친구와 마주치게 되었다.

  "제수씨, 그이는 지금 수원 학교에서 선생하고 있으니 우편을 보내십시오."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나갔다가 눈밭에서 수없이 포탄이 떨어질 때, 산짐승과 가축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더 끔찍했다던 할아버지는 땅구덩이 속에서 나와보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다 죽어있었다고 한다. 부대로 복귀하라는 명령도 들리지 않았고 그 길로 기차 지붕에 매달려 무조건 남쪽으로 남쪽으로 가다보니 만주에서 어느덧 제주도까지 이르렀다. 먹을 것이 없어 빈 집에 들어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고구마 뿌리 세 쪽을 훔쳐 먹었다.

  할아버지는 소식을 듣기 위해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천주교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구했지만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잘 곳도 없었다. 저녁에 길가의 포목점이 문을 닫으면 비어있는 평상 위에서 쪽잠을 잤다. 그런데 부인이 어린 자식 둘을 데리고 한밤중에 그 포목점 앞을 물어물어 찾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생애 처음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그 길로 교장을 찾아가 "나는 월급으로 안되니, 일급을 주시요." 그리고 사정이 이렇게 됐으니 급전을 꾸어달라고 했다. 딱한 사정을 듣고 교장이 그 학교 학생의 집에 남는 뒷간방이 있다고 해서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살림살이라곤 군용담요 하나였다. 그날밤 할머니는 아이들과 그 담요를 쓰고 오들오들 떨었다. 다음날, 할아버지가 꾸어온 급전으로 수저와 그릇, 냄비 등을 샀다.  

 그렇게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밀려오고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어찌나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지 동네 아이들을 모아 이야기를 들려주면 마을 사람들이 고마워하며 쌀이나 고구마같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마을 일손 돕기, 중매서기 등 할머니는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뭐든지 했고 그 결과 2년 만에 집을 마련했다. 할머니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는 평생 혼자 사셨다. 어린 시절 나의 눈에 자줏빛 저고리에 은회색 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누워서 Jeopardy show를 시청하시던 할아버지는 참 느긋하고 태평스러워 보였다.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잊고 싶은 기억이었을까. 할아버지는 자기 고통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 시절 힘들었다는 풍문은 많이 들었지만 학교에서도 근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정작 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자랐으며 살아있는 역사를 옆에 두고 을지문덕같은 죽은 역사를 읽었던 것이다. 옛날이야기와 구전문화가 사라지고 가족 간 대화가 사라진다는 건 한 사람의 살아있는 역사가 기록되지 않는 것이다. 어린이, 청소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살아있는 옛날이야기 대신 위인전과 실록같은 강자가 기록한 역사를 읽으며 자란다는 사실이 왠지 서글프다. 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괴로웠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얼마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고 는가.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다면 한 사람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어린아이처럼 밤을 새워 이야기를 들을텐데...


 

"내가 생각하는 토지는 농민만을 연관시킨 건 아닙니다. 소유의 의미와 생존의 뜻도 포함돼요. 원시적인 인간의 내면과, 특히 농민들이 갖는 계층을 초월한 인간의 존엄성 같은 걸 천착해보려는 겁니다."

 


           동아일보 1979. 11. 22

          대하소설『토지』 3부까지 끝낸 박경리씨



  이 바람은 어디서 온 것일까. 평사리들판 어린 논의 푸른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이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내면의 부르짖음과 어떻게든 살아야만 한다는 도끼로 머리를 맞은 듯한 각성.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존엄성이구나. 저 순결하고 들꽃같은 소의 까만 눈망울에도 생명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깃들어 있어 그 구슬픈 울음에 목이 메인다.

  생명이 깃들어 있는 바람. 세대를 건너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나를 이어주는 바람.

  내 마음의 창에 바람이 분다.


그리운 할머니와 할아버지같은 부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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