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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29. 2023

이별 노래가 모두 내 얘기 같을 때(에피소드_이무진)

노래방에서 흥얼거리다 울 노래 하나 추가되네

나는 말야/버릇이 하나/있어 그건 매일 잠에 들 시간마다/잘 모아둔 기억 조각들 중/잡히는 걸 집은 후/혼자 조용히 꼬꼬무/이걸 난/궁상이란/이름으로 지었어 고민 고민하다가/아무튼 뭐 오늘은 하필이면/너가 스쳐버려서/우리였을 때로/우리 정말 좋았던 그때로

우리의 에피소드가/찬란하게 막을 연다/배경은 너의 집 앞/첫 데이트가 끝난/둘만의 에피소드가/참 예쁜 얘기로 시작/자작자작 조심스런 대화/그새 늦은 시간/굿바이/좋은 뜻일 뿐인 굿바이/With a happy smile

이게 이 스토리의 서막/눈 내리던 그 밤/겨울 향이 배어서/더 눈부신/우리의 에피소드다/매일이 마지막인 듯이/함께라면 어디든지/사랑이란 걸 끝도 없이/주고받고 나눴어 그치?/서로만 있음 마음이/시릴 날이 없던 우리/넌 오아시스 내겐 마치/근데 있잖아/별 소용없다?/생각만 해도 행복한 순간들은 말야/모른 척해도 결국엔 이건/끝을 봤던 에피소드/점점 점점 점점

우리의 에피소드가/결말에 가까워져가/곧 새드 엔딩이다/크레딧엔 너와 나/둘만의 에피소드가/참 쓸쓸한 끝을 맞아/두 주인공의 서글픈 마지막/결국 건넨 인사/굿바이/너무 아픈 이별의 굿바이/눈물이 뺨을 스쳐/도착한 입가엔 미소/애써 웃고 있어/우린 서로를 보며/첨 같던 미소로 안녕/웃으며 안녕

눈 뜨면 에필로그다/침대에 기대어 혼자/펑펑 울고 있는 나/이 궁상 밖의 난/둘만의 에피소드완/전혀 다른 모습 난 그날/돌아서지 말았어야 했다/널 안았어야 했다/그 밤/눈꽃이 널 덮은 그 밤의/향을 잊음과/함께 잃었던 따스함/춥게 눈을 뜬다/겨울밤이 되어서/맞이한 향이/우리의 에피소드다

-이무진 <에피소드>     



시와 노래는 본래 한 가지므로, 가끔 뇌리에 박히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바로 그랬다. 주로 오롯이 엄마로서의 ‘그럼에도 사랑’을 다루려고 연재하는 중이지만은, 가끔은 쑥쑥 자라는 아이에 반비례해, 남겨진 엄마의 슬픔도 다뤄봐야겠다.     


아직 사춘기에 도달한 것도 아니고, 성년기에 도달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은 아이의 세상에 내가 전부였던 시절이 걷히고 있는 요즘의 마음을 저 노래처럼 대변해주는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별은 아닐지언정, 지나쳐가는 아이의 유년기 시절을 나만큼 열렬하게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아이는 어려서부터 하나를 좋아하면, 그것에 파고드는 성정인 것 같았다. 다행히 혈육 쪽에 이런 부류의 사람인, 내 엄마 아들이 있었기에,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을 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나보다는 그의 관심사에 관련된 것들을 찾고,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더 심화 발전시켜주면 된다. 알고 있는 만큼 쉬웠다.     

기차 보이는 곳만 찾아다니던 아이의 아가 시절

아이는 기차를 정말로, 정말로 좋아했다. 기차를 좋아하다 못해 개그콘서트의 수다맨처럼 지하철 노선도를 줄줄 외우곤 했다. 차고지나 환승역, 종점을 찾아다니곤 했다. 우리가 아이에게 지하철역 퀴즈를 내기도 했지만, 아이가 줄줄 내뱉는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의 수준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금세 출제자는 뒤바뀌었고, 아이는 항상 엄마와 아빠에게 퀴즈를 내고나서 그 날의 정답자에게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왜 힘든지 알 수가 없었다. 지하철이나 기차에서는 큰소리로 통화하는 어른들보다 오히려 조용했고 순했다. 얌전히 있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면 쉽게 이해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이고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 공간이니, 공간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기만 하면 그 뒤는 순리대로였다. 

(물론 그럼에도 눈치를 보긴 했지만_전 화 참조)

생각보다 지하철이나 기차는 화장실도 가까워서 편했고, 공간을 걷고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지 아이는 업어달라 안아달라 소리도 쉽게 하지 않았다. 

무궁화호, ITX새마을호, 새마을호, KTX, KTX산천, KTX이음, 누리로, 바다열차, RDC동차, 통근열차, DMZ열차, a트레인, v트레인, 서해금빛열차, 정선아우라지열차, 산타열차, 해랑. 

아이와 공부했던 기차 지식은 안 쉬고도 외울 수 있다. 이 중에 타보지 않은 열차는 정말 세 손가락 안에 꼽는다.     


아이의 관심은 확장되어 버스로도, 자동차로도 뻗어나갔다. 시내버스, 시외버스, 광역버스, 고속버스의 차이점을 궁금해하기 시작한 아이는 일반버스와 우등버스는 뭐가 다른지, 프리미엄 버스는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갔다. 또 스포츠카와 승용차, 승합차 등의 차이를 알아가면서 점차 세계는 확장되곤 했다.      


그래도 아이의 관심사는 탈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물어보면 부모가 너무도 사실적으로 답변해줘서일까, 현물과 형이하학적인 것에 쏠려있는 아이의 관심사에 몬테소리 교육에 가서 상담을 받아본 적도 있었다.      

어머니, 기다리세요. 이렇게 관심사가 확장되는 거에요.     



그리고나서도 한 3년은 계속 이어졌다. 언젠가 확장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이제는 나도 기차나 지하철 전문가가 되어 루트를 최적화하는 데 빠삭해졌다. 또 은근히 기차들이 예뻐보이기도 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가 아이를 통해서 넓어지는 기분은 굉장히 수고롭고도 가치있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엄마와 둘이 있어도 행복해했다. 아빠보다 엄마는 더 꼼꼼했고, 아이의 멀리가고자 하는 니즈를 최적화된 루트로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어딘가로 가고자 했을 때 이미 거기에 있는 것처럼 움직였고, 체력적으로도 지치지 않았기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다. 또한 관심사에 적합한 책을 끌어다 읽어주기를 몇십번, 서점에서 기차 관련된 책을 찾으면 이미 있거나, 읽었던 책이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역시나 아이가 자라면서 점차 세계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지도를 보는 법을 익혔으며,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목적지 없이 어디론가 향하는 즐거움보다 목적이 있는 승부내기를 더 즐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 때의 아이에게는 그 자체가 목적이었겠지만.) 그리고 엄마보다 더 오래 놀 수 있는 아빠와의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구파발역 다음이 무슨 역인지 헷갈려 한다. 5호선과 9호선의 환승역이 몇 개였는지 알지 못한다. G트레인 타러갈래? 물어보면 음, 조금 시끄러워서 싫은데. 한다. 기차가 좋아 축구가 좋아? 하면 축구...라고 수줍게 대답한다.


바다열차와 RDC통근열차의 마지막 운행 소식을 들었다. 무궁화호마저 조만간 사라질 것이고, ITX 마음으로 대체될 것이다. 노후화된 기차들은 하나하나 바뀔 것이고, 이제 수도권에는 GTX가 다니며, 지하철역은 현재와는 달라질 것이다.


아이와 차곡차곡 쌓여있는 에피소드는 나만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내가 끈질기게 기억하고, 눈에 담아둔다고 해도 언젠가는 나조차도 현실의 버거움과 현재의 관심사에 밀려 너, 그거 아니? 너 기차 엄청 좋아했었다, 하게 되겠지.


아이는 언젠가 세상에 하나뿐인 달을 바라보는 별빛같은 눈을 거두고 나를 보면서 


아 엄마, 그게 무슨 상관인데. 엄마가 해준 게 뭐가 있는데? 

하게 될테다. 아마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만남엔 헤어짐이 있고, 모든 시작엔 끝이 있다. 항상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면 생각되는 건 역시 그 때 좀 더 조바심내지 말고, 그 과정을 즐길걸.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와 아이와의 사진과 동영상을 그 때 그 때 정리해두지 않은 걸 후회한다. 자꾸만 쌓이기 때문이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아이와 나날이 새로운 이야기들 때문에 소중하고 아련한 기억들은 점차 켜켜이 쌓인다. 그러면서도 지금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항상 핸드폰 기기의 용량을 점검하다 쌓여서 잊혀질뻔한 에피소드를 마주한다.      



이제 그 어리디 어린 아가 시절의 아이를 만져볼 수는 없지만, 다행히 나는 어느새 길쭉 길어지고, 관심도 넓어지고, 감정표현도 훨씬 능숙해진 내 아이와 아직도 같이 잠드므로, 아이의 다리를 주물러줄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이 시간마저 지나갈 것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다 시큰해진다. 자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아이가 잠깐 깬다.     


아가였던 시절에는 소스라치며 놀랐을 테지만, 이제는 이내 곧 잠드는 걸 알고 있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는다. 

아이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엄마, 하고 부른다. 이조차도 놀라지 않는다. 아가시절의 아이라면 잠이 깨고있다는 신호일테지만, 지금의 아이라면 엄마가 옆에 있는 걸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뿐이다. 

"엄마가 너 자고 있을 때 이렇게 두 번씩, 세 번씩 머리 쓰다듬는 거 알고 있었어?"

하고 나지막히 물었다. 

아이는 깨버린 건지 덜 깬 건지 


몰랐어


하고는 이내 쌕쌕 긴 숨소리로 다시 눈을 감았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순간.


이 순간 나는 온전히 쓸쓸하다. 나만이 기억하는 순간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외로움은 여러 번 찾아오지만 이런 밤에 느끼는 쓸쓸함만큼, 요즘의 나를 외롭게 하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아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천천히 커, 제발 좀 천천히 커 하고 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르페우스만큼의 담대함도, 바리데기의 절실함도 커가는 아이의 시간을 붙잡고 싶은 엄마에게는 다 부질없는 소리다. 나는 아이가 크면서 점점 행복함이 쌓이고, 꼭 그 행복함을 누렸던 만큼 다시 비어간다.


꼭 모래시계처럼.


하지만 너로 느꼈던 충만함을 하루하루 다른 것으로 대체해가는 지금, 남겨진 엄마도 언제까지나 냉소적인 소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엄마로서 아무쪼록 이제 부쩍 커봐야겠다, 고 다짐하며 이무진의 노래를 한 번 더 듣는다. 




p.s. 가만, 근데 이무진 엄마는 참 행복하겠네. 

아들이 이렇게나 성공하고 말야. 우리 아이도 이렇게 되면 좋겠건만,


하고 아이의 발을 어루만지는 나의 에피소드도 오늘 하나 더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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