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는게 재미있다, 라는 표현을 여전히 함부로 쓸 수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요즘 일 하는게 재미있다.
잠깐의 세상 구경을 좀 하고
거의 5년만에 엔지니어 조직으로 돌아왔다.
누가 보기에는 쟤 거기서 적응 못했네, 하는 후퇴일 수도 있고
누가 보기에는 쟤 지 편한대로 사네, 하는 기회주의일 수도 있고
뭐 여러 가지 시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 감안하고 선택한 길인데,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일은 아직까지 없고 더군다나 오랜만에 이 일을 하니까 재미있다.
나름 메타인지가 뒤늦게나마 된 건지도 모른다.
‘스탭‘직군으로 회사의 코어에 가까워지면서, 나쁘게 말하면 정치질, 온건하고 정상적인 표현이라면 사교 혹은 평판 관리에 나는 거의 낙제 수준임을 깨달았고.
더불어서 숫자 감각도… 위계 질서에 순종함에도…
ㅡ내가 뭐 상사 앞에서 꼬라지를 부렸다
그런 일을 벌일 만한 성격은 절대로 못 되고, 까놓고 말하자면 저녁 먹으러 따라가서 술 한잔 하고 또 돌아와서 또 일하고 다같이 밤 열두시에 퇴근하는데
아웃풋은 종이 두세 장… 인 날들이 많았고.
그에 따라 나는 이 일을 도대체 ”왜“하는지 목적의식과 소명의식을 몇년째 갖지 못한 게 제일 치명타였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일하는 조직은 육아에 불리하다.
거꾸로
집요하게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 파고드는 일, 그걸 혼자서 입 닥치고 해야 하는 일,
그리고 그래야 함에 불만 없음
그리고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아웃풋”이 명확한 일
ㅡ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치고 이런 쪽 영역에는 조금 소질이 있는 편이었구나를 깨달았나 보다.
아, 나는 이 일을 왜 하는지 깨닫지 못하면 일을 못하더라.
그런 날들을 겪기 전까지
일이 재미있다는 건 참 건방진 표현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 재미있었다,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일이 재미있다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