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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Aug 27.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4 감정과 행동

기억에 남는 순간들

행동을 이끄는 감정

  나는 생도생활과 장교생활을 통해 사람을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권위와 지식이 아닌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머리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며, 행동의 동기가 내부 또는 외부 중 어디에서 비롯되느냐에 따라 이후 그 행동을 자의적으로 지속하는지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군생활을 하다 보면 군대는 상급자의 명령과 하급자의 복종이 당연시되는 조직이다 보니 이따금씩 상급자로부터 다소 강제적인 방식으로 행동을 강요하는 상황을 겪는 경우가 있다. 군대에서 하급자는 상관의 명령에 따르지만 하급자가 주어진 일을 왜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 그 행동이 장기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행동을 강요하는 주체가 사라지면 하급자는 행동하지 않는다. 행동의 원인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 자체의 타고난 천성과 성격을 바꾸기는 쉽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각 개인이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교육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직장의 경우 행동을 요구하면 따지지 않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을 원하지만, 개인의 주관과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시킨 그대로 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개개인의 생각과 가치판단은 다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행동 요구는 오히려 반발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며,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감정이다.


  행동은 감정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자동적으로 개인의 이타심을 자극하며 상대방을 따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감정은 곧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런 애정과 존경은 업무적인 모습을 통한 경외심으로부터 발생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관계가 구축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좋아할 수 없으면 존경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래서 업무적 관계는 감정적 관계와 구분되는 개념이 아닌 감정적 토대 위에 쌓이는 2차적인 관계가 된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

  나는 강감찬함을 타면서 좋은 선배들의 뒷모습과 동료들의 일하는 모습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강감찬함은 규모가 크고 선진화된 함정인 만큼 함정 내 조직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대원들이 있었다. 나는 사회초년생으로서 아는 것이 없고 주어진 직책과 권한만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강감찬함의 훌륭한 시스템과 주변 선배들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나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노력해준 선배들과 잘 따라준 대원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함정을 타고 출동을 나가며 대원들과 공유했던 추억들과 나를 잘 따라주던 동생 같은 동료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강감찬함에서 선배가 찍어준 사진, 늠름하다.


  함정을 타고 출동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심장이 떨리는 몇몇 순간들이 있다. 연습과 훈련의 경우 다양한 조건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복합적인 대응을 요구하기에 정신없는 상황이 연출되곤 하지만, 각자 개인이 역할에 충실하고 하나씩 해결하면 된다는 믿음과 연습이라는 생각이 있다 보니 마음은 평온했다. 하지만 실전 상황의 경우 조건은 단순할지라도 긴장감으로 인해 마음이 요동치는 경우가 있었다. 함정을 타고 경비임무를 수행하던 중 미확인 비행물체가 함정 방향으로 날아와 이를 추적하는 상황이나 북한의 경비정과 대치하고 있는 실전 상황 속에서 내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과 감정이 휘몰아치곤 했다. 내가 지휘관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공격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긴장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군인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사생관과 안보관, 태도에 대해서 정립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되었다.


실전 상황으로 전투배치를 하게 되면 심장이 쫄깃해진다. 마음의 평정심을 찾아야 한다.


  극도로 긴장한 상황 속에서는 상황에 몰입하고 감각이 날카로워져 더욱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도 하지만 긴장감에 압도되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비상상황에서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며, 개인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정은 곧 행동으로 이어진다. 나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야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상대방의 행동을 이끌 수 있다. 감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난 뒤에 내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내 행동의 변화도 조금씩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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