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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Aug 31. 2019

해군 장교 이야기
#6 PKM-323 참수리

서해수호자 고속정 참수리

서해수호자

  나의 두 번째 보직은 서해바다를 담당하는 평택 2함대의 고속정 부장이었다. 서해 바다는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이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자행되어왔던 지역으로 서해 NLL을 기준으로 북한과 마주 보는 해군의 최전방이다. 나는 많은 전우들의 희생을 통해 지켜진 서해바다 최전방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하는 참수리 고속정 323호정에서 부장의 직책을 부여받게 되었다.


제 2연평해전에서 침몰했던 참-357 호정, 해군 2함대에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 전쟁 이후 북한의 도발은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90년대 후반 제1연평해전 이후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주로 해양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나는 해군 생도생활을 하던 중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기에 해양을 통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NLL을 기준으로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고속정 부장을 처음으로 맡았을 때 긴장감도 상당했다. 서해를 담당하는 2함대는 실제 해전과 도발을 경험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긴장된 분위기가 형성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고속정은 그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나는 중위였음에도 정장의 바로 아래 직책인 '부장'의 직책을 부여받아 지휘부의 역할을 수행했다. 나는 부장으로서 정장을 보좌하여 배의 인원 관리 및 훈련과 교육을 주관했고 항해 중에는 조함 및 무장을 운용했다. 부장의 다양한 역할 중 내가 직접 조함 명령을 통해 함정을 기동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가장 설레는 부분 중 하나였는데, 배를 조함하는 경험은 절대 아무나 할수없 때문이었다. 나는 강감찬함에서 전기관으로서 함정의 기관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했지만, 고속정에서는 항해 및 작전, 무장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성격의 업무를 해야 한다는 점이 처음에는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업무를 하나씩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내 업무의 영역 또한 조금씩 넓어지게 되었다.



고속정 생활의 고충

  나는 고속정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분야의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이전에 근무했던 강감찬함에서는 이미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고 나는 이제 막 실무생활을 시작하는 소위로서 업무를 파악하고 배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내 업무 외에는 서툰점이 많았다. 하지만 고속정 부장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항해, 작전, 무장 운용, 행정 등과 같은 업무적인 부분 외에도 인원을 관리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조직관리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반복되는 시행착오 속에서 부대의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인원을 관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조금씩 개선해나갈 수 있었다.  


함교에서 조함 중인 늠름한 내 모습



  나의 고속정 부장 생활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실제 해전이 일어났던 연평도와 백령도를 오고 가며 경비임무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긴장감, 실전과 훈련상황으로 인해 전투배치를 수시로 반복하는데서 오는 피로, 좁은 생활공간과 장기간의 출동 기간은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고속정을 타는 모든 승조원들이 직면하게 되는 고충이었다.


  게다가 특히 멀미가 심한 나에게는 1미터의 파도 또한 엄청난 어지러움과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멀미를 한다는 사실은 해군으로 생활하면서 매우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였다. 난 진화한 사람이며, 전정기관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항해를 하면서 파도가 심할 때는 제대로 잠에 드는 것조차 힘들었다. 고속정은 조함을 하는 함교가 외부에 존재했는데, 멀미가 심해지면 당직시간이 아니더라도 함교에 올라가서 바람을 쐬면서 회의감에 빠진 적도 더러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난 왜 어지러운가'


고속정은 함교가 외부에 있어 기상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조함 위치가 외부에 존재한다는 것 또한 장애물이 되었다. 이는 함교에서 배를 조함하는 당직자들이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야만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여름에는 햇빛과 바다에 반사되는 직사광선을 막기 위해 더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와 팔토시, 모자로 몸을 무장해야 했으며 우천, 설한 속에서는 그대로 비와 눈을 맞으며 조함 해야만 했다. 그리고 파도가 심하게 치면 파도로 인해 바닷물이 함교를 넘어 배 전체를 덮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는데, 이런 극한의 조함환경은 2함대에서 참수리를 탔던 얘기가 나오면 반드시 등장하는 주요 안주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취사시설이 없어 식사는 보통 즉석식품이나, 기지에서 식사를 받아서 해결한다.


  또 고속정에서는 취사 기능이 없어 라면과 냉동식품을 많이 먹었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라면 종류는 다 먹어봤던 것 같다. 원래 라면이나 냉동식품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냉동식품의 다양한 조합과 맛, 간편함을 직접 느끼면서 냉동식품과 간편식품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나름대로 새롭게 먹어보기 위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먹어보면서 에너지를 지방으로 치환시켰다.


고속정 대원들이 전진 해상기지에서 식사하는 모습,  긴급출동이 걸리기도 한다.


  서해 NLL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비상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기동성이 좋고 작전 부담이 적은 고속정은 비상 상황에 긴밀하게 대응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비상상황과 긴급출항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긴급출항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밥먹는 시간, 씻는 시간, 잠든 새벽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긴장된 상태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특히 고속정에서 조함당직은 정장과 부장 둘이서 2직제로 운용되었기 때문에 하루에 18시간을 바다에 떠있는 경우에는 둘이서 9시간씩 함교에 서있어야 했던 점도 쉽지 않은 부분 중 하나였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명언은 고속정 생활에 그대로 적용되어, 나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었다.



꾸준한 인사이동

  나는 해군 생활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인사이동을 통해 새로운 환경과 직책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경험을 꾸준히 해야만 했다. 나는 새로운 환경과 업무에 적응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며 어렵게 느껴지는 일도 결국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쌓이는 경험과 내공은 새로운 환경과 업무에 적응하는 속도를 증가시키며, 스스로 느끼는 노력에 대한 체감도 반감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군 간부들은 1~2년마다 정기적으로 직책이 변경되어 다양한 지역에서 새로운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군 또한 하나의 사회이기에 다양한 업무가 존재하는데, 해군의 경우에는 특히 함정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함정을 타보면서 함정별 특징, 작전개념, 무장 등을 익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기적으로 직책이 바뀌는 상황은 군인들에게는 매번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을 주지만, 군인이라는 특수성은 불시에 어떤 임무가 주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직책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으며, 여러 해역의 환경과 항로, 전장환경과 직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전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다양한 경험은 곧 훌륭한 지휘관의 양분과 뿌리가 된다.



해군 부대의 특징

  해군 부대의 경우에는 바다를 끼고 있기에 도시의 외곽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부대에 따라 다르지만 시내에 나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고속정에서 근무하면서 차가 없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걸어다니는 생활을 영위했다. 출퇴근의 경우에는 부대의 출근버스를 이용하거나 동기의 차를 얻어탔으며, 상황이 여의치 않는 경우에는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다니기도 했다. 이사를 하게 되면 짐을 일일이 포장해서 택배로 부치고, 몇 번에 걸쳐 짐을 옮기는 등 지금 생각하면 나의 그런 열정들이 초임장교로서 서툰 모습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해군은 지금도 바다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난 이제 전역했기에 고속정을 다시 경험할 일은 없겠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고속정 생활은 쉽지 않았다. 실제 내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많은 해군 장병들이 지금도 바다 위에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를 이겨내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이는 해군에만 해당되는 사실은 아닐 것이다. 나는 군인들에게 항상 존경심과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고속정을 탔던 시기는 신체적, 정신적, 업무적, 인간관계적으로 여러모로 내가 넘어야 할 과제가 많았던 시기였으며 덕분에 스스로 많은 발전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만큼 2함대 참수리 부장으로서 근무했던 경험은 내 군생활 중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근무할 수 있었던 감사한 경험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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