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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Feb 20. 2018

8. 편의점 알바 김씨와 '설날'

네. 저 아직 아르바이트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주로 경기도 포천의 외갓집으로,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나서는 인천의 친가로 다니며 친척들과 즐거운 명절을 보냈던 필자.


하지만 2017년 1월부터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 맞이했던 한 번의 설과 한 번의 추석은 편의점에서 보냈다. 


20대 중반을 넘기면서 슬슬 들어오는 관심으로 위장한 압박. 남의 일일 것만 같았던 그런 부담감을 느끼기 싫어 그러한 것에서 도망치듯 일 년 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마는, 이번 설만큼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반드시 가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오랜만에 일을 쉬고 큰집을 찾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반가운 얼굴들. 이제는 애가 적어도 둘씩은 있는 엄마 아빠가 되어버린 형, 누나들은 저녁을 먹고 술이 한 잔씩 들어가면서 이전보다 더욱 여유가 사라져 버린 듯한 목소리로 나의 근황을 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직도 졸업 안 했네?

아직도 알바 중이야?

휴학을 또 했다고?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니?






하긴,


스물여덟이나 나이를 먹어놓고 아직 졸업도 못하고 아르바이트 신세라니,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






근데 형,


나도 졸업, 취업, 할 수 있으면 했을 거야.







'In 서울'아니면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이 나라의 미친 학벌주의와, 당시에는 절대 꺾을 수 없던 나의 어리디 어린 자존심으로 인해 시작했던 재수. 2년의 군대, 그리고 나의 길을 찾으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던 휴학 생활을 거치고 나니 어느새 스물일곱.


무서우리만치 빠르게 다가온 '졸업'이라는 단어. 그를 위해서 어학시험 자격증을 따고 논문을 써야 하지만, 그 와중에 주말을 제외한 평일 아르바이트로 내 생활비도 벌면서 학교생활을 함께 이어나가기엔 나의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진된 상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내가 이대로 사회에 나간다 하더라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결정도 채 짓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사회에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나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고, 그런 일에 뛰어들고 싶었다. 안정이 최우선적인 가치로 여겨지기에 고등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공무원이 되어버리는, 아무런 꿈도 희망도 가지지 못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철없는 욕심에 지나지 않는, 이런 나의 희망사항을 이루어보고자 무모하게 또 한 번의 휴학을 결정했다. 나는 그렇게 또 일 년 사회진출을 미루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스물여덟이네, 형.









다행히도 그 모든 세월이 헛되이 흘러가지만은 않았기에, 그 경험들을 통해 얻은 '나만의 훈장들'을 자랑스레 가슴속에 붙이고 오늘도 살아가고 있지만, 나도 위태로운 건 마찬가지다. 매달 노동의 대가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그리고 휴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내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거대한 자유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절반 정도가 남은 이 휴학기간 동안 내가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내가 앞으로 바라는, 되고자 하는 삶을 살기 위한 기반을 다지지 않는다면 내가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 얼마나 후회하며 살아가게 될지를 너무나도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아직도 매일 주저앉고, 매일 넘어지는 중이다. 진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또다시 나 자신의 부족함, 한심함을 매일처럼 깨달아 가는 것이 나의 일. 8월 말까지, 나는 과연 얼마나 더 성장하고, 또 달라질 수 있을까. 과연 내가 바라던 만큼의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나의 지난 일 년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나의 매일이 초조하고, 또 불안하게 이어진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용돈을 받는 꼬맹이에서 용돈을 줘야 하는 막내 삼촌이 되어버린 것이 슬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왜 여태껏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매우 슬프게 만들었던,



그런 설 연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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