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미혼모가 자처한 엄마를 왜 미워했을까?
아빠가 없어서 힘들지 않았냐고 단 한 번도 물어봐주지 않아서?
아버지는 뭐 하냐는 말에 대답할 말이 없는 게 엄마 탓 같아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게 경제적으로 과도하게 기대서 힘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둘이 똘똘 뭉쳐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워도 시간이 모자란데, 엄마가 사기를 당할 정도로 답답하고 완벽하지 않아서?
엄마는 나의 아빠에 대해 이런저런 거짓말을 하다가 7살 이후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가 5분만 안 보여도 불안해하는 나의 딸이 7살이 되자 엄마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해졌던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똑똑하고 예민한 아이를 학대할 수가 있어? 이것도 정서적 학대야.
눈만 마주쳐도 미워지는 순간도 왔다.
나중에 안 이유인데, 엄마가 그토록 미웠던 건 아빠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게 아빠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는 게 옳다고 판단했고, 내게 그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든 아니든 나는 아빠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그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은 내가 판단할 문제였다. 내 몫이었다.
이 이유를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를 태어나게 만들어준 사람인데, 미워하는 게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됐다.
왜 미워하는지도 모른 채 엄마를 많이 미워하고 원망했다.
이 불편한 마음을 없애주길 바라는 아이처럼.
이제라도 내 마음을 헤아려주고 인정해 주길 바라는 아이처럼.
엄마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차갑고 날카롭게만 느낀 엄마에 대해 따뜻한 이미지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엄마는 내 존재를 알고, 홀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고 했다. 아이를 임신한 채로 버스를 타는 엄마의 모습을 이미지로 떠올려보았다. 겨우 27살이었을 엄마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봤다.
그때 외로웠겠다고 물어보면, 아니 너무 좋았다고 말했을 엄마를.
또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나는 벚꽃이 만개하는 계절에 태어났다.
어느 날 흩날리는 벚꽃을 보다가 문득 엄마가 만삭이었을 때도 벚꽃이 만개했겠지.
이렇게 예쁜 계절에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물어보면 아니, 너 만나는 생각에 좋았다고 말했을 엄마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언젠가 엄마가 더 늙고, 외할머니처럼 치매에 걸리게 되는 상상.
혹시라도 케어가 잘 되지 않는 요양병원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학대를 받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다.
나는 단 한순간도 엄마가 그런 순간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나는 엄마가 완벽하지 않아서 미웠지만,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에 너무 가엾고 애달프다.
이 마음도 사랑인 거지.
마지막 장면이 오기 전에 조금만 더 다정해보자.
완벽하지 않지만, 최선의 사랑을 준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