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답답한 사람이었다.
왜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엄마에게 하지 못했을까?
늘 눈치 보고, 상대에게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불쾌한 상황 파악도 못하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표현하지 못하고 그래서 결정도 못하는 내가 싫었다.
나는 높은 이상을 위해 달려야 하는데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못난 내가 미웠다.
주변사람의 마음은 잘 이해하면서 정작 내 마음을 알려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겐 그토록 따뜻한데 정작 스스로에겐 누구보다 차가웠다.
그래서 내 안의 ‘꼬마 온니’가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어떻게 하면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소중한가?
그게 그 시절 나의 화두였다.
일단 지난 상담 시간에 인형 작업으로 만난 ‘꼬마 온니’가 왜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너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너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꼬마 온니’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실체가 있어야 다가갈 수 있는 해법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떠올린 이미지이자, 나의 심정을 담은 이미지는 보호받지 못한 강아지였다.
예전에 지인이 여행을 갔을 때 지인의 오피스텔로 강아지 밥을 먹이러 간 적이 있었다.
내가 문을 열자 평소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강아지가 내게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애원했다.
처절한 몸짓이었다.
강아지는 사람의 손길이 없으면 죽는다.
고작 2~3일이었지만 강아지는 생존의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 안의 ‘꼬마 온니’를 떠올리면 그때의 강아지가 생각났다.
똥냄새가 지독한 집에서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개.
역시 이미지가 정해지자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내 안의 그런 강아지가 있다면 나는 일단 빨리 씻기고, 쓰다듬어 주고, 안심을 시키고 싶었다.
괜찮다고. 내가 여기 있다고,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지켜줄 거라고.
그래도 아직도 만족되지 않았다. 불안했다.
그다음에 내가 한 일은 따뜻한 이미지를 떠올려봤다.
내게 가장 따뜻한 순간은 갓난 우리 알콩이를 안았을 때였다.
깃털처럼 가볍고 포근하고 따뜻했던 내 아이.
알콩이를 안았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나의 따뜻한 머리를 만지면서 알콩이를 안았을 때를 떠올렸다.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나도 알콩이만큼 따뜻한 존재야. 안기만 해도 포근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존재.
초라하고, 연약한 내가 힘을 잃고 죽어버리고 싶을 때 이렇게 달랬다.
‘온니야, 겨울 세일 때 산 알록달록한 여름옷 입자. 여름이 올 때까지 버텨보자. 힘내 보자. 포기하지 말자.’
라고 이야기 하며 겨우 겨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거봐, 역시 넌 이것밖에 안 돼!’라는 비아냥과 자기 혐오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나에 대해 그토록 차가워질 때마다 손길이 필요한 강아지와 갓난 알콩이를 떠올리며 버텼다.
그러자 조금씩 ‘꼬마 온니’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상담 시간에 ‘꼬마 온니’가 했던 최초의 말은 그거였던 거 같다.
‘무서웠어. 두려웠어.’
'왜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도 못 했어? 답답하게.'란 나의 물음의 답이었다.
무척이나 희미한 목소리였다.
이제 막 언어를 배우는 아이 같았다.
‘너도 날 버릴 거잖아.’ 란 말도 했던 거 같다.
‘그냥.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같았어.’
‘누가 밀면 가고, 멈추면 멈추고. 나도 의지가 있는데 말이야.’
그 말을 들으니까 미안했다.
많이 힘들었겠다. 싶었다. 나조차 믿을 수 없었구나. 아니 가장 믿지 못하는 게 나였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손길이 필요한 강아지와 갓난 알콩이 아기를 돌보는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희미했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상담 시간에 여러 사람과 맞짱을 떴다.
내게 이제 그만 아빠타령 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언니의 말에 “언니가 나로 살아봤어? 내 고통을 알아? 지하 3층에서 살아본 기분을 알아?”라고 이야기도 해봤고,
엄마에게 “아빠가 보고 싶은 건 내 권리야! 나랑 아빠가 인연이 없다는 무당 말을 믿고 왜 멋대로 내 마음을 판단하고, 아무 말도 안 해준 건데! 내가 밖에서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라고도 해봤다.
뚜벅이 샘이 속이 시원하다고 표현해 주셨다.
내가 아주 너 때문에 속이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말하는 나랑도 맞짱을 떴다.
“너 이렇게 못된 말하면서 채찍질하는 거 그게 진짜 나 잘되라고 하는 거 같아? 아니 난 너 때문에 망했어. 네가 아니었으면 난 더 잘 됐다고!”라고도 했다.
뚜벅이 샘은 나에게 너무 타박만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달래도 줘봤다.
“온니야. 많이 불안하지? 많이 힘들지. 그런데 나는 네가 꼭 뭐가 되서가 아니라 지금 충분히 괜찮은 사람인 거 같아… 나는 네 마음을 알 거 같아. 아무도 네 마음은 어때?라고 묻지 않아서 너의 마음에 다가가는 방법을 몰랐지… 내가 이제라도 물어봐 줄게. 지금 너의 마음은 어때? 괜찮아…?”
그렇게 말하니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말했다.
“아니. 안 괜찮아….. 괜찮지 않아…….”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던 거 같다.
그렇게 내뱉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뚜벅이샘은 내게 혐오씨를 달랠 줄 아는 어른의 목소리가 비로소 나온 것 같다고 해주셨다.
‘꼬마 온니’말고 그냥 ‘온니’가 드디어 내안의 컨트롤타워에 앉게 된 것이다.
이 상담의 과정을 겪고 나는 더 이상 내가 소중한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내 안의 손길이 필요한 강아지를 안아주고 싶다. 쓰다듬어주고 싶다. 옆에 있어주고 싶다. 다시는 떠나고 싶지 않다. 따뜻하고 작고 보드라운 아이가 편안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