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지하 3층

by 온니


“결혼 상대로 부모가 사별을 한 게 그나마 낫고, 그다음이 이혼, 그다음이 너야.”


나는 어릴 때부터 결혼이 꿈이었다. 하지만 차마 꺼내지 못한 꿈이기도 했다.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

그때 친밀했던 언니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언니입장에서는 걱정과 안쓰러운 감정이 담긴 말이었지만(우린 이런 핸디캡이 있으니 더 잘하자는 뜻이었지만) 나에겐 너무 가슴 아픈 말이었다.


정상가족이 1층. 부모가 사별한 게 지하 1층. 이혼한 게 지하 2층이라면, 혼외자인 난 지하 3층이었다.

가장 밑바닥.

내가 사는 곳은 진짜로 해가 절대 들지 않는 지하 3층이었으니까.




인형치료로 아빠를 만나는 상담을 한 이후 나는 많이 아팠다. 괴로웠다. 어떻게든 이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일기에 아빠에 대해 적었다.


“난 당신을 이해해. 고작 27살. 어린 나이였으니까. 난 이해받지 못했지만 그래서 너무 힘들었지만, 그게 비단 당신만의 잘못은 아니니까… 우리 모두 미숙한 거니까…”


이렇게 일기에 적자 내 안의 7살짜리 아이, '꼬마 온니'가 울부짖었다.


“나는!!! 그러면 나는!!!!”


내 안의 '꼬마 온니'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을 이해해버리면 내 고통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호소했다.

나는 내 안의 목소리, '꼬마 온니'를 발견하고 그에게 편지를 썼다.





안녕? 온니야. 치료였지만 아빠를 만나고 많이 힘들었지? 내뱉고 싶었지만 내뱉을 수 없어서 꽁꽁 숨겨두었던 마음을 인정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써서 피곤하고 힘들었을 거야. 너의 몸은 너무 기진맥진했고, 축 처지고 힘이 빠지니 꼭 그 몸상태였던 (몸이 기억하는) 아프고 슬펐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도 있었어.

27살에 모든 것과 단절, 고립시키고 숨을 헉헉대며 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극단에 몰아붙이며 일을 했었던 그때. 비참하고 눈물 날 것 같고 괴로웠는데 이 악물며 일을 했었지.

그 극단으로 몰아붙인 게 나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미안하더라.

유산을 했을 때, 친밀한 상대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도 생각나니까 또 너무 힘들어지고 억울하고 기운 빠지고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기분이 들었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늘 그 자리인 거 같아 허무했지.


이번에 아빠를 만난 상담이 끝난 후, 내 마음속 아빠를 잘 보내고 싶어서 “당신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라고 일기에 쓰니, 온니 네가 미친 듯이 소리치더라.

“나는! 그러면 나는!!”

나는 너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어.

너는 매번 타인을 이해하느라 정작 너는 돌보지 못했지.

그래 내가 먼저 이해하고 안아줘야 될 사람은 바로 너지.

네 입장에서는 얼마나 분하니. 화나니. 그 사람을 이해해 버리면 너는 뭐가 돼?

네 말이 맞아. 난 네 편이야.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 다 해.

그 동안 목소리를 숨기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나는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너는 정말 애썼지. 최선을 다 했지. 너와 너 주변의 시선을 바꾸기 위해 모든 걸 다 했지.


그런데 네가 그렇게 애써줘서 나, 너무 잘 살아.

결국 난 좋은 사람이 됐고, (가끔 실수는 있지만)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또 너무 안정되고 행복한 가정을 얻었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잔뜩 누리고 있어.

네가 너무 애써준 덕분이야.


그러니까 지하 3층에서 이제 나와도 돼. 거기서 외로워하지 않아도 돼.

거긴 춥고 외롭고 단절되어 있어.

근데 네가 나오잖아?

따뜻해. 포근해. 그리고 너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진짜 가족이 있어.

우리 알콩이. 그 아이는 너무 해맑아.

너를 재밌게 해 줄 거야. 좋은 친구가 돼줄 거야.

그리고 남편. 안정감을 주는 친구야.

그리고 내 엄마. 늙었지만 여전히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줘. (실수가 많지만 그 마음만은 언제나 최고야)

이제 우리 같이 놀자. 나도 널 정말로 잘 보살펴줄게. 여긴 아름다워. 재밌어. 행복해.

너와 함께 하고 싶어.


그전에 너에게 사과할게. 그토록 극단에 내몰리게 한 건 잘못이야. 잘 몰랐어.

그냥 스펙이 있으면 너가 단단해질 줄 알았어. 그렇게까지 혹사하지 않았어도 넌 잘 됐을 거야. 단지 시간이 필요했던 거지.

내가 딱 너의 엄빠 나이 때 잘못했네.

나처럼 그들도 실수를 했어. 어렸으니까. 몰랐으니까. 그래도 용서가 안된다면 하지 마.

나도 뼈저리게 후회할게. 널 외롭게 만든 거, 외면한 거. 모두.


대신 앞으로 잘할 테니 나 좀 지켜봐 줘. 네가 믿어도 되는 어른이 될 거야. 많이 안아줄게.

너의 편이 돼줄게. 잘해줄게. 너를 위해 살게. 난 네가 제일 중요해. 네가 가장 우선순위야.

네 편이야. 너의 중심이 될 게. 그러니까. 올라와.

내가 손 잡아줄게. 놓지 않을게. 절대 버리지 않을게. 나만 믿어. 내가 너의 빛이 되어 줄게. 지켜줄게. 마음 다해 돌봐줄게. 올라와. 괜찮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사랑해. 널 하루하루 잊지 않을게. 넌 할 수 있어.

우린 ‘함께’니까..





다음 상담시간에 뚜벅이샘에게 나는 내 안의 '꼬마 온니;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뚜벅이 샘은 나의 '꼬마 온니'를 바로 소환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꼬마 온니에게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사과도 하지 못했고,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그 친구도 내 사과를 받지 않았다.


“이 친구는 나를 믿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는 긴장이 흘렀다.

'꼬마 온니'는 내게 '넌 나를 또 구렁텅이에 빠뜨릴 거야.' '넌 날 외롭게 할거야.' '믿기 싫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뚜벅이샘께서 나중에 표현하기를 그때의 나는 '꼬마 온니'와 접촉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뚜벅이샘은 이럴 때 구원투수가 필요하다면서 소중한 사람을 부르라고 했다.

남편을 부르자 '꼬마 온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비로소 따뜻해졌다.


남편을 소환해야 비로소 마음을 열었던 나의 불안이


“결혼 상대로 부모가 사별을 한 게 그나마 낫고, 그다음이 이혼, 그다음이 너야.”


뚜벅이샘은 내게 한이 되었던 그 말, 명명이 되었던 그 표현을 바꿔보자고 하셨다.


나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살아보니, 환경 그거 별거 아니더라. 그 사람 자체가 중요해. 모두가 상처가 있지, 그 상처가 그 사람의 메인인가, 아닌가 가 중요할 뿐이지.”




그런데 왜 나는 너와 접촉이 안 될까.

어떻게 해야 나는 너와 접촉할 수 있을까.

그 아이를 지하 3층에서 꺼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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